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조각은 참으로 가늘고 길며 유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음에도, 가슴 조이는 긴장과 엄청난 힘을 느끼게 한다.

그 빈곤하기 짝이 없는 몰골의 조상은 어떻게 그러한 힘을 느끼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왜 나에겐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가.

나는 이와 유사한 아름다움을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서도 느낀다.

추사의 글씨는 한 자 한 자가 결코 아름답다고 얘기할 수 없으나 그 글자들이 모여서 이루는 글의 아름다움은 여느 글씨와 비할 수 없다.

추사체를 만들기 전의 글씨 또한 한 자 한 자가 휼륭한 비례감과 교본적인 양감을 갖고 있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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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나스는 시인이 지금 유한성 finity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것은 시인의 그대가 무한성 infinity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 P145

마침내 레비나스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일자 -者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서양철학의 전통 속에 이미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그 일자가 *플라톤 Plato., 기원전 427 ~ 기원전 347 의 이데아든, 아니면 *하이데거의 존재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일자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 그는 *타자라는 개념을 새로운 각도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타자란 ‘다른 것‘이자 동시에 ‘낯선 것‘이기 때문에, *친숙한 일자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것을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 P148

그럼, 이제 레비나스의 타자에 대한 사유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지요.


**전체 Totalie와 무한 nfini 이란 두 낱말을 놓음으로써 전체성을 비판하는 것은 철학사와 관련이 있다. 

*철학사란 *보편 종합의 역사라고 할수 있다.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전체로 묶어내서, 그 전체성안에서 *의식이 세상을 휘어잡고 **의식 밖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의식이 절대사고 pensee absolue가 된다. 이런 전체화에 저항하는 것을 철학사에서는 보기 어렵다. (.....) 

**관계 체험은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고 궁극의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다른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종합이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있으며 *사귐 가운데 있다.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윤리라는 것이, 전체성이나 전체성의 위험에 대해 이리저리 추상화된 생각을 한 후에 뒤 따라오는 그런 것은 아니다.

**윤리는 그보다 먼저이고, 그리고 독립된 차원인 것이다. 제일철학은 윤리이다. - P148

지금 레비나스는 **‘전체‘와 ‘무한‘을 대립적인 것으로 설정하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체‘가 나의 의식이 세계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는 입장을 상징한다면, **‘무한‘은 이 세계에는 나의 의식으로 투명하게 알 수 없는 타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개념이지요. - P149

레비나스에 따르면 **‘전체‘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내가 타자의 속내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반대로 **‘무한‘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타자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전체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타인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확신합니다.

‘전체‘의 관점은 유아론 solipsism‘에 빠진 관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유아론자에게는 **타자와 대면할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150

/ 타자 없이 내일도 없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mmmanuel Kant, 1724~1804 가 시간을 우리의 감성 형식으로 규정한 이후,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i, 1859~1938의 현상학을 거치면서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가령 *과거 the past는 우리에게 *기억memory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the future 도 *기대 expectation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물론 *현재the present 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perception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개인의 기억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기대나 지각도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P151

타자 혹은 타자적인 사건과 마주치는 경험은 우리에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흘러가던 시간을 와해시키면서 전혀 다른 성격의 시간을 열어 놓기 때문이지요.

"미래와의 관계, 즉 현재 속에서의 미래의 현존은 타자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비로소 실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은 진정한 시간의 실현이다. 미래로 향한 현재의 침식은 홀로 있는 주체의 일이 아니라 상호 주관적인 관계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마주침만이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현재가 아닌, 새로운 현재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 P153

문제는 타자가 무한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내가 사전에 미리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사전에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이지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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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P28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 P80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 크리스티나 로제티


팬케이크를 반죽해요
부지런히 저어요
팬 위에 올리고는
한쪽 면을 익혀요
재빨리 뒤집어요
할 수만 있다면!
세상도 뒤집어보고 싶어요
- P134

고독하다는 것은

/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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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2021>


**"코로나 사태로 바뀌는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이다.

**한번 변화된 것은 과거로 회귀하기 어렵다. - P6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더라도,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들은 *미래에 대해 단지 *낙관적인 희망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자각하고 **최적의 대처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콜린스는 이렇게 정리한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 그러나 믿음은 잃지 말라." - P7

*백신이란 말은 *소vacca(암소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다가 유두cowpox에 한번 걸려본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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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레비스트로스와 끝나지 않는 증여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5년 동안 프랑스 사상계에 군림해온 *실존주의에 실질적인 *사망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언어학을 모델로 삼아 ‘미개사회‘의 현지조사를 자료로 활용하는 문화인류학이라는 매우 비정서적인 학문이 *마르크스주의와 *하이데거 존재론으로 완전 무장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분쇄하는 것을 보면서 동시대 사람들은 경악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을 기해 프랑스 지식인들은 **‘의식‘이나 ‘주체‘에 대해 말하기를 그치고 **‘규칙‘과 ‘구조‘에 대해 말하게 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구조주의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 P153

‘실존한다 ex-sistere‘라는 동사는 말의 뜻만 보면 *‘바깥에 선다‘라는 의미입니다.

자기존립의 근거가 되는 발판을 *‘자기의 내부‘가 아니라 ‘자기의 외부‘에 두는 것이 실존주의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이 점만 보면 ‘인간은 생산=노동을 통해서 만들어낸 것을 매개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라는 헤겔/마르크스주의와 기본적인 틀이 같습니다.

‘실존‘이라는 학술용어는 일단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실마리로서,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 P154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말은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로서,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인간이 본질적으로 *‘누구인가‘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초적인 이해에 대해서는 구조주의자도 별로 다른 의견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양자가 대립하는 것은 논쟁이 **‘주체‘나 ‘역사‘와 관계될 때입니다.

*참여 engagement(앙가주망, 원래의 뜻은 *‘구속되는 것‘)라는 사태입니다. 내가 처해 있는 *역사적인 상황은 중립적이지 않고 기다려주지 않으며 *결단을 요구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어떤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백 퍼센트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단편적인 자료나 직관에 의지해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답을 모르는 채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판단이 틀릴 수도 있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다소 슬픈 결단이 ‘참여하다‘ engager라고 불립니다.




- P156

사르트르의 *‘참여하는 주체‘는 주어진 상황에 과감하게 몸을 던지고 **주관적인 판단을 토대로 자기가 내린 *판단의 책임을 숙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수용을 통해서 *‘그러한 결단을 내리고 있는 어떤 것‘으로서 자기의 **본질을 구축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논의에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는 불화를 일으킵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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