<숲길, 하이데거 3>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철학 개념 중에 "힘에의 의지"만큼 매력적이고 영향력 있는 개념도 흔치 않을 성싶다. 특히 사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떠한 **완충 장치도 갖지 않는 그러한 사회에서 삶을 영위할수록 우리는 스스로가 강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 전통 형이상학에서 존재가 존재자에게 주는 존재 가능성은 중심으로서의 존재가 허용하는 한계 내로 제한되며, 존재자의 풍부함과 다양성은 존재에로 끌어들여진다.

그렇기에 존재자의 다양한 가능성은 매개하는 중심인 존재의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존재가 힘에의 의지인 한에서, 있는 것은 자신의 히므이 고양만을 고취하는 ‘의지에의 의지‘인 힘에의 의지밖에 없다.

나아가 현대 기술 시대의 인간은 힘에의 의지를 고양하고자 하는 자로서, 스스로가 중심으로 있는 자이다. 중심으로서의 인간은 존재자 전체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대면한다.

"(기술 시대에) 인간은 단지 자기 자신과만 대면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근대 학문과 전체주의 국가는 힘에의 의지로서의 존재가 다양한 존재자 전체를 조직하고 설립하는 관계의 중심으로서의 스스로를 전재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425쪽)

모든 학문을 하나의 통합된 방법론, 예컨대 양적 연구 방법론이나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특정한 현대 학문의 시도는 이러한 근대 형이상학적 시야 안에서 전개된 사고이다.

모든 학문을 통합하고자 하는 시도는 모든 것을 모험에 내맡기고 허용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에로 수렴해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시야를 전제한다.

마찬가지로 이는 근대 이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중앙 집권적 근대국가가 전제하는 형이상학적 시야이기도 하다.


160-3쪽

<숲길, 하이데거 4>


하이데거에 의하면 ***세계는 본디 존재자들 전체의 관계망의 산물이며, 이러한 존재자 전체의 관계는 하나의 사물인 물 따른 주전자 혹은 강둑을 잇는 다리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은 **사물로부터 조건 지어진 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근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조건을 망각하거나 **회피하고 스스로가 **중심이고자 한다.

인간 스스로가 중심이고자 할 때 존재자 전체의 관계망은 분리되고 획일화되고 황폐화 된다. 그래서 근대 서구 사회에서 인간은 서구 역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강력한 주체로 거듭난 듯이 보이지만,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만나는 **황무지를 경험하게 될 뿐이다.

서구의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신의 자기 드러냄의 계기이다. 그러한 세계 이해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신뿐이다. **서구 근대 사회의 완성에 이르러 이제 존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하이데거에게 **세계란 본디 존재하는 것들이 자신의 *풍요로운 존재를 전개하는 **유희의 공간이다. 존재자들 전체의 유희 공간으로서의 세계는 개개의 사물을 통해 발현된다.

그리고 인간은 비록 **끊임없이 주체가 되고자 하는 존재자라 할지라도 그러한 욕구를 견뎌내고 스스로가 사물로부터 철저하게 조건 지어진 자라는 사실을 감내해야 하는 자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계 속에서의 인간은 **세계와 사물에 대한 지배자이자 명령권자로 군림하는 오늘날, 기술 시대의 인간 존재 방식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하여 세계와 사물의 **고유한 생겨남의 운동에 **참여자로서 있을 때 본래적 삶을 살게 된다.


16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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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사람은 사랑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과 싸우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비밀을 깨닫고 그녀는 경악하며 산책길에서 되돌아왔다.


9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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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그렇게 잃어버린 경험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에게 먼저 돌을 던져라. 내게는 오로지 사랑만 있었을 뿐 더 이상 조국은 없었다.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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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문학으로 역사 읽기>
/ 이솝우화집


이쯤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한 명 있다. **인간은 원래 반쯤 길들여진 동물과 같으므로 그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짐승 다루는 법이나 짐승의 도를 배워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키아벨리가 그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군주는 사자와 여우의 기질을 배워서, 여우처럼 함정을 피하고 사자처럼 늑대를 혼내 주어야 한다. 마키아벨리 역시 **인간 세계가 성숙한 도덕성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는 점에서 이솝과 맥이 통한다.

사실 ‘바른생활‘용 우화들 중 많은 이야기가 이솝이 지은 게 아니라 후대에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영국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이솝 우화를 번역 출판하면서 **도덕주의자들가 강하게 덧칠되었다.

이때 도덕주의자들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많이 빠지고, 그 대신 편집자 스스로 창작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애초에 이솝 우화는 어린이에게 들려주려 한 것이 아니었다.

기원적 50년경부터는 문자 그대로 주인이 노예의 생사를 좌우하는 가혹한 노예제가 그리스 세계에 널리 퍼졋다. 고대 그리스의 탁월한 문화적 성과들을 단순히 문화적 황금기의 산물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빚어낸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솝의 시각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냉소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솝이 보기에는 **우주 질서를 관장하는 신들도 결코 정의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물며 인간들이야 오죽하랴.


/ (....) 그러자 어미 제비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법원 아닙니까? 내 새끼들을 잃은 것도 슬프지만, 법원에서까지 폭력이 지배한다는 것이 더 슬프군요!


13-6쪽

<흑사병>



14세기에 흑사병, 즉 페스트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그 원인으로는 **인구 증가와 그로 인한 자원 부족, 전쟁의 폐해, 환경 변화 등을 꼽는다. 1300년 무렵에는 춥고 습한 날씨로 흉작과 기근이 잦았으며 많은 도시에서 아사자가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아시아에서 페스트균을 보유하고 있는 설치류들이 몽골의 기마군대와 페스트균을 보유하고 있는 설치류들이 몽골의 기마군대와 함께 아시아 각지로 퍼져 나갔고, 그 결과 페스트가 만주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널리 퍼졌다.

1347년에 제노바 상인들이 자유를 되찾아 고향으로 귀국했을 때 감염된 쥐와 병균도 함께 들여왔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전염이라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장기(曉氣,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 지진, 혜성, 나환자, 집시,
그리고 **특히 유대인들을 탓했다. 

그 결과 전 유럽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났이니 예컨대 마인츠에서만 1만 2000명의 유대인들이 산 채로 불타서 죽었다. 파리대학교 의학부 교수들은 1345년 3월 20일에 토성, 화성, 목성이 물병좌에 연결된 것이 이 병의 원인이라고 교황에게 보고했다. 역병은 신의 천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연인 라우라를 흑사병으로 잃은 페트라르카(1304~1374,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인문주의자)는 후세 사람들은 이 시대의 이야기를 오로지 꾸민 이야기로 여기리라고 생각했다. 텅 빈 집, 버려진 마을, 사람들의 광기, 도처에 퍼진 죽음의 그림자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거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데 하물며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야! 당시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은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죽은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 **고급 의복과 보석을 걸친 채 텅 빈 저택을 어슬렁거리는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 거리에서 벌어진 벌거벗은 사람들의 주연(酒宴), 시체들만 태운 채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령선 등에 관한 이야기가 그런 것들이다.


82-3쪽

<선원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


**이야기(문학)의 힘이 왕의 잔혹한 광기를 순화시킨 것이다.

인도양 세계의 특징은 문화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화롭게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상인과 힌두교를 믿는 인도 상인, 유교를 믿는 중국 상인들 간에 교역이 가능했다.

상인들은 한 곳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하여 이익을 남기고 다음번 거래를 할 상품을 구한 다음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같은 방식으로 거래를 했다.

이런 상업 여행의 **연쇄적인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있는 인도양은 그야말로 **‘알라의 연못‘으로서 이슬람 상인들이 안전하게 항해하며 장사를 하는 무대였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가 **상인 출신이어서 그런지 이슬람권에서는 상업에 대한 관념이 긍정적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큰돈을 모으는 상인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따.


9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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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 도강파와 잔류파>
/ 전후 반공체제 구축의 예광탄


이승만 정부가 서울을 수복하자마자 대대적으로 부역자 색출작업을 벌였던 것은 전쟁 초기의 패전책임을 모면하고 제제유지를 위한 국가의 법적 권위를 확보한다는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인공 치하의 서울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이승만 정부에게 있었다.

늘 북한에 대해 공세적 발언을 일심았지만 막상 전쟁이 터지자 변변히 방어다운 방어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남쪽으로 도망을 간 데다, 국민들에게 계속 정부가 서울을 사수할 테니 동요치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거짓 선전을 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한강철교를 조기에 폭파함으로써 민간인의 퇴로를 원천봉쇄하여 적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점 등에서, 이승만 정부는 잔류했던 서울 시민들이 당한 물적·정신적 피해의 일차적 책임을 모면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부역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선풍은 국회를 비롯한 양식 있는 지도층에게 *정부의 책임을 따질 겨를을 주지 않았고, 잔류한 서울 시민들에게서 터져나올 *불만과 비판을 미리 앞질리 봉쇄하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잔류파·도강파로 나뉘어 전개된 마녀사냥식 부역자 색출작업은 ‘반공=애국, 친공=반역‘ 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함으로써, 전후방을 막론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적 억압이 국민 전체를 대상의 로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전쟁 이전 제주 4·3사건에 이미 국가기구 및 준국가기구에 의한 양민학살이 공산주의자 토벌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져 당시 제주 인구의 20~25%에 해당하는 무고한 국미들이 회생된 적이 있었던 바, 전쟁 기간 내내 공비토벌과 통비분자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저질러진 양민학살은 이런 희생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것이었다.


228쪽

전쟁이 일어난 직후 남한 각 지역에서 일어났던 보도연맹 가입자 집단총살뿐 아니라, 대전형무소 등 남한 각 지역의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과사상범을 퇴각하던 국군과 경찰들이 정당한 재판 절차 없이 무더기 총살시킨 일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유족 및 후손들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양민학살 사건만 따져도 거창·산청·함양·문경·고양 금정굴·남원·밀양·부산 등 후방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 특히 빨치산의근거지였던 지리산 주변은 그 피해가 막심했다.

  **반공은 어떤 가치체계보다 우선순위에 놓이는 **절대적인 국가 지배이데올로기였으며, 용공 내지 친공은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가 남한사회에 두텁게 형성되었다. 그 역사적 계기는 전쟁자체에서 오는 경험도 있었지만, 전쟁 기간이나 전후戰後에 국가기구에 의해 이루어진 **‘정당한 폭력‘의 끔찍스러운 체험이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부역자 검거선풍 때 부역행위자로 처벌받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 가족과 후손까지도 오랜 세월 ‘빨갱이‘라는 오명을 쓴 채 많은 부분에서 국민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불우한 조건을 견뎌야 했다.

수복 직후 시작된 도강파·잔류파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얼마나 **경직된 이데올로기의 금압체계 속에서 **야만적이고 **광기어린 세월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예광탄 같은 사건이었다.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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