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는 시인이 지금 유한성 finity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그것은 시인의 그대가 무한성 infinity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 P145

마침내 레비나스는 **전체주의의 기원이 *일자 -者로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서양철학의 전통 속에 이미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그 일자가 *플라톤 Plato., 기원전 427 ~ 기원전 347 의 이데아든, 아니면 *하이데거의 존재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일자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는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 그는 *타자라는 개념을 새로운 각도에서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타자란 ‘다른 것‘이자 동시에 ‘낯선 것‘이기 때문에, *친숙한 일자로 쉽게 환원될 수 없는 것을 상징하는 개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 P148

그럼, 이제 레비나스의 타자에 대한 사유를 직접 살펴보도록 하지요.


**전체 Totalie와 무한 nfini 이란 두 낱말을 놓음으로써 전체성을 비판하는 것은 철학사와 관련이 있다. 

*철학사란 *보편 종합의 역사라고 할수 있다.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전체로 묶어내서, 그 전체성안에서 *의식이 세상을 휘어잡고 **의식 밖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의식이 절대사고 pensee absolue가 된다. 이런 전체화에 저항하는 것을 철학사에서는 보기 어렵다. (.....) 

**관계 체험은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고 궁극의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다른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종합이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있으며 *사귐 가운데 있다. **윤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윤리라는 것이, 전체성이나 전체성의 위험에 대해 이리저리 추상화된 생각을 한 후에 뒤 따라오는 그런 것은 아니다.

**윤리는 그보다 먼저이고, 그리고 독립된 차원인 것이다. 제일철학은 윤리이다. - P148

지금 레비나스는 **‘전체‘와 ‘무한‘을 대립적인 것으로 설정하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체‘가 나의 의식이 세계의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 수 있다는 입장을 상징한다면, **‘무한‘은 이 세계에는 나의 의식으로 투명하게 알 수 없는 타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입장을 대변하는 개념이지요. - P149

레비나스에 따르면 **‘전체‘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내가 타자의 속내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오만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반대로 **‘무한‘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타자의 속내를 끝내 알 수 없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전체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타인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확신합니다.

‘전체‘의 관점은 유아론 solipsism‘에 빠진 관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유아론자에게는 **타자와 대면할 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150

/ 타자 없이 내일도 없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mmmanuel Kant, 1724~1804 가 시간을 우리의 감성 형식으로 규정한 이후,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i, 1859~1938의 현상학을 거치면서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가령 *과거 the past는 우리에게 *기억memory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미래the future 도 *기대 expectation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식입니다. 

물론 *현재the present 도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지각perception 능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지요.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개인의 기억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기대나 지각도상당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 P151

타자 혹은 타자적인 사건과 마주치는 경험은 우리에게 다람쥐 쳇바퀴처럼 흘러가던 시간을 와해시키면서 전혀 다른 성격의 시간을 열어 놓기 때문이지요.

"미래와의 관계, 즉 현재 속에서의 미래의 현존은 타자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비로소 실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상황은 진정한 시간의 실현이다. 미래로 향한 현재의 침식은 홀로 있는 주체의 일이 아니라 상호 주관적인 관계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마주침만이 기억과 기대에 물들어 있는 현재가 아닌, 새로운 현재를 가능하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 P153

문제는 타자가 무한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내가 사전에 미리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미래에 어떻게 변할지 사전에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이지요.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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