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강화 (리커버 특별판. 양장)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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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상관없이 살 수 있을까. 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쓰기로 한 이상 제대로 써야 한다. 때로 ‘막’ 쓰는 일도 필요하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라는 입장에서 그대의 막 쓰기를 허하노라, 하는 자유를 보장 받을 때 쓰기는 춤추는 일, 아니 막춤 추는 일과 엇비슷해진다. 언제까지 막춤만 출 것인가 하는 자각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평화롭다. 다만 그때부터 ‘막’은 ‘잘’ 또는 ‘제대로’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제대로 쓰고 싶다, 잘 쓰고 싶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본연의 나를 끄집어 낼 만큼 솔직하고 필요한 글을 쓰면서도 타인에게 적확하게 닿고 싶다는 바램은 때로 병이 된다. 병을 치료해줄 선생님은 분명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개론서, 이론서, 작법서를 찾아 읽기를 계속해온 이들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강좌와 프로그램을 찾아 듣고 후속 강의를 신청하며 때론 피철철 첨삭에 좌절하고 때론 기세가 좋다는 격려에 감동받으며 나이 들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백지 앞에서 꺼내드는 질문은 동일하다. ‘어떻게 쓰지?’


『문장강화』(임형택 해제, 창비, 2016, 376쪽 분량)는 어떻게 쓸 것인지 묻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선의 모파상 이태준의 답지이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고 일컬어졌던 당대 제일의 문장가가 1939년 2월 그가 주관하던 잡지「문장」창간호부터 연재했던 글이 한 권으로 묶였다. 초판 머리말에서 임형택은 문장이란 소홀해도 괜찮을 일이 아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와 연관해서 고통해아 하고 그 공부에 정련까지 요망“(p.8)된다고 전한다. 삶과 삶을 표현하는 글은 분리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1940년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책으로 존재하게 된『문장강화』는 신판에서 개정판, 특별판까지 시간과 함께 독자의 곁에 머물러왔다. 전체 9강으로 구성되어 1강 ‘문장작법의 새 의의’부터 ‘문장의 고전과 현대’까지 세심하게 개념을 정리, 설명하고 예문을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예문은 하나같이 고전과 문장가들의 명문이라 전문에 대한 기대를 더하게 만들고, 당시 학생들의 글도 볼 수 있어 생기도 품는다.


책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 새기고 싶은 부분은 상당하다. 어떤 지적은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독자 일반이 아니라 나에게만 개인적으로 전하는 과거의 비밀 지침처럼 도달한다. ‘담화와 문장’은 항상 고민이었던 대화와 서술의 균형과 선택을 다시 한 번 숙고하게 한다. 대화를 문장에 녹여 서술할 때에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타협하는 경우가 많은데, 계획적으로 담화의 분량이나 위치를 설계한다는 것(p.49), 담화가 지문과 그다지 대립감이 나지 않으니 의식적으로 섞어 쓴다는 대목은 글 쓰는 게 결코 쉽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유일어를 찾을 것’에서 저자는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는 플로베르의 말과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는 모파상의 경구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p.87)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글쓰기가 얼마나 타협할 수 없는 행위이며 치열한 담금질이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거듭 읽었던 부분은 ‘퇴고의 이론과 실제’다. 퇴고의 중요성과 기준, 여섯 가지 실제 항목은 퇴고 완결판과 다름없다. “우연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필, 삼필에도 안 되면 백천필에 이르더라도 심중엣 것과 가장 가깝게 나타나도록 고쳐 쓰는 것이 문장법의 원칙일 것이다.”(p.222)라는 대원칙을 새겨야 한다. 동시에 실제의 다섯 번째 요소인 ‘처음의 것이 있나 없나’도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퇴고를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가열차게 날릴 것을 날려야 한다. 글과 책 사이의 간격도 상당하다. 6강의 제재, 글머리, 끝맺음 또한 무엇 하나 자신이 없다. 늘 미진하고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들면서 화도 좀 나고 ‘니가 썼지?’ 싶은 뭔가 인장 같은 투가 두드러진다. 아니요, 다른 사람이 썼소, 라고 할 만한 성장과 변화를 이루면 좋겠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써봤는데(과장) 많이 바뀌기는 어려웠다. 누군가의 멋진 글, 누군가의 정선된 글처럼, 누군가의 좋은 표현, 신박하고 단정한 수사가 참으로 훌륭하다고 부러워하곤 하는데, 언제나 기본에 충실하도록 우선 중심을 잡아야한다. 그래서『문장강화』함께 읽기가 탁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수많은 글쓰기 책이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온 지 팔십여 년이 되어가 조금은 오래 되었다고 여겨지는『문장강화』는 그럼에도 기본과 핵심이 가득하다. 정선한 예문은 책 속의 책 여행, 시간 여행의 즐거움을 제공하였고, 소박하고 정갈한 운치를 보여주었다. 한 번 읽었다고 내 글의 변화가 전격적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마치면 안 되는데’라는 맑은 경종 하나를 소지하게 된 건 맞다. 살기도 쓰기도 마냥 평탄하지 않은 현재, 챗 지피티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이리 써보시게, 꽤 쉽고 보기에 좋소’라는 메일을 유혹적으로 보내곤 하는 요즘, 나의 대적이 사방에 출몰하는 근래에 ‘쓰는 게 남는 거다, 살아남는 거다, 적자생존 하리라’는 깃발 하나와『문장강화』품고 계속해보아야겠다. 펜을 놓지 못하고 오늘도 쓰기로 한 모든 이에게 강력하고 우아한 이태준의 저서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일필에 되는 것은 차라리 우연이다. 우연을 바랄 것이 아니라 이필, 삼필에도 안 되면 백천필에 이르더라도 심중엣 것과 가장 가깝게 나타나도록 고쳐 쓰는 것이 문장법의 원칙일 것이다. 이렇게 가장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문장을 고쳐 나가는 것을 ‘퇴고’라 한다.(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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