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마담 보바리>
엠마 보바리의 성장 환경이 소개되는데, 농가의 딸로 가난하지만 루앙에 있는 수녀 원 기숙학교에서 얼마간 교육까지 받은 여자입니다. 시골에서 이런 수녀원 학교에 다녔다는 것은 여자로서는 상당한 학벌입니다. 다만 교육의 부작용이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이에요. 엠마의 **성격의 핵심 인자가 *‘독서‘입니다. 엠마의 책 읽기에 대해 나온 부분을 보시죠.
" 열다섯 살 때 엠마는 여섯 달 동안 낡은 도서대여점의 책 먼지로 손을 더럼혔다. 월터 스콧을 읽고는 역사물에 열중하여 궤짝, 위병대기소, 음유시인 등을 동경했다. 그녀는 마리 스뤼아르를 숭배했고 **불운했던 여성들에게 열렬한 경의를 표현했다. 그녀의 눈에는 잔 다르크, 엘로이즈, 아네스소렐, 아름다운 페르니에르, 클레망스, 이조르 등과 같은 여성들은 **역사의 무한한 심연 속에 혜성과 같이 뚜렷하게 솟아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엠마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독서 체험입니다. 이런 체험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도서관 환상‘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책들을 통해서 현실을 **재축조해내는 것이죠.
소설 읽는 여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것은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이기도 한데, 대개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2-3쪽
<권태는 프랑스의 특산물>
이 작품은 **권태라는 정서를 기본적인 모티프로 쓴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남편이 몰취미한 바보라고 생각하고 분노한 엠마는 점점 권태가 심해집니다.
**프랑스는 권태를 발명한 나라입니다. 나라마다 특산물이 조금씩 다른데, 이를테면 영국은 우울을 발명합니다. 러시아 소설에서는 권태를 프랑스어 ennui로, 우울은 영어 spleen로 표기합니다. 거기가 원산지이니 밝혀서 적어주자는 생각이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원래부터 권태와 우울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 발명, 혹은 발견한 사람들이 있고, 그걸 다른 곳에서 수입해간 것이죠.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적으로 습득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권태에 빠지는 이유는 시골에 살아서만은 아니고, 무능한 남편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 탓도 있습니다. *권태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입니다. 그보다 상류층이거나 빈곤층이라면 권태롭지 않아요.
빈곤층은 먹고 살기 바쁘니까 권태로울 여유가 없고, 상류층은 정치 활동이나 사교 활동이 많아서 일상생활을 관조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층이 문제입니다. 중산층은 대개 먹고살 만은 하지만 아주 풍족하지는 않은 상인 집인입니다. **권태라는건 이렇듯 특정한 사회적 · 시대적 조건 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엠마가 읽던 책은 기숙학교에서 읽던 소설들과 파리의 유행잡지입니다. 엠마는 지금 시골에 있지만 자기가 꿈꾸는 세계는 파리에 있습니다. **책 속에서, **상상 속에서는 자신이 파리에 *속해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의 능력을 초과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정념도 낭비하고 돈도 낭비하는데,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처지가 그걸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주제 파악이 안되어 형편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죠. 그 형편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게끔 욕망하게 한 것이 소실과 유행잡지들이라는 것입니다.
엠마는 우연한 계기로 후작의 초대를 받아, 호화로운 만찬과 무도회를 한 번 경험합니다. 시골 생활에 자포자기해서 눌러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 경험 때문에 다시금 **꿈이 환기되고 **일상은 그 무도회를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엠마는 우울증에 빠집니다.
25-7쪽
<책에서 읽은 대로 사랑하다?>
"내게 애인이 생긴 거야! 애인이!‘ 이렇게 생각하자 마치 갑작스레 또 한 번의 사춘기를 맞이한 것처럼 기쁨이 솟구쳤다."
어떤 기쁨인가요? **소설에서만 나오던 ‘애인‘을 자신도 이제 갖게 됐다는 기쁨입니다. 엠마의 불륜이 여느 불륜과 다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 이별을 통보 받은 엠마는 발작을 일으키고 맙니다. *충격을 달래기 위해 *신앙생활도 하고 *자선활동도 하는데, 사실은 모두가 **책에서 배우 대로입니다.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라 발리에르 공작 부인의 초상화를 보고 자신도 그 영화를 꿈꾸었던 지난날의 귀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보았다. 그 귀부인들은 그토록 의젓하게 화려한 깃 옷자락을 끌면서 고독 속에서 물러나 앉아 속세의 삶에서 상처 받은 가슴속의 눈물을 그리스도의 발밑에 쏟아내고 있었다"
스토리 라인으로 보면 엠마는 불쌍한 여자입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여러 번 탈출구를 모색해보지만, 그것이 **자력에 의한 탈출이 아니라 **남자의 사랑에 기댄 탈출이다 보니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죠.
30-3쪽
<몽상가의 파멸과 속물들의 승리>
엠마 같은 인물은 소설을 너무 읽는 바람에 **공상에 빠져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결국 **자기 감정에 빠져서 파멸하게 되죠.
아내의 내막을 모르고 멍청하게 있다가 나중에 충격을 받지요. 그렇다고 작가가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닙니다. 단지 사회가 굴러가는 어떤 법칙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리얼리즘의 승리입니다.
소설이란 **세계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기에 과학, 철학과 경쟁하는 장르였죠. 그것이 밀란 쿤데라의 소설론입니다.
그가 <소설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밝힌 핵심적인 관점은 소설은 소설만의 독자적인 앞을 제시 해준다는 것입니다. 근대 미학에서는 예술이란 기본적으로 미적인 쾌, 감각적 쾌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인식을 제시해주는 게 아 니라, 즐거움을 주는 것이죠. 어떤 미적 항유의 대상인 것이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제시해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그런 점에서보면 ‘예술 초과‘ 입니다. 이것은 큰데라가 말했지만 쿤데라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철학은 진리를 다루고, 과학은 외부 세계의 법칙, 이 론을 제시하죠. 그 둘이 현실은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데, 소설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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