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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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의 기분, 어렸을 때 커다란 과자종합선물세트를 받았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이었다. 책을 품안에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다.

얼마나 정성들여서 만들어진 책인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표지, 도톰하고 보송한 종이, 그리고 두툼하고 보드라운 갈피끈에서는 탄성이 나왔다. 처음으로 알았다. 갈피끈이 이렇게 독자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내가 갈피끈을 좋아한다는 것을.


왼편은 김용택 시인이 가려 뽑은 111편의 시가 실려있다. 시인이 직접 읽고 써보며 독자들과 그 느낌을 고유하기 바라시며 고른 시 101편과 독자가 사랑하는 김용택 시인의 시 10편이다. 오른편에는 독자가 직접 써볼 수 있는 공백이 제공된다. 아무것도 없는 밋밋한 공백이 아니다. 그 시에 가장 어울릴법한 컬러와 여백, 느낌있는 선들이 펼쳐져있다.

그렇다. 시라면 이런 정도의 정성어린 공간에 필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펜을 고르고 숨을 고르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가지런히 펴보고 집중하게 된다.

켈리그라피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손글씨가 각광받는 요즘, 나 자신도 알아보기 힘든 악필의 소유자로서 늘 위축되곤 한다. 써야 되는 내용의 흐름과 속도를 손이 따라가지 못해서 스스로 써놓은 글씨를 해독하는 데에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손글씨를 잘 쓰는 분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고운 종이에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감히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불구하고 필사의 시간은 낭독이나 암송 못지않게 내적인 충만함을 선사했다.

글자 하나 하나에 집중하고, 쉼표나 온점에서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 잘못 쓴 쉼표 하나가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인의 마음을 가늠한다. 이 한글자를 선택하기 위해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을까, 이 짧은 시를 쓰기 위해서 얼마나 긴 삶이 녹아졌을까, 그리고 시로 쓰여지지 않은 남은 마음은 얼마나 큰 바다를 만들었을까...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천재 시인이 긴 세월을 잊혀진 농부로 살아야 했던 시대의 아픔을 느낀다.

쟈크 프레베르의 아침식사도 좋아하던 시다. 책을 놔두고 갑자기 프레베르 시집을 찾기 시작한다. 분명히 샀는데...아마도 어느 책박스에 들어있을거야..겨우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아쉽게 책상에 앉는다.

나희덕의 푸른 밤을 읽다가 검색을 시작한다. 나희덕의 삶에 대해서.

이상국의 혜화역 4번 출구를 읽으며 전에는 딸의 시선으로 이 시를 읽었을텐데 지금은 아버지의 시선으로 읽고 이제는 조금 알 것같은 부모와 자식의 마음을 담담히 느껴본다.

저자의 시가 마지막에 실려있어서 반가왔다.

 

또 한가지 신간 도서를 읽는 기쁨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나와 같은 시간을 느끼고 있는 작가의 정서를 만난다는 것의 감사함이다.

작가의 말 마지막에 있는 ‘2015년 초여름 김용택이 부분이다.

2015년 초여름을 함께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히 더 감동적이다. 내가 좀 더 일찍 헤세와 또는 릴케와 같은 시기와 공간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또다시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강현덕의 기도실을 써본다. 내가 좋아하는 원고지 배경이다. 시인의 마음을 공감한다.

기도 제목을 잔뜩 써서 새벽기도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너무나 애통하며 기도하는 분을 보고 뒤에 앉아서 하나님, 저 사람 기도 먼저 들어주세요!’라고 저절로 중보하게 되던 그 마음이다.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주는 충고도 다시 필사한다. 행복하다. 갑자기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어디있지? 두 권은 있을텐데...어디있지?’ 또다시 탐험이 시작된다.

읽다가 쓰다가보면 나의 복잡함이나 근심은 어느덧 맑고 투명해진다. 그 방법을 깨우치게 해주는 거의 축복같은 필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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