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목격한 사람 - 고병권 산문집
고병권 지음 / 사계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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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사람을 목격한 사람(사계절, 2023, 328쪽 분량)은 대신 기록하는 펜, 대신 외쳐주는 앰프. 저자는 이 앰프를 싸구려 앰프라고 칭하지만 성능 좋은 앰프는 무심했던 이들이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그가 대변하는 이들은 약하고 상처받은 사람들, 내몰린 채 고통 받는 사람들이다. 책 표지에는 제목 사람을 목격한 사람을 다섯 번 반복해서 썼다. 앞의 사람은 각각 다른 서체이고 뒤의 사람은 동일한 글씨체다. 앞의 각각 다른 글씨체 사람은 다른 아픔에 처한 채 속수무책 버티고 있고 뒤의 사람은 목격한 증인으로, 목격 이전과는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는 과정 중의 사람이다. 표지의 세 개 기호는 사람, 목격하는 눈, 이 둘이 만나 하나가 됨을, 변화를 일으킴을 뜻하지 않을까. 마지막 표기가 자꾸 비로소 쉬게 되는 숨을 연상케 한다. 기관지 절개술로 기도를 확보한 이미지를, 일단 안심하게 되는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고병권은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이며 읽기의 집 집사로 작은 앰프가 되기를 소망하며 함께의 선봉에 선 지식인이자 행동가, ‘아프고 슬픈 사람, 싸우는 사람 곁의 인문학 연구자이다. 그의 목소리는 독자와 사회를 환기한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저자가 쓴 글과 현장에서 행한 연대 발언을 모은 산문집이다. 1<두 번째 사람> 두 번째 사람 홍은전은 심보선 시인의 시의 의미로 시작한다.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라고 한다.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를 사람에게 붙이자 슬픔의 진원지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가늠된다. 시인을 제외하고 두 번째 사람은 누구일까. 홍은전 작가는 세상에서 제일 많이 비어 있는 두 번재 자리를 채우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p.28)이기에 세 번째 네 번째 자리가 과밀해도 두 번째 자리는 회피하는 곳이다. 저자는 서술함으로 독자에게 거울을 건넨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고, 혼자 우는 자가 있다는 걸 알릴뿐 아니라 두 번째 사람을 기록한다.

 

2<아프고 미안한 사람> 구차한 고통의 언어에서는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p.56)는 말에 들어있는 두 겹의 고통, 생리적 고통과 그 상처를 가졌다는 사실로 인한 해석적 고통을 설명한다. 소수자들이 사용하는 변명의 언어는 어떻게 자포자기의 언어에 이르는가를, 우리 사회가 미안해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미안해지는 일의 원인을 알린다. 3<보이지 않는 사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다가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노동자들(p.96)을 기억하며 저자는 두렵다고 호소한다. 이 호소는 우리 사회 저택 주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사람이 주검이 되어도, 주검이 빈 자리가 되어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4<포획된 사람>은 불법 체류자 단속이 초래한 딴저테이 사례를 알린다. “범죄가 법적인 타락이라면 불감은 윤리적인 타락이다.”(p.123)라는 지적은 세계 도처에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이 이대로 괜찮은지 질문한다. 5<함께 남은 사람>에서는 코로나 당시 방역 모델과 근대적 주권 모델에 전제된 타인에 대한 표상이 닮은꼴이고 해석한다. “안전을 위해 타인을 무증상 감염자로 간주하라는 방역 지침과 타인을 본성상 늑대로 간주하고 안전책을 도모하는 사회계약론은 멀리 있지 않다.”(p.169)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은 인간에게 신이다는 말도 있음을 강조한다. “공동 격리를 자원한 활동가편에서 저자는 그들로부터 삶이 가장 축소된 순간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p.171)을 확인한다.

 

6<싸우는 사람> 죽은 사람의 죽지 않는 말은 네 페이지를 할애하여 유언을 만난 세계의 소회를 담는다. 유언을 만난 세계는 열사 여덟 명이 겪은 차별과 투쟁, 저항 그리고 죽음을 기록함으로 그 의미를 새긴 저작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한국 장애 운동사에서는 이들 안티히어로(반영웅)’열사이다.”(p.209)라고 쓴다. 7<연대하는 사람>의 첫 강연원고 한국 장애인들의 투쟁 형상은 어디서 왔을까에 앞서 언급한 유언을 만난 세계를 비롯한 <비마이너>3부작에 대하여 부연한다. 애도와 투쟁의 결합인 장례 투쟁이 필요한 이유, 생존에 대한 열정이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과 무관할 수 없다고 밝힌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코앞에 다가온 죽음을 목격한 사람, 목격하고 절규하는 사람의 구조 요청인 여기, 사람이 있다!”(p.5)에서 살려주세요’(p.322)까지, 그 사이에도 계속되는 구조 요청이 있다, 사람이 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이유는 의도하는 만큼 다듬고 잘라서 보여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보는 이가 다급한 자의 손이 닿지 않을 자리인 세 번째, 네 번째 자리를 고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서두에 내가 쓴 글들이란 한두 걸음 떨어져서 보고 느낀 안타까움에 지나지 않는다.’고 고백하지만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는 스피커, 성능 좋은 확성기가 되어 곁에서 동행한다. 글로 새겨 잃어버리지 않도록 묶은 책에서 독자는 니체도 프리모 레비도 잠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정신 승리의 상징인 아Q도 오랜만에 만난다. ‘사람 살려라는 네 글자를 알아듣는 것이 문학이고 철학이라는 저자의 말은 책을 읽고 난 후에 더 또렷해진다. 제목이, 제목의 서체가, 사람과 눈의 간결한 표식이 또렷해진다. 먹먹해지는 가운데 함께의 의미를 묻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고 얼마든지 혼자 사는 것도 가능하다. 언제든 연락할 사람, 연락해오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잠시 연락을 끊고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격리된 채 고립된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도, 제아무리 큰 도시도 이것을 버틸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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