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와는 다른 방향에서 혁명의 와중에 탄생하여 소비된 책, *들뢰즈와 과타리가 *1972년에 함께 쓴 *『안티오이디푸스는 *68혁명이 드러낸 *현상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온전히 바쳐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68의 직접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유례없는 성공은 이 책의 현실적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 P17

<무의식을 생산하라: 들뢰즈의 정치철학」(김재인)은 바로 이 책이 나타난 배경과 의미를 들뢰즈의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이 책은 단지 *정치철학으로만 이해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존재론과 *실천철학을 *결합하려는 시도이다. 

**혁명의 시대에 **인식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로 *탈바꿈한다. 

**실천의 문제는 *인간과 *세계의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르트르의 *자유의 철학과 *구조주의라는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비인간주의 존재론에서 출발하여 *실천철학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68혁명의 분출과 좌절이 보여준 의문은 *스피노자와 라이히가 제기한 **"인간들의 자기 예속의 욕망"을 해명하는 것과 관련된다.

 들뢰즈와 과타리는 *맑스를 *재소환하여 *자본주의의 본성을 해명하는 동시에 *정신분석학에 여전히 내재하는 *인간주의를 제거하여 *욕망의 작동 방식을 밝히고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철학을 구성하고자 한다.

 *해결책은 *거시적 차원의 *변화와 *해방에 있지 않다. *예속으로부터의 *도주는 *자본주의와 *정신분석이 *코드화한 *홈 패인 *공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결국 *혁명은 *거대한 투쟁이 아니라 **미시적 차원의 행동에서 *출발해야 하고 무엇보다 **생각의 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P18

마지막으로 68혁명을 단지 경험하고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더불어 탄생하고 *성장한 철학자 바디우의 경우는 어떠한가?

「바디우와 ‘붉은 시대: ‘비제도적 정치‘와 ‘파괴‘ 개념을 중심으로」(장태순)는 바디우의 철학적 여정을 68혁명과의 관계 속에서 두 가지로 고찰하고 있다. 

하나는 *‘비제도적 정치‘에 대한 *정치적 사유이며, 다른 하나는 *‘파괴‘라는 개념을 둘러싼 *존재론적 사유이다.
68년에 31세였던 바디우는 이 시기에 산발적인 기고문 외에는 아직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지 않은 신참내기 철학자이자 통일사회당의 창립 멤버였지만 혁명을 계기로 이전의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급선회하여 *마오주의자로 전향한다.
- P19

 *"붉은 시대 (les années rouges)"
라 불리는 이후의 10여 년은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사유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글에 의하면 "바디우에게 **진리란 *주어진 상황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이며, *모든 진리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지만, *모든 사건이 *진리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68혁명은 명백히 바디우의 철학적 사건 개념의 한 예이고 *그것이 생성한 *정치적 진리는 ‘*비제도적 정치‘이다.

이 주제는 *정당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조직의 형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정치적 혁명과 관련한 *존재론적 개념은 *파괴의 개념이다. 붉은 시대에 바디우는 *변화의 주체가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라캉의 *결여 개념과 결합하여 *정당화하지만 나중에 *수학적 존재론에 기초한 『존재와 사건』(1988)에서는 이를 *부정한다. 

그러나 이로부터 18년 후 *존재론이 아니라 *현상학을 다루는 『세계의 논리』(2006)에서는 *파괴의 개념을 재소환함으로써 *마지막 마오주의자라는 호칭에 걸맞게 초기의 신념에 충실함을 보여준다.

 "변화된 세계에 맞추어 68혁명의 정신을 개조하는 작업에 성공한 철학자이며,
변절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늙은 투사, 이것이 이 글이 그리는 바디우의 초상이다.
- P19

삐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저서 『호모 아카데미쿠스』에서 *다양하게 *잠재된 **위기의 동시화(synchronization, ‘공시화)를 거치며 *혁신적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결정적 사건(événement critique)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인 사건이 *‘결정적 사건‘으로 *전화되지는 않는다.

 *이질적인 *사회 주체들의 *경험과 인식을 *동시화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장(champ)에 포진된 *잠재적 위기를 서로 *중첩시키는 사건들만 **‘결정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한다. 

나아가 *결정적 사건은 *일상이나 *관습 및 *통상적인 *시대 인식과의 **단절을 야기해 *개인이나 *집단의 *입장 표명을 이끌어내고 종국적으로 *기대와 요구를 불어넣는다.

 *독일과 프랑스는 공히 68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경험한다. 그리고 프랑스 대학생이 독일 연대를 조직하여 양국의 사건들 사이에서 일정한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 P29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파업이었다. 이제 상황은 **‘결정적 사건‘을 지나 **‘결정적 순간‘으로 진입한다. 부르디외는 이렇게 쓴다.

"**결정적 순간이란 *단순한 과거 내지 *과거에 기댄 *미래의 *단순한 지속이라는 *통상적 시간 경험과 *단절되어 *모든 것이 *가능한 (혹은 그렇게 보이는) *시점이자, 
*미래가 정말로 **우연성의 지배를 받아 *앞으로의 일이 진정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예상되거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 없이 *순간이 정말 순간 그 자체로 일시 정지 상태에 있는 그런 시점이다(Bourdieu, 1988: 287)."

프랑스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의 정점에서 *‘자주 관리 (autoges tion)‘라는 구호가 솟아오른다. 신좌파 성향이 강한 프랑스민주노동동맹 (CFDT)‘이 5월 중순에 처음 내건 이 슬로건은 다소 모호하고 열려 있는 표현이지만,
반위계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단결시킬 수 있었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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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혁명을 말하다>


*미성숙해 보이는 반항들과 *무질서해 보이는 저항들은 때로는 *광기로, 때로는 *축제로 나타나고 *우발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극대화되며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부르짖었던 68혁명의 구호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 P8

볼테르, 디드로를 비롯한 백과전서파 철학자들의 행보는 세상의 분명한 변화를 목표로 행해진 것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 P8

현실에 참여하도록 이끈 예외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사르트르는 세대를 가로질러 전방에 서서 노년의 정열을 불태웠고 
*프랑스 페미니즘 운동은 전례 없는 힘을 보여주었으며
*푸코와 들뢰즈, 바디우는 자신들의 세대를 대표하여 새로운 사유로 새 시대를 직조하기 시작했다. 

*알튀세르, 라캉, 데리다는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했다. 

*구조는 출렁이기 시작하고 침묵조차 다가올 행동을 예고하며 역할을 해냈다. 

*시대는 **혼돈을 창조하고 혼돈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창조해냈다.
- P9

무엇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가 있었다. 트라우마는 빠져나오기 힘든 비관론의 거대한 늪을 만들었고그 안에서 *지식인들의 행태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에서 *부조리와 *소통 불가능성이 *일상적 주제가 되었다. 이는 직접적으로 *서구 문명에 대한 *좌절과 절망, *거부의 몸짓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론가들은 좀 더 *세련된 형태의 비관, 즉 *냉소로 대응했다. 그러한 냉소에는 지식인들 특유의 *감수성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죄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변혁하기를 *포기했다. 

*더 나아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행동가의 운명을 타고난 *사르트르만이 예외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역설했으니 그가 누린 영광 못지않게 평생을 따라다닌 비난과 조소는 시대적 운명이기도 했던 것이다. - P10

혼란의 시기에 만개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인간과 사회현상을 *상징체계들로 규정하면서 *인간 과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이 흐름은 *주관성과 *변증법을 거부하고 엄격한 *실증주의와도 구분되는 *새로운 과학주의의 이념을 선보였다.

인간 과학은 철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 자신이 이루어낸 풍요로운 성과로부터 마치 조각상처럼 당당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을 뽐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연상시키는 상징들의 대수학적 규칙 속에서 물론 *주체는 와해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새로운 과학주의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철학적 함축이 내재한다. - P10

*레비스트로스는 *역사의 흐름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보편적 이념도,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서구인의 *나르시스적 *환상임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보여준 것이다. - P10

우선 첫 번째로 소개하는 *프랑스와 독일 68혁명의 결정적 사건과 5월의 폭발」(정대성)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본 68혁명의 전개의 상세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68혁명이 단지 프랑스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국제적 현상이라는 데 주목하여 저항의 시작이자 중심부였던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좇으면서 이를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줄 뿐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68혁명을 대하는 *지식인들과 언론의 태도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학생 반란‘, ‘세대 반란‘, ‘문화혁명‘,
‘집단적 나르시시즘‘, ‘낭만적 역행‘ 등 68혁명이 가진 *천의 얼굴을볼 수 있으며 특히 부르디외가 말한 *‘결정적 사건‘ 개념에 기초하여 *잠재적 위기들이 *중첩되는 *결정적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순간 말이다.

- P11

다음으로 우리는 68혁명이 *제일 먼저 *소환한 철학자 *사르트르를 살펴보아야 한다. 68혁명은 사르트르의 명성이 퇴조해가던 시기에 일어나 그의 철학을 극적으로 *회생시켰다. 

「사르트르와 68혁명: 사르트르의 반격」(변광배)은 사르트르와 68혁명의 관계를 탄탄한 학문적 기초를 토대로 역동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사르트르는 1943년에 출간한 『존재와 무의 성공을 뒤로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역사적, 사회적 지평 위에 선 인간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 결과물인 *<변증법적 이성비판>(1960)은 68혁명의 ‘예언서‘라 불리게 되지만 이는 복잡한 우회를 거친 *사후적 평가이다. - P12

*1962년에 출간되어 *구조주의의 대유행을 촉발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사르트르의 후기 철학을 구성하는 *변증법적 *사유를 비판하고 *역사와 *인간을 **구조, *랑그, *기호들의 *조합으로 **환원시킨다.

 이 *실존주의-구조주의 논쟁을 계기로 *사르트르의 영광에 *누수 현상이 발생했으며 *자유의 철학은 되돌리기 힘든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 운명이었다. 

하지만 라탱 지구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저항은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처럼 우발성과 자유가 필연성을 지배한 사건이었다. 사르트르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지했고 그들 사이에 오간 *교감은 사르트르를 *혁명의 철학적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사르트르가 68혁명을 예언했는지 아니면 68혁명이 사르트르를 재평가하게 만들었는지는 분명히 단언할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사건을 철학적 사건으로 만든 첫 번째 사상가가 사르트르임은 부정할 수 없다.
- P12

한편 라캉이 68혁명과 가진 관계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구조주의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에 머물지 않고 다른 학문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데는 *라캉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학생들의 봉기에 대해 *지지와 *비판의 입장을 오간 라캉은 결국 *혁명은 언제나 *주인에 대한 열망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혁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론적 틀의 급선회는 68 이후 전개된 두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 운동의 도전을 계기로 일어난다. 특히 그의 이론의 *가부장적 성격, *팔루스 중심주의적 성격에 대한 여성 분석가들의 비판에 답하기 위해 라캉은 팔루스를 넘어서는, 즉 담론을 넘어서는 *여성의 *주이상스를 인정한다.

이는 *상징 질서 자체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자아비판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의문에 부치는 *양가적 태도로 귀결된다.

이 글에 의하면 라캉의 보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적 변화는 *모든 형태의 혁명에서 **정체성의 정치가 **배제의 정치로 변질될 위험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참조점을 제공해준다. - P13

다양한 모임이 공존과 연대를 통해 만들어내는 거대한 투쟁의 흐름을 띠고 성 역할로부터 남녀 모두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 P14

프랑스여성 운동이 담론화되는 이후의 과정에서 혁명의 역사성이 제거되고 그 독특성은 ‘성차적 페미니즘‘이라는 틀로 축소된다.

이 글에서는 이것이 프랑스 *여성운동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정신분석적 페미니즘 학파의 *엘리트주의적 태도와 *미국 문학계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만나서 이루어진 불행한 결과라는 것을 꼼꼼히 분석한다. - P14

*알튀세르는 일찍부터 *라캉 정신분석학의 중요성을 이해하였고 이를 자신의 생애를 건 작업, 즉 *맑스주의의 *근본적 쇄신에 활용한다. 

**무의식을 *구조로 이해하는 방식이 *맑스주의에 도입되면서 *정치적인 것을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하고 이를 *과학으로 개조할 가능성이 열린다. 

*이에 따라 철학은 *반인본주의가 되고 *사르트르의 *주체철학은 상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단죄된다. *철학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무의식적 구조, **사회경제적 구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힘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P14

알튀세르가 68혁명을보는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진태원)에 의하면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예외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은 **구조의 **모순들이 그 **전형성을 드러내면서

**"모순의 과잉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동시에 *우연성이나 *예외성이 **필연성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알튀세르는 *68혁명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형성, *중국의 문화혁명,
스탈린의 사망 등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도래라는 맥락에 위치시킨다.

 따라서 그는 68혁명을 *단순한 학생운동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더욱 결정적 사건으로 간주하여 *둘 간의 *융합이 일어나지 못한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생들까지 합류했던 학생운동으로서의 68혁명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로서의 학교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통해 *자본주의사회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68혁명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과 평가를 넘어서서 그 분석이 갖는 문제점과 모순에 대한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 P15

68혁명은 사르트르를 재소환했지만 다른 철학자들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68을 겪은 젊은 세대의 철학자 *데리다가 68에 대해 *주저하고 침묵했다는 것이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데리다는1967년도에 세 권의 놀라운 저서를 출판하고도 68의 시기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철학적 환경으로 판단한다. 「데리다: 혁명의 탈 구축」(주재형)에 의하면 데리다가 *알튀세르의 *과학주의에서 *실증주의의 다른 형태를 목격하면서도 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행위 자체가 *보수적 반맑스주의 진영이나 *사르트르의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진영에 가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었던 당시의 지적 환경 때문이었다. - P16

요컨대 *데리다는 *구조주의의 영감을 받은 *급진적 이론 혁명과 *전통적인 이론 사이의 *양자택일을 *거부한다.

 이 글에 따르면 *데리다의 침묵은 그의 철학이 **"당대의 철학적, 정치적 혁명의 코드와 *공리계로는 포착될 수 없는 *다른 철학, 다른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탈-구축 곧 *구조주의를 넘어서는 **챠이(différance)의 사유이다. 

**챠이의 사유는 *순수한 차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타자의 부재에 대한 사유, *흔적의 사유이다. 더 나아가 *탈구축은 *부재하는 타자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문제이며, *어떤 타자들의 *현전 가능성을 받아들일것인가 하는 *결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데리다는 이러한 이론적 측면을 넘어서서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관련된 정치적, 실천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시도한 철학학교 등의 실험은 제도를 고수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대한의 *비제도적 교육을 감행한 것이며 이처럼 데리다는 그 자신의 독창적 방식으로 68혁명의 유산을 전유하고자 했다.
- P16

68혁명의 영향을 몸소 전유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상가가 있다면 우선 *푸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와 68혁명: 사건이아닌 경험, 신화가 아닌 비판으로서의 혁명」(도승연)은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난 사회 정치적 배경과 함께 단계별로 그 전개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로부터 푸코가 *자신의 *철학적 의제를 *설정하는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단지 일어난 *사건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분석을 행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실존적이고 *학문적인 두 차원에서 급진적 변화를 겪는다. - P16

*실존적 차원에서는 68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정치적 투사로 변화하고 *학문적으로는 *구조주의적 개념들을 통해 이해되는 *고고학에서 *담론 형성의 과정과 효과를 드러내는 계보학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담론의 질서』(1971),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1984)에 이르는 사유의 행적으로 드러난다.

 이 글에 의하면 68혁명이 *호명한 대상들과 *개념들은 *해방을 목표로 하는 *계급투쟁이나*권력의 획득을 넘어서서 *이민자,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주체의 *차이와 *소외의 문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비정상인들‘의 *주체화 과정에 대한 푸코의 주장과 직접적으로 맥을 같이했고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당대인들에게 *실질적인 울림을 줄 수 있었다. 

*68혁명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주체를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교육체계에 대한 *반란이었고, 푸코는 이를 **"정복당한 지식의 반란"으로 문제화하여 *현상학과 *맑시즘, *정신분석학을 동시에 *비판하고 *권력/지식의 *연계 속에서 *주체의 형성을 탐구하는 *계보학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푸코는 자신의 실존과 학문의 양면에서 *"현재에 대한 비판화"를 수행하는 *구체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이 글의 표현대로 *68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겠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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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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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생각이란 ‘저기 바깥‘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 마이크로칩처럼 *세계에 나름대로 *대처하기 위해 고안하는 *도구라고 보았다.

생각의 존속 여부는 *불변성이 아니라 *적응성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들이 가르친 일종의 *회의론은 *이질적이고 산업화된 *대량시장 사회, *예전과 같은 관습과 공동체의 *인간적 유대가 갈수록 *약화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남북전쟁은 *근대식 무기와 *전근대식 전술의 조합이었다.

- P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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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나 같은 살마은 정말이지 아파서는 안 된다.
내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너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려면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 목표를 이루는 건 지독하게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내 눈이 너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까.


- P63


너는 내가 화가가 된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겠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런 후회를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충실한 훈련은 게을리 한 채
승리자가 되려고 허겁지겁 달려왔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직 그 하루만 사는 사람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해부학, 원근과 비례 등에 대한 공부를 즐겁게 할 정도로 그림에 신념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돈에 쫓겨서 잠시 자신이 잊고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끄는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 결과는 늘 불쾌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네가 화가가 된다면 놀라게 될 일 가운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주 힘든 작업이라는 점이다.

정신적인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육체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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