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2: 은유와 생성>
/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을 시작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불확실성, 비결정성 등의 용어로 정의되면서 다른 시대들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건축이 오브제로서 존재하기보다는 도시의 여러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건축 자체의 구성도 형태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요소들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은유와 생성의 사유는 *보편적 동일성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항상 새롭게 정의되는 유동적인 변화와 생성으로 세계를 설명하며, *어떤 하나의 개체도 *순수하게 정의되지 않고 *여러 개의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다수성임을 밝힌다.
*근대 건축과 철학에서 유지되어 왔던 이분법은 현대 건축과 철학에서 붕괴되고
*다원론을 산출해 내는 들뢰즈-베르그송적인 일원론으로 변화된다.
이러한 내재적이고 일원론적인 변화는 현대 물리학에서의 장 이론과 통합 이론으로서 초끈 이론과 공명한다. 서로 분리된 것으로 인식된 물질과 에너지, 주체와 개체는 일원적 에너지의 장 또는 고차원적인 장에서 정의된다. - P16
/ 서론
은유와 생성은 반 동일성적ainti-identitaire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위상적 연산이다.
그들은 *하나의 영역, 지역, 영토를 *다른 영역이나 지역, 영토와 *접촉하게 만들며, *하나의 의미, 성격, 속성, 영역을 다른 의미, 성격, 속성, 영역 위에서 **미끄러지게 한다.
/ 미끄러짐, 중첩, 접힘, 관통, 구분 불가능성의 영역
은유와 생성은 첫 번째로 **미끄러짐glissement의 연산이다. 이 미끄러짐에 의해서 두 개의 영역, 지역, 의미, 영토는 **중첩 superposition된다.
그런 다음, 한 영역이 외부로서의 다른 영역과 접힌다.
바깥과 안의 **접힘plissement이라는 위상학적 연산은 새로운 동일성 또는 새로운 의미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동일성은 불변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것이다. 은유와 생성은 안에서 바깥을 접는 위상적 연산이다. 이들은 동일성을 흐트러뜨리고 움직이게 만들며, 은유와 생성의 사유에서 모든 동일성은 지역들의 경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분자적 moleculaire 운동의 결과일 뿐이다.
바깥과 안의 접힘에서, 바깥과 안은 서로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까지 *섞이고, 이웃관계에서 이 둘은 구분 불가능성의 영역을 형성한다. 둘 사이의 이런 운동과 교환은 두 영역을 서로 관동시키는 위상적 연산이다.
**미끄러짐, 중첩, 접힘, 관통의 위상적 연산으로서 은유와 생성은 하나의 영역을 그 자신의 동일성, 정체성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이들은 의미, 주체, 개체, 영토를 움직이게 만들고, 동일성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들은 동일성,
변하지 않는 진리의 순수성을 부정하며, 탈영토화와 연결된다.
/ 은유 VS 생성
그러나 은유와 생성은 구별되는 점이 있다.
들뢰즈에 따르면, *은유에는 모방과 재현의 모델/사본의 관계가 남아 있다.
반면에 생성은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들뢰즈에게 생성은 모방, 재현, 해석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뢰즈가 보기에 *은유는 몰적이고, 비연속적이고, 다의적이고, 이접적이라면, *생성은 분자적이고, 일의적이고, 연속적이다.
그러나 은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들뢰즈의 철학도 은유의 성격을 가진 개념들을 내표하고 있으며, 발전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들뢰즈의 철학은 존재의 일의성과 존재자들의 다의성을 동시에 긍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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