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혁명을 말하다>
*미성숙해 보이는 반항들과 *무질서해 보이는 저항들은 때로는 *광기로, 때로는 *축제로 나타나고 *우발성과 *예측 불가능성이 극대화되며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상상력에 권력을!"이라고 부르짖었던 68혁명의 구호가 의미 있는 것이 된다. - P8
볼테르, 디드로를 비롯한 백과전서파 철학자들의 행보는 세상의 분명한 변화를 목표로 행해진 것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의 *앙가주망 전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 P8
현실에 참여하도록 이끈 예외적 사건임에 분명하다.
*사르트르는 세대를 가로질러 전방에 서서 노년의 정열을 불태웠고 *프랑스 페미니즘 운동은 전례 없는 힘을 보여주었으며 *푸코와 들뢰즈, 바디우는 자신들의 세대를 대표하여 새로운 사유로 새 시대를 직조하기 시작했다.
*알튀세르, 라캉, 데리다는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했다.
*구조는 출렁이기 시작하고 침묵조차 다가올 행동을 예고하며 역할을 해냈다.
*시대는 **혼돈을 창조하고 혼돈은 **새로운 사유의 길을 **창조해냈다. - P9
무엇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가 있었다. 트라우마는 빠져나오기 힘든 비관론의 거대한 늪을 만들었고그 안에서 *지식인들의 행태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예술에서 *부조리와 *소통 불가능성이 *일상적 주제가 되었다. 이는 직접적으로 *서구 문명에 대한 *좌절과 절망, *거부의 몸짓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론가들은 좀 더 *세련된 형태의 비관, 즉 *냉소로 대응했다. 그러한 냉소에는 지식인들 특유의 *감수성으로는 감당하기 벅찬 *죄의식이 있었다. 그들은 *세계를 *변혁하기를 *포기했다.
*더 나아가 무언가 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행동가의 운명을 타고난 *사르트르만이 예외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간의 자유를 역설했으니 그가 누린 영광 못지않게 평생을 따라다닌 비난과 조소는 시대적 운명이기도 했던 것이다. - P10
혼란의 시기에 만개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은 인간과 사회현상을 *상징체계들로 규정하면서 *인간 과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이 흐름은 *주관성과 *변증법을 거부하고 엄격한 *실증주의와도 구분되는 *새로운 과학주의의 이념을 선보였다.
인간 과학은 철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그 자신이 이루어낸 풍요로운 성과로부터 마치 조각상처럼 당당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을 뽐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연상시키는 상징들의 대수학적 규칙 속에서 물론 *주체는 와해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새로운 과학주의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또 다른 철학적 함축이 내재한다. - P10
*레비스트로스는 *역사의 흐름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보편적 이념도,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서구인의 *나르시스적 *환상임을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보여준 것이다. - P10
우선 첫 번째로 소개하는 *프랑스와 독일 68혁명의 결정적 사건과 5월의 폭발」(정대성)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본 68혁명의 전개의 상세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글은 68혁명이 단지 프랑스에 *국한된 사건이 아니라 *국제적 현상이라는 데 주목하여 저항의 시작이자 중심부였던 독일과 프랑스에서 사건의 전개 과정을 좇으면서 이를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해줄 뿐 아니라 사건이 일어난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68혁명을 대하는 *지식인들과 언론의 태도를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학생 반란‘, ‘세대 반란‘, ‘문화혁명‘, ‘집단적 나르시시즘‘, ‘낭만적 역행‘ 등 68혁명이 가진 *천의 얼굴을볼 수 있으며 특히 부르디외가 말한 *‘결정적 사건‘ 개념에 기초하여 *잠재적 위기들이 *중첩되는 *결정적 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따르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순간 말이다.
- P11
다음으로 우리는 68혁명이 *제일 먼저 *소환한 철학자 *사르트르를 살펴보아야 한다. 68혁명은 사르트르의 명성이 퇴조해가던 시기에 일어나 그의 철학을 극적으로 *회생시켰다.
「사르트르와 68혁명: 사르트르의 반격」(변광배)은 사르트르와 68혁명의 관계를 탄탄한 학문적 기초를 토대로 역동적으로 서술함으로써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사르트르는 1943년에 출간한 『존재와 무의 성공을 뒤로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역사적, 사회적 지평 위에 선 인간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 결과물인 *<변증법적 이성비판>(1960)은 68혁명의 ‘예언서‘라 불리게 되지만 이는 복잡한 우회를 거친 *사후적 평가이다. - P12
*1962년에 출간되어 *구조주의의 대유행을 촉발한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는 사르트르의 후기 철학을 구성하는 *변증법적 *사유를 비판하고 *역사와 *인간을 **구조, *랑그, *기호들의 *조합으로 **환원시킨다.
이 *실존주의-구조주의 논쟁을 계기로 *사르트르의 영광에 *누수 현상이 발생했으며 *자유의 철학은 되돌리기 힘든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 운명이었다.
하지만 라탱 지구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저항은 에피쿠로스의 클리나멘처럼 우발성과 자유가 필연성을 지배한 사건이었다. 사르트르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지했고 그들 사이에 오간 *교감은 사르트르를 *혁명의 철학적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사르트르가 68혁명을 예언했는지 아니면 68혁명이 사르트르를 재평가하게 만들었는지는 분명히 단언할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사건을 철학적 사건으로 만든 첫 번째 사상가가 사르트르임은 부정할 수 없다. - P12
한편 라캉이 68혁명과 가진 관계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구조주의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에 머물지 않고 다른 학문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데는 *라캉의 역할이 *핵심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학생들의 봉기에 대해 *지지와 *비판의 입장을 오간 라캉은 결국 *혁명은 언제나 *주인에 대한 열망일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8혁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론적 틀의 급선회는 68 이후 전개된 두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 운동의 도전을 계기로 일어난다. 특히 그의 이론의 *가부장적 성격, *팔루스 중심주의적 성격에 대한 여성 분석가들의 비판에 답하기 위해 라캉은 팔루스를 넘어서는, 즉 담론을 넘어서는 *여성의 *주이상스를 인정한다.
이는 *상징 질서 자체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자아비판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의문에 부치는 *양가적 태도로 귀결된다.
이 글에 의하면 라캉의 보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적 변화는 *모든 형태의 혁명에서 **정체성의 정치가 **배제의 정치로 변질될 위험을 경고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참조점을 제공해준다. - P13
다양한 모임이 공존과 연대를 통해 만들어내는 거대한 투쟁의 흐름을 띠고 성 역할로부터 남녀 모두를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 P14
프랑스여성 운동이 담론화되는 이후의 과정에서 혁명의 역사성이 제거되고 그 독특성은 ‘성차적 페미니즘‘이라는 틀로 축소된다.
이 글에서는 이것이 프랑스 *여성운동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정신분석적 페미니즘 학파의 *엘리트주의적 태도와 *미국 문학계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만나서 이루어진 불행한 결과라는 것을 꼼꼼히 분석한다. - P14
*알튀세르는 일찍부터 *라캉 정신분석학의 중요성을 이해하였고 이를 자신의 생애를 건 작업, 즉 *맑스주의의 *근본적 쇄신에 활용한다.
**무의식을 *구조로 이해하는 방식이 *맑스주의에 도입되면서 *정치적인 것을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하고 이를 *과학으로 개조할 가능성이 열린다.
*이에 따라 철학은 *반인본주의가 되고 *사르트르의 *주체철학은 상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관점으로 *단죄된다. *철학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무의식적 구조, **사회경제적 구조와 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객관적인 힘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 P14
알튀세르가 68혁명을보는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진태원)에 의하면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예외적인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은 **구조의 **모순들이 그 **전형성을 드러내면서
**"모순의 과잉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인 동시에 *우연성이나 *예외성이 **필연성을 *압도하는 순간이다.
알튀세르는 *68혁명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형성, *중국의 문화혁명, 스탈린의 사망 등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도래라는 맥락에 위치시킨다.
따라서 그는 68혁명을 *단순한 학생운동으로 보기를 *거부하고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더욱 결정적 사건으로 간주하여 *둘 간의 *융합이 일어나지 못한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생들까지 합류했던 학생운동으로서의 68혁명은 *이데올로기 국가 장치로서의 학교의 본성을 여실히 드러낸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통해 *자본주의사회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68혁명에 대한 알튀세르의 분석과 평가를 넘어서서 그 분석이 갖는 문제점과 모순에 대한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 P15
68혁명은 사르트르를 재소환했지만 다른 철학자들은 그렇게하지 않았다. 68을 겪은 젊은 세대의 철학자 *데리다가 68에 대해 *주저하고 침묵했다는 것이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데리다는1967년도에 세 권의 놀라운 저서를 출판하고도 68의 시기를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철학적 환경으로 판단한다. 「데리다: 혁명의 탈 구축」(주재형)에 의하면 데리다가 *알튀세르의 *과학주의에서 *실증주의의 다른 형태를 목격하면서도 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행위 자체가 *보수적 반맑스주의 진영이나 *사르트르의 *인간주의적 맑스주의 진영에 가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었던 당시의 지적 환경 때문이었다. - P16
요컨대 *데리다는 *구조주의의 영감을 받은 *급진적 이론 혁명과 *전통적인 이론 사이의 *양자택일을 *거부한다.
이 글에 따르면 *데리다의 침묵은 그의 철학이 **"당대의 철학적, 정치적 혁명의 코드와 *공리계로는 포착될 수 없는 *다른 철학, 다른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탈-구축 곧 *구조주의를 넘어서는 **챠이(différance)의 사유이다.
**챠이의 사유는 *순수한 차이들의 놀이가 아니라 *타자의 부재에 대한 사유, *흔적의 사유이다. 더 나아가 *탈구축은 *부재하는 타자들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문제이며, *어떤 타자들의 *현전 가능성을 받아들일것인가 하는 *결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이르러 데리다는 이러한 이론적 측면을 넘어서서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관련된 정치적, 실천적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시도한 철학학교 등의 실험은 제도를 고수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대한의 *비제도적 교육을 감행한 것이며 이처럼 데리다는 그 자신의 독창적 방식으로 68혁명의 유산을 전유하고자 했다. - P16
68혁명의 영향을 몸소 전유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상가가 있다면 우선 *푸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와 68혁명: 사건이아닌 경험, 신화가 아닌 비판으로서의 혁명」(도승연)은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난 사회 정치적 배경과 함께 단계별로 그 전개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로부터 푸코가 *자신의 *철학적 의제를 *설정하는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단지 일어난 *사건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분석을 행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실존적이고 *학문적인 두 차원에서 급진적 변화를 겪는다. - P16
*실존적 차원에서는 68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정치적 투사로 변화하고 *학문적으로는 *구조주의적 개념들을 통해 이해되는 *고고학에서 *담론 형성의 과정과 효과를 드러내는 계보학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담론의 질서』(1971),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1984)에 이르는 사유의 행적으로 드러난다.
이 글에 의하면 68혁명이 *호명한 대상들과 *개념들은 *해방을 목표로 하는 *계급투쟁이나*권력의 획득을 넘어서서 *이민자, 여성, 성 소수자 등 *다양한 주체의 *차이와 *소외의 문제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비정상인들‘의 *주체화 과정에 대한 푸코의 주장과 직접적으로 맥을 같이했고 따라서 그의 작업은 *당대인들에게 *실질적인 울림을 줄 수 있었다.
*68혁명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주체를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교육체계에 대한 *반란이었고, 푸코는 이를 **"정복당한 지식의 반란"으로 문제화하여 *현상학과 *맑시즘, *정신분석학을 동시에 *비판하고 *권력/지식의 *연계 속에서 *주체의 형성을 탐구하는 *계보학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푸코는 자신의 실존과 학문의 양면에서 *"현재에 대한 비판화"를 수행하는 *구체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이 글의 표현대로 *68혁명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할 수 있겠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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