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경제학 강의>

/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돈을 가진 국제기구


어떤 국제기구들은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주로 부자 나라 정부가 소유하는 *세계은행과 기타 ‘지역적 regional‘ 다자간 은행(ADB, IDB 등)은 *개발도상국에 돈을 빌려준다.

이 은행들은 민간 부문의 은행보다 더 나은 조건(**낮은 이자율, 긴 상환 기간)으로 대출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민간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금융 위기를 겪는 나라에게 *단기간 대규모 대출을 해 준다.

세계은행과 IMF, 그리고 이와 유사한 다자간 금음 기관은 대출을 해 주는 나라에 **특정 경제 정책을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어떤 대출이건 대출에는 항상 조건이 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계 은행과 IMF는 대출을 받는 나라를 진정으로 돕기보다는 *부자 나라가 좋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부과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이들이 1원 1표 원칙을 따르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주식의 과반수를 부자 나라가 보유한 탓에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부자 나라들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이 세계은행과 IMF에서 사실상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중요한 결정에는 85퍼센트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미국이 18퍼센트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1쪽

/ 규칙을 정하는 국제기구 : 세계무역기구와 국제결제은행


어떤 국제기구들은 **규칙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있다. 금융 구제에 관한 국제 규범을 정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규칙을 정하는 국제기구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중요한 기관은 **세계무역기구(WTO)이다.

 **WTO는 국제 무역, 국제 투자는 물론 특히,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편 보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 경제 상호 작용에 관한 규칙을 정하는기구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국 1표 원칙에 입각한 유일한 국제기구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수적으로 우세한 개발도상국이 WTO가 어떻게 활동할지를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적으로는 투표끼지 가는 경우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말을 듣지 않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원조를 줄이겠다는 식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히 들여다보이는 협박을 하는 등 부자 나라들이 온갖 종류의 비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해서 투표를 피하기 때문이다.


190-1쪽

/ 특정 사상을 지지하는 국제기구: 유엔 기구와 국제노동기구


어떤 국제기구는 *특정 사상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우리 경제생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종 유엔 기관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예를 들면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는 산업 개발을 장려하고, 유엔개발계획(UNDP)은 세계적으로 빈곤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국제노동기구(ILO) 는 노동자 권리 향상을 고취한다.

이 기구들은 주로 각자 맡은 영역의 문제에 대해 공개 토론을 진행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생각을 채용하고자 하는 나라에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식으로 활동한다. 때로 선언문이나 조약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이를 준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ILO가 이민 노동자를 보호하는 조약을 발표했지만, 이민을 받는 나라 중 여기ILO가 이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약을 발표했지만, 이민을 받는 나라 중 여기에 조인을 한 나라는 거의 없다. (닭에게 보날을 경축하라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돈이나 규칙을 정할 힘이 없는 이 기구들이 지지하는 쟁점들은 IMF나 세계은행, WTO 등이 미는 안건에 비해 훨씬 추진되기 힘들다.


192쪽

<경제학은 정치다>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가 경제학을 쓰던 시절에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때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20세기 들어 *신고전주의학파가 득세하면서 이른 ‘경제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학은 과학이니까 정치 논리나 도덕적 윤리 기준은 빼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제학을 **탈정치화된 학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요즘 좌우를 막록하고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경제가 뭔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다. **19세기에는 노예를 사고 팔아도 되고 아동 노동도 허용됐고 공해 물질을 배출해도 됐다.


/ iii


- 민영화한다고 효율성이 실제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미국 의료시스템의 경우 완전 *민영화돼 있다. *미국 GDP의 *17퍼센트가 의료비다. 선진국 중 국민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다. 그런데도 건강 지표는 선진국 중 하위권이다. 다른 나라보다 의료비를 50퍼센트, 100퍼센트 더 쓰는데도.


- 신고전주의 경제학처럼 자기네들은 **정치색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제일 위험한 거예요. 사실은 **숨어 있는 정치색과 어젠다가 있다.
**자기들 이론은 과학적인 거라고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누구 편을 드니까 더 문제인 것이다.


- 우리가 객관적인 지표라고 여기는 GDP만 해도 그 아래에는 이론이 다 깔려 있고 그 이론의 정치적 입장이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의 가사 노동은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GDP 추산할 때 별걸 다 추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의 주택에 살 경우, 그 사람의 남의 집에 임대로 살 때 내야 하는 비용까지 추산해서 GDP에 반영한다.

GDP뿐 아니라 모든 숫자에 이론과 가정에 깔려 있고 그 이론적 가정에 정치적 입장이 있다. 정치적 입장이 있다는 건 누군가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을 배제한 경제 정책이나 경제 이론은 있을 수 없다.


- 저는 많은 경제학파 중에서 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학파가 배울 점이 있고 잘못된 점이 있으니까요. 특히 신고전주의학파와 마르크스학파가 제일 심해요. 그 둘은 정말로 자기들만 맞고 다른 학파는 틀렸다고 생각하거든요.


- 예를 들어 싱가로프 하면 ‘자유 무역하고 외국인 투자 환영해서 성공했다더라‘ ‘우리도 싱가포르처럼 돼야 한다‘라고 시장주의자들이 많이 얘기하는데요. 싱가포르 토지의 90퍼센트 이상이 국가 소유입니다.

주택의 85퍼센트를 국영 주택 공사에서 공급하고, 국민총생산의 22퍼센트를 국영 기업에서 생산해요. 싱가포르는 한편으로보면 제일 자본주의적인 나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제일 사회주의적이란 말이죠.

그럼 어느 이론이 싱가포르를 다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그 이론이 등한시하는 이슈를 이해하려면 틀 자체가 빈약해서 이해가 불가능한 거예요. 다른 학파도 마찬가지죠. 여러 이론을 알고 융합해야 복잡한 경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요. 이게 진리고 저건 틀렸다 해선 안 되죠.

진짜로 마음을 여는 태도를 가져야 해요. 모든 학파가 할 말이 있고, 이슈에 따라 할 말이 많은 학파가 있고 적은 학파가 있고, 특정 나라에 더 잘 맞는 이론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론이 있고,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따라 이 이론이 맞을 수도 있고 저 이론이 맞을 수도 있다.


vii -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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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이 지닌 덕성이 가장 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경이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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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마담 보바리>



  엠마 보바리의 성장 환경이 소개되는데, 농가의 딸로 가난하지만 루앙에 있는 수녀 원 기숙학교에서 얼마간 교육까지 받은 여자입니다. 시골에서 이런 수녀원 학교에 다녔다는 것은 여자로서는 상당한 학벌입니다. 다만 교육의 부작용이 있어요. 책을 읽는다는 것이에요. 엠마의 **성격의 핵심 인자가 *‘독서‘입니다. 엠마의 책 읽기에 대해 나온 부분을 보시죠.


" 열다섯 살 때 엠마는 여섯 달 동안 낡은 도서대여점의 책 먼지로 손을 더럼혔다. 월터 스콧을 읽고는 역사물에 열중하여 궤짝, 위병대기소, 음유시인 등을 동경했다. 그녀는 마리 스뤼아르를 숭배했고 **불운했던 여성들에게 열렬한 경의를 표현했다. 
그녀의 눈에는 잔 다르크, 엘로이즈, 아네스소렐, 아름다운 페르니에르, 클레망스, 이조르 등과 같은 여성들은 **역사의 무한한 심연 속에 혜성과 같이 뚜렷하게 솟아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엠마의 **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독서 체험입니다. 이런 체험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도서관 환상‘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책들을 통해서 현실을 **재축조해내는 것이죠.

소설 읽는 여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것은 낭만주의 문학의 전통이기도 한데, 대개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2-3쪽

<권태는 프랑스의 특산물>



이 작품은 **권태라는 정서를 기본적인 모티프로 쓴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남편이 몰취미한 바보라고 생각하고 분노한 엠마는 점점 권태가 심해집니다.

**프랑스는 권태를 발명한 나라입니다. 나라마다 특산물이 조금씩 다른데, 이를테면 영국은 우울을 발명합니다. 러시아 소설에서는 권태를 프랑스어 ennui로, 우울은 영어 spleen로 표기합니다. 거기가 원산지이니 밝혀서 적어주자는 생각이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원래부터 권태와 우울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 발명, 혹은 발견한 사람들이 있고, 그걸 다른 곳에서 수입해간 것이죠.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적으로 습득한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권태에 빠지는 이유는 시골에 살아서만은 아니고, 무능한 남편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 탓도 있습니다. *권태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입니다. 그보다 상류층이거나 빈곤층이라면 권태롭지 않아요. 

빈곤층은 먹고 살기 바쁘니까 권태로울 여유가 없고, 상류층은 정치 활동이나 사교 활동이 많아서 일상생활을 관조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층이 문제입니다. 중산층은 대개 먹고살 만은 하지만 아주 풍족하지는 않은 상인 집인입니다. **권태라는건 이렇듯 특정한 사회적 · 시대적 조건 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엠마가 읽던 책은 기숙학교에서 읽던 소설들과 파리의 유행잡지입니다. 엠마는 지금 시골에 있지만 자기가 꿈꾸는 세계는 파리에 있습니다. **책 속에서, **상상 속에서는 자신이 파리에 *속해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자기의 능력을 초과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정념도 낭비하고 돈도 낭비하는데, 중산층이라는 경제적 처지가 그걸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주제 파악이 안되어 형편에 맞지 않게 사치를 부리죠. 그 형편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게끔 욕망하게 한 것이 소실과 유행잡지들이라는 것입니다.

엠마는 우연한 계기로 후작의 초대를 받아, 호화로운 만찬과 무도회를 한 번 경험합니다. 시골 생활에 자포자기해서 눌러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게 됩니다. 그 경험 때문에 다시금 **꿈이 환기되고 **일상은 그 무도회를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결국 엠마는 우울증에 빠집니다.


25-7쪽

<책에서 읽은 대로 사랑하다?>


"내게 애인이 생긴 거야! 애인이!‘
이렇게 생각하자 마치 갑작스레 또 한 번의 사춘기를 맞이한 것처럼 기쁨이 솟구쳤다."

어떤 기쁨인가요? **소설에서만 나오던 ‘애인‘을 자신도 이제 갖게 됐다는 기쁨입니다. 엠마의 불륜이 여느 불륜과 다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 이별을 통보 받은 엠마는 발작을 일으키고 맙니다. *충격을 달래기 위해 *신앙생활도 하고 *자선활동도 하는데, 사실은 모두가 **책에서 배우 대로입니다.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예전에 라 발리에르 공작 부인의 초상화를 보고 자신도 그 영화를 꿈꾸었던 지난날의 귀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보았다. 그 귀부인들은 그토록 의젓하게 화려한 깃 옷자락을 끌면서 고독 속에서 물러나 앉아 속세의 삶에서 상처 받은 가슴속의 눈물을 그리스도의 발밑에 쏟아내고 있었다"


스토리 라인으로 보면 엠마는 불쌍한 여자입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여러 번 탈출구를 모색해보지만, 그것이 **자력에 의한 탈출이 아니라 **남자의 사랑에 기댄 탈출이다 보니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죠.


30-3쪽

<몽상가의 파멸과 속물들의 승리>



엠마 같은 인물은 소설을 너무 읽는 바람에 **공상에 빠져 현실 감각이 떨어지고, 결국 **자기 감정에 빠져서 파멸하게 되죠.

 아내의 내막을 모르고 멍청하게 있다가 나중에 충격을 받지요. 그렇다고 작가가 도덕적인 가치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닙니다. 단지 사회가 굴러가는 어떤 법칙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리얼리즘의 승리입니다.

  소설이란 **세계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기에 과학, 철학과 경쟁하는 장르였죠. 그것이 밀란 쿤데라의 소설론입니다. 

그가 <소설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밝힌 핵심적인 관점은 소설은 소설만의 독자적인 앞을 제시 해준다는 것입니다. 근대 미학에서는 예술이란 기본적으로 미적인 쾌, 감각적 쾌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인식을 제시해주는 게 아 니라, 즐거움을 주는 것이죠. 어떤 미적 항유의 대상인 것이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제시해준다고 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그런 점에서보면 ‘예술 초과‘ 입니다. 이것은 큰데라가 말했지만 쿤데라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철학은 진리를 다루고, 과학은 외부 세계의 법칙, 이 론을 제시하죠. 그 둘이 현실은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데, 소설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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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작품해설 2>
/ 종교, 죽음


"침대에 누운 엠마는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배신과 비열함과 무수한 탐욕도 이제는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아무도 미위하지 않았다. 어슴푸레한 황혼이 그녀의 생각 위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런 평안한 죽음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는 고통으로 "가슴이 헐떡이기 시작했고, 혀는 완전히 입 밖으로 나왔고 두 눈은 어지럽게 돌았다." 

"천상의 환희로 숨이 넘어 가는" 대신 그녀의 "갈비뼈는 (…) 거친 호흡으로 격렬하게 오르내렸다. 또한 "천사의 하프 소리" 대신 그녀가 마지막으로 듣는 것은 장님 거지의 음탕한 노랫소리였으며 머릿 속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상은 "성자들에게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계신 장엄하게 빛나는 하느님 아버지" 가 아니라 "영원의 어둠 속에서 위협하듯 솟아오는 거지의 흉측한 얼굴" 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름 끼치도록 끔찍하고 설망적인 웃음이었다."

**엠마의 환상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사랑, 결혼, 불륜, 죽음이란 인생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서 그녀의 기대는 잔인하게 배당했다. 이와 함께 *낭만주의에 대한 플로베르의 해부도 완성되었다. 

엠마의 죽음 장면에서 어떠한 종교적 위로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낭만주의의 주요 특성 중 하나인 *종교성과 *낭만적 죽음이란 환상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라마르틴은 죽은 쥘리를 위해 시를 지었다. 그러나 엠마의 애인들은 그녀를 추억하지 않느다. 심지어 그들은 그녀의 장례식 날 밤에도 각자 자신들의 집에서 편안히 자고 있었다. 그녀를 저승길에 배웅하는 것은 장님의 음탕한 노랫소리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엠마의 죽음 장면에서 천사와 하느님의 경건한 이미지 대신 연주창에 걸린 장님의 흉악한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낭만주의에 대한 패러디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마지막 순간, 엠마는 절망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삶 전체가 낭만주의에 대한 잔혹한 패러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5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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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보바리 부인, 낭만주의에 대한 잔혹한 패러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발표되자마자 사법당국에 의해 *대중적이고 종교적인 윤리와 *미풍양속에 대한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기소됨으로써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1857년 1월에 열린 재판에서 왕정 검사대리 에르네스트 피나르는 이 소설을 ‘*시골 여자의 간통 이야기‘라고 규정하면서 플로베르가 간통을 미화했다고 공격했다. 만일 줄거리만을 요약한다면 이 주장은 타당하다. 『보바리 부인은 시골 의사의 아내인엠마 보바리의 간통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은 1848년, 루앙의 신문에 보도된 ‘간통녀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되었다. 엠마의 모델이 된 델핀들라마르는 루앙 근처 마을 개업의의 아내였는데 여러 명의 애인과의 애정 관계 끝에 1848년, 스물 일곱의 나이로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1849년, 동방 여행 중에 이 이야기를 알게 된 플로베르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1851년 9월부터 5년에 걸쳐 집필에 매달린 끝에1856년 8월, 드디어 소설을 완성한다. 

그러나 플로베르가 ‘델핀 들라마르‘ 사건에서 따온 것은 그 전체적인 틀뿐으로 작가는 여기에 다른 실제 인물들의 특성 및 자신의 경험을 융합시켰다.

특히 플로베르는 피나르의 주장처럼 간통을 미화하기는커녕,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듯이 엠마의 모든 행위와 감정을 분석했고, 간통 이야기의 **진부한 측면을 *극단적으로 천착했다.

생트 뵈브는 작품이 가진 ‘과학, 관찰 정신, 성숙함, 힘, 다소 냉혹한 특성‘을 찬양하면서 이것들이 바로 ‘새로운 문학의 징표‘라고 보았다. 이에 더하여 그는 플로베르가 "휼륭한 의사의 아들이며 동생답게 마치 형과 부친이 **메스를 잡듯 펜을 잡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504-5쪽

*사실주의는 그 직전의 지배적 문학사조인 **낭만주의에 반발한 문학사조이다. 플로베르의 낭만주의 비판은 주제, 사건, 인물, 묘사, 문체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이루어졌다.


/ 보바리즘

쥘 드 고티에가 명명한 **보바리즘이란 개념은 이 소설의 특징인 **환상과 현실의 대조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엠마 보바리가 그랬듯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엠마가 상상하는 그녀 자신의 모델은 소설 속 인물들이다. 그녀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진부한 현실을 혐오하며 "**그 너머에 펼쳐져 있는 가없는 축복과 정념의 세계"를 꿈꿨다.

그녀는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뭔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마치 그녀가 읽은 책에서 "허리가 길게 내려오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 성주들"이 "흰 깃털 장식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검은 말을 탄 기사"를 기다리는 것처럼.


506쪽

엠마는 흔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되는 결혼식에서부터 좌절을 경험한다. 그녀는 자신이 신봉하는 *낭만주의적 이상을 구현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허용된 것은 *평범하고 진부한 현실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결혼식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낭만주의의 문학에서 묘사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이것은 그녀의 애인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에게 실망한 엠마는 애인인 로돌프를 통해 자신의 낭만적 환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엠마에게 애인이 생긴 것은 "젊은 시절의 오랜 **몽상의 실현"이며 스스로에게 소설의 여주인공들과도 같은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실제의 경험은 이러한 낭만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 너무도 일상적인 그 모습은 사랑하는 여인과 첫 관계를 가진 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거나 그녀 발치에 무릎을 꿇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낭만적 애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레옹과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엠마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잃는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랑을 찾지 않는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게 거짓일 뿐! 미소 뒤에는 항상 권태의 하품이 감춰져 있고, 기쁨 뒤에는 저주가, 쾌락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으며 최상의 키스라 할지라도 더욱 큰 관능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증만 입술 위에 남겨놓을 뿐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읽은 애정 소설을 믿지 않았다. "모든 게 거짓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낭만주의 문학은 시효가 끝았다.


509-10쪽

<종교, 죽음>


 그렇다면 종교 서적은 어떤가? 그녀는 수녀원 시절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의 「기독교의 정수>와 같은 종교 서적을 읽었다. 그 기억 때문일까? 레옹과의 불륜관계에서 또다시 실망한 그녀는 자신이 소녀 시절을 보낸 수녀원 앞 벤치에 앉아 **옛 시절의 평화를 그리워한다. 

실제로 그녀는 종교에서 구원을 찾은 적이 있다. 2부에서 레옹을 순수하게 사랑하던 시절, 권태로운 생활에 절망한 그녀는 성당으로 부르니지 신부를 찾아갔다. **그녀에게는 아직 **종교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또한 2부 끝 부분에서도 종교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구원의 환상을 제공한다. 로돌프와의 불륜이 그의 배신으로 끝난 후, 엠마는 병이 난다. 그녀는 죽음이 임박했다는 생각에 영성체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모든 지각과 감정이 사라지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가벼워진 그녀의 육체는 일체의 생각에서 벗어났고 전혀 다른 생명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존재는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고, 향불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듯 이 사랑 속으로 소멸하는 것 같았다.
(...) 입술을 내밀어 구세주의 육체를 받아들일 때 그녀는 천상의 환희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침대 주위의 커튼이 구름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오르고, 서랍장 위에서 타고 있던 두 자루의 촛불은 눈부신 영광처럼 보였다. 그녀는 베개 위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하늘에서 천사의 하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3부에서부에서 비소를 먹고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녀는 더 이상 이러한 환희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 사이 그녀는 너무나도 많은 **환멸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사랑을 믿지 않듯이 새 새명도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잠처럼 **일상적인 "**별것 아닌" 것에 불과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한다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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