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 서문


나는 어떻게 **신이 18세기의 합리주의에서 살아남아 믿음이 실종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 시대에 극적으로 재등장했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무엇보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신론은 결코 보이는 것처럼 쉬운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이성에서부터 모더니스트의 예술까지 모든 지적 현상이 한때 *신이 있던 자리의 틈을 메우려 시도하며 *초월적 존재의 **대체 역할을 수행했다.

임시로 신의 대리 역할을 했던 모든 지적 현상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있었다. 그저 **단순히 신성을 대신하는 형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종교는 교활하고 손쉬운 위장이 통해서가 아니라 **세속화의 길을 걸어서 살아남았다.

예술, 이성, 문화 등이 모두 번성했지만 이따금씩 종교가 짊어졌던 이념적 부담을 져야 했다. 하지만 그 짐을 제대로 감당하지는 못했다.

**그 어떤 것도 신의 대체자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전능한 신‘은 진정 없애버리기 힘든 존재임이 증명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이 없었다. 무신론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닌 것이 반복되었을 뿐이다.

이 책의 또다른 쟁점은 문화는 이론과 실제, 엘리트와 일반 대중, 정신과 감각을 통합하는 *종교의 능력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종교야말로 **가장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형태의 민간 문화라는 점을 손쉽게 증명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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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마찬가지로
도시들은 욕망과 두려움으로 건설되었습니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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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또한 영원한 날의 아침이 밝아 오고 있다.

밤은 지나갔다.

나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나 자신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제물로 바치련다.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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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역사는 또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도로 만들기도 한다. 

**현대에는 사고파는 것이 불가능한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인간(노예), *아동 노동, *관직 등이 옛날에는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자유 시장의 경계가 시대를 초월하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가 현재 당연시하는 시장의 경계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규제가 많고 *세율이 높았던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가장 빨리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세금과 관료주의를 줄여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견해에 곧바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역사는 경제학 이론의 한계를 살피는 데도 유용하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때가 많아서,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국가, 기업, 개인의 경제적 성공 사례 중에는 어느 **특정 경제학 이론 하나만으로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이코노미스트나『월스트리트 저널만을 읽는 사람은 **싱가포르가 *자유 무역 정책을 시행하고 *외국인의 투자를 환영한다는 이야기만 들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싱가포르의 경제적 성공이야말로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이 경제 발선을 이루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결론짓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땅은 거의 모두 *정부 소유이고, *주택의  *85퍼센트가 정부가 소유한 주택개발위원회(Housing Development Board)를 통해  공급이 되며, *총생산량의 22퍼센트를 국영 기업이 담당하고 (국제 평균은 10퍼센트 정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질 것이다.


53-5쪽

1) 거북이vs 달팽이: 자본주의 이전의 세계 경제


서유럽 경제는 정말 느리게 발달했다.


***자본주의는 서유럽, 특히 영국과 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가 자리한 ‘저지대 국가들(Low Countries)‘에서 **16~17세기경에 탄생했다.

 다른 자본주의 이전 단계 사회가 그랬듯,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 서유럽 사회는 *변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수백 년 동안 거의 비슷한 기술에 의존한 농업이 사회의 중심이었고, *상업과 수공업이 조금 존재했다.

***서기 1000년에서 1500년, 중세 서유럽의 1인당 소득income per capita은 **1년에 0.12퍼센트씩 증가했다. 이 말은 서기 1500년에 살던 사람들은 서기 1000년에 살던 사람들보다 수입이 **82퍼센트밖에 늘지 않있다는 뜻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11퍼센트인 중국이 2002년에서 2008년까지 6년 동안 경험한 성장 수준이라고 말하면 큰 그림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즉 물질적 발달 정도만 놓고 보면 현재 중국의1년은 중세 서유럽의 83년과 맞먹는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평균 수명이다는 것을 감안하면 83년 이라는 세월은 3세대 반에 해당한다.)

아시아와 동유럽(러시아 포함) 국가들에 비하면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가히 일취월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지역은 그 속도가 3분의 1인 **0.04퍼센트 불과했기 때문이다.

즉 500년 사이에 수입이 **2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뜻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거북이처럼 움직였다면 나머지 지역 구가들은 달팽이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57-8쪽

2) 자본주의의 여명: 1550~1820년


/ 자본주의의 탄생: 슬로 모션으로

16세기에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1500~1820년 사이 서유럽의 1인당 소득 성장률은 여전히 0.14퍼센트에 지나지 않아서 거의 모든 면에서 1000~1500년 기간(0.12퍼센트)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따.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18세기 말에 이르러 면방직과 제철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이 가속화되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0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각각 0.27퍼센트, 0.28퍼센트의 1인당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 이면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 새로운 과학, 기술, 제도의 출현

**먼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변화하면서 **현대 수학과 과학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토양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아랍 문화권과 아시아에서 개념들을 많이 빌려왔지만 16~17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유럽 사람들도 자신들 나름의 **혁신을 보태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페르마, 뉴턴, 라이프니츠 등 현대 과학과 수학의 아버지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 같은 과학의 발전이 경제에 바로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지식이 체계화되면서 **기술의 혁신을 개인에게 의존하던 경향이 줄어들고 이전도 쉬워져 **새로운 기술 간의 융합이 촉진되어 **경제 성장으로이어졌다.

*18세기에는 *방직과 *제철, *화학을 비롯한 산업 분야에 *기계화된 생산 체계를 가능하게 한 몇 가지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다. *연속 조립라인은 19세기 초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용해 애덤 스미스의 핀 공장에서처럼 분업이 좀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다. 

**생산량을 늘려서 더 많이 판매하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욕구가 이 **새로운 생산 기술의 도입을 **가속화시켰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분업 이론에서 주장했던것처럼, 생산량의 증가는 더 **정교한 분업을 가능하게 했고 이것이 **생산성의 증가를 이끌어 결과적으로 **생산량이 증가했다. 생산량 증가와 생산성 증가 사이에 *선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새 자본주의적 생산 현실에 맞춘 새로운 **경제 제도도 도입되었다. 점점 널리 퍼지는 시장 거래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은행이 진화를 했고, 개인의 부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나옴에 따라 **법인 또는 유한 회사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주식 시장도 탄생했다.


58-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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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 고든 리빙스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렵지 않게 들리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행동과 생각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죠." 

여기에는 현대의학과 광고 산업, 그리고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의 탓이 크다고 한다. *기분을 좋게 해주는 약, *성형수술, *소비를 통한 **신분상승을 부추기는 광고 따위가 **행복은 구매가능하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거다. 또한 "사람들은 주로 **생각, 바림, 의도가 생긴 것을 **변화로 **착각"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말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그들이 *말하고 *원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게 맞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깜짝 놀라면서 때로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차라리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편입니다."

리빙스턴은 *생각이나 말만으로는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기에 *실제 행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 세 가지로는 *일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기대감을 꼽는다. 그가 내담자에게 던지는, **"그 사람을 위해서 대신 총을 맞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유도질문은 성경 말씀을 떠올린다. "사람이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 15:13) 

리빙스턴의 부연 설명이랄까. "대개의 경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구해내고 싶은 사람은이 세상에서 단 몇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먼저 자녀들이 있을 것이고 배우자나 연인을 포함시킬 수도 있을겁니다."

독자는 리빙스턴의 슬픈 개인사에 압도되는 것과 동시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는 1년 남짓한 기간에 아들 둘을 잃었다. 더구나 큰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이 있던 젊은 여자가 병원에 입원하기로 한날 자살하자 그는 그의 **오만함을 자각한다. 

**절망한 사람의 생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환상이 그날로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28쪽

심지어 진료과정의 민감한 사안을 발설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오면,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드는지, 또는 마음에 들게 될 것인지 나 자신에게 묻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몹시 지루하거나 화가 난다면, 나는 *정중하게 다른 의사를 찾아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

내담자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상담을 제대로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담을 진행하는 중에도 내담자를 위해 끌어올리고 있는 내 안의 **에너지와 **희망이 줄어들면서 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 차라리 *상담을 중단합니다. 

그 밖에도 내 부모나 나를 괴롭혔던 어떤 사람, 혹은 사춘기에 실연의 상처를 주었던 한 소녀를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드는 내담자와의 *상담도 피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변화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람과 계속 상담하는 것은 **피차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감정이입을 중요시하는 것은 정신과 진료의 특성일 수있다. 이런 점은 책읽기도 다르지 않다.

  "나는 심리치료를 하면서 **직접적인 조언은 많이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겸손해서도 아니고, **내담자가 스스로 해결책을 생각해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신 나는 내담자들과 함께 앉아서 그들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도한 용기나 의지 같은 것은 심리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주도권은 무심한 사람이 쥐고 있다는 혜얀을 보여준다. "***세상에 실망할 수는 있지만 심각하게 살 필요는 없다"는 요즘 우리에게 딱 맞는 조언이다.


29쪽

값싼 슬픔은 알량한 동정심 같은 거다.


리빙스턴은 유명 인사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면서도 "다만 사람들은 그들의 이미지와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그들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에게 유명인사의 죽음을 슬퍼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공허해 보이기만 합니다."

리빙스턴의 말이다. "화해할 수 없는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아내야만 했던 뼈아픈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절망감으로 무너져 내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수 있을까요? 희망을 이야기할 수는 있으되 그 안에 어떤 *절실함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아무런 위안도 되어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어찌 해야 하나? "판에 박힌 말을 늘어놓는 위로는 상대에게 오히려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헤아릴 수 없다면 그저 **옆에서 함께 있어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차라리 나은 방법입니다. 

**섣부르게 자신은 모든 고통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상대에게 몇 마디 던지는 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체면치레일 수 있습니다.


30쪽

/ 김민기


1972년 여름, 
그로서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

 마산 수출공단의 노동자들과 해변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였다. 막 석양이 지는 바닷가로 하나씩 둘씩 돌아오는 고깃배들을 바라보다 그가 무심코 "야, 참 멋있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옆에 같이있던 여공 한 사람이 쏘아붙였다.
**"그 사람들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에요. 뭐가 멋있다는 거지요?"

그때 그는 뒤통수를 철퇴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난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이 조그만 체험이 그 자신의 **감성적 기반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겪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가져온 소위 **‘지식인적인 사고방식과 **감수성에 대해 뼈저린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연보, 565쪽)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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