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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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셰익스피어와 함께 세계 3대 시성으로 꼽히는 괴테의 시 100편을 감상하고 필사할 수 있는 책 나를 울게 두오!(배명자 옮김, 나무생각, 2024, 280면 분량)가 출간되었다. 책을 펴기 전, 만듦새에 우선 멈춘다. 오렌지빛 직물 느낌의 하드커버 표지에서 활자는 푸른 별처럼 빛난다. 상단의 필기체가 지금 막 괴테가 써내고 있는 시일 것만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시인 장석주는 추천의 글에서 괴테의 시가 본질을 직시하고 세상 이치의 핵심을 꿰뚫는다고 평한다. 또한 생을 아끼고 제 안의 슬픔과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기어코 사랑과 행복을 찾으려는 자에게 읽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한다. 시가 손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내가 서있는 현실에 스밀 수 있는 빛으로 온다. 걸음을 내딛도록 조명하는 길잡이로 서서히 인도해 간다.

 

첫 번째 시는 아름다운 노래로 기억하는 <들장미>. 제목을 보는 순간 귓가에는 멜로디가 흐른다. ‘거친 소년은 결국 장미를 꺽고 만다. 소년만일까, 성급하게 취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후회할 수도 언제까지나 모르는 채 무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잃어버리는 아름다움을 헤아려본다. 극적인 음률로 깊은 가을부터 찾아 듣게 하는 <마왕> 전문은 읽는 자체로도 의미를 지닌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나, 아무도 피할 수 없는 무력한 상실을 시인은 속도감 있게 포착한다.

 

위트가 넘쳐 웃음 짓게 하는 시는 시 읽기의 또 다른 즐거움을 알려준다. 신랄하게 정곡을 찌르는 시가 통쾌함을 선사하는데 아마도 정점이 <한 사내가 손님으로 왔고> 이겠다. 다소 과격한 표현, 거침없는 언사가 눌려있던 감정을 들추는 것 아닌가. 한 편의 짧은 소동극을 연상케 하는 장시 <마법사의 제자>는 생생한 장면이 그려져 유쾌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시인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본다. <희망>, <근심>, <용기>를 제목 삼아 연약한 이들을 격려하고 힘을 준다. 동일한 제목으로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시인은 인간의 내밀한 성정을 찬찬히 살피고 명확하게 지침을 선사한다.

 

괴테의 연작시 중에서 <로마의 비가><베니스 경구>는 몇 편을 정선하여 실었다. 첫 연작시인 <로마의 비가>를 비롯해 연작시 전체를 일관된 맥락에서 감상하는 기회가 기다려진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영단어가 상당량이었듯 괴테 역시 익숙한 관용구의 원저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라인강과 마인강> 31행의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고,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의 첫 행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익숙하다. 시인은 후자의 결말을 모든 죄는 이 지상에서 죗값을 치러야 하기에!’라는 통찰로 맺는데 엄마의 말씀이 겹친다. 죽어서 천국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서 다 갚게 된다는 늘 하시던 말씀이. ‘우리는 요람과 무덤 사이의 삶이라는 긴 수로를 흔들흔들 떠내려간다<베니스 경구 6>도 친근하지만 가볍지 않은 경고 문구다.

 

<베니스 경구 18>에서 시인은 그러니 친구여, 그저 살며 계속 시를 써라!’하고 조언한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던 괴테는 살며 시를 쓰는 행위를 문자 그대로 실천한 시성이었다. 어떤 형태를 취하건 그의 시는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직설화법과 은유가 교차하여 등장하고 마냥 무겁게 가라앉다가도 한 호흡 숨 쉴 틈을 마련한다. 능숙하게, 동시에 유연하게 독자를 이끄는 시는 때로 노래이고 때로는 잠언이 되어 푯대로 선다.

 

감정의 무수한 갈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시인의 큰마음을 연과 행, 마침표와 쉼표로 전달해 준 역자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마지막 시는 표제작인 <나를 울게 두오!>. “나를 울게 두오!/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오/ 벌써 푸릇푸릇하구나로 맺는 시는 애달픈 눈물을 먼지에 생명을 부여하는 주체로 승격시킨다. 이십 대의 어느 1월에 <파우스트>를 읽었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차가웠던 겨울과 두근거림은 그대로 기억한다. 내년 1월에 <파우스트>를 다시 읽는다. 기다리던 독서로 새로 구입한 책은 몇 해째 정렬한 채 꽂혀있다. 그 전에 시 필사집을 먼저 읽고 쓸 수 있어 기쁘다. 읽고 낭독하고 쓰면서 내 삶에 밀착해 오는 시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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