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구병모의 소설을 읽는 건 분명 호사다. 읽기 전부터 이미 기대로 충만하고 설렘으로 뿌듯하다. 날 선 그의 문장은 매끄럽게 달리다 방심할 틈 없이 늪처럼 빨아들일 것이 분명하다. 작가의 신간『절창』(문학동네, 2025, 352쪽 분량)은 문자적으로 ‘베인 상처’를 의미하며, 해독 가능한 매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사람의 속마음은 은둔지이자 굳게 닫아건 저장고로 기능하지만, 봉인을 해제하고 진실에 접근하려는 편에서는 목적에 충실하게 상처에 접촉하려 애쓴다. 나아가 서슴없이 상처를 만들어 내어 낭비를 피하고 적확을 기한다. 소설은 상처를 읽는 아가씨와 해독 결과를 활용하려는 대표 문오언, 성채와 같은 그들의 공간에 아가씨의 독서 교사로 입주하게 된 독서 담당 선생님을 중심으로 각자의 소망과 목적이 부딪히고 어긋나는 과정을 그려낸다.
상처에 손을 대면 텍스트처럼 읽어낼 수 있는 아가씨의 능력을 독점하기 위하여 대표는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고 보호한다. 이 자를 읽으라는 차가운 명령에서 나만 읽어 달라는 간곡함 사이에 경계하고 의심하고 적대하고 허용하는 감정의 변화가 촘촘하게 쌓인다. 둘 사이의 읽기와 읽지 않기가 신경을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중에,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반문하고 나누는 보편적 읽기 세계에 긴 시간 침잠해 온 선생님은 독법과 의미, 읽기와 살기를 유연하게 왕래한다. 독자는 우연처럼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 아가씨의 현재 삶이 희망이나 구원으로 선회하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미심쩍고 우려 깊은 잔상도 참회하고 또 응분의 죗값을 치름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기약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독자의 기대를 넘어서는 빼어난 소설들이 그렇듯, 마치 영화처럼 선생님은 무기를 겨눈다. 가짜 책은 총도 숨기는구나. 진짜는 그 자체로 가치를 확보하는데, 물성만으로도 고귀한 아우라를 품는데 다른 무엇보다 책이라면 더욱 진리에 근접해야 마땅함에도 페이크북이라는 반칙과 조롱은 의도한 자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코를 납작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 즉 죽음이라는 최상위 즉결심판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희망이나 구원, 가능성은 다 어디로 갔나. 내가 허탈해하다니, 부지불식 드는 허탈함을 인지하자 그게 더 허탈함을 부른다. 누가 악당인가 묻는다. 제대로 읽어낸 것 맞나 묻는다.
책은 화자인 선생님 ‘나’의 시점에서 시종일관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자 비극이 무엇인지, 비극을 견디는 게 인생의 거의 전부라는 비관적 견해는 이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소설의 의미를 짚는다. “그러니 너의 눈앞에 있는 한 권의 소설은 그 무의미의 운명에 어떻게든 의미 비슷한 걸 부여해보고 죽으려던 예술가들의 오랜 싸움과 필연적인 패배의 흔적이야.”(p.303)를 보고는 곧바로 윌리엄 포크너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꿈꾸는 완벽함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가능한 일에 얼마나 멋지게 실패하는가를 기초로 우리들을 평가합니다.”(p.437, 파리 리뷰 인터뷰_작가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포크너의 답변은 이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한자어를 곁들인 화려한 만연체 문장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단정적이고 직설적이며 재기 발랄한 견해를 읽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읽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점층적이고 본격적인 제안에 공감하고 한 번 더 각인하는 효용도 누린다. 비판적 읽기의 핵심도 추려볼 수 있다. 고전 명작 속 인물에게 던지는 의구심과 질문은 오래 전 아껴 읽었던 작가의 전작『빨간 구두당』을 다시 꺼내보게 하였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몇 편의 서평을 쓰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여러 명의 리처드와 수많은 헨리를 만나지 못했다는 자책에 올해의 독서 목록을 조정해야 할 것인가 잠시 고민한다. 고전 속 문장이 소설에서 되살아나고 일상어처럼 대화에 스미는 장면들에 멋지다는 기호를 그려 넣는다. 아무리 넘쳐도 해로울 것 없는 배움의 과잉(p.166)에 밑줄을 그으며 오늘도 조금만 더 읽어 보자꾸나 마음먹는다. 사유의 비밀 공간으로 초대하는 가독성 좋은 소설을 추천한다. 구병모 소설은 언제나 옳다.

책 속에서>
보통은 책을 읽고 난 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일어나기 쉬운 일입니다. 무용하면 무용한 대로 다만 이어가는 것, 그것이 읽기 아닐까요. 읽기의 자리에 살기를 넣으면 어떻습니까.(p.205)
그러니 너의 눈앞에 있는 한 권의 소설은 그 무의미의 운명에 어떻게든 의미 비슷한 걸 부여해보고 죽으려던 예술가들의 오랜 싸움과 필연적인 패배의 흔적이야.(p.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