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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시를 잘 알지 못해도 사랑하는 건 맞다.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어떤 시는 생애 어느 시기에 푯대처럼 서있다. 단 몇 행도 괜찮고 분석이 치밀하고 해독이 완벽하지 않아도 발음할 수 있다는 자체에 감격하기도 하였다. 릴케도 헤세도 나에게는 시인이었다. 《두이노의 비가》는 푯대 중에서 앞에 박힌 시 대장이었다. ‘왜’를 곰곰이 생각했으나 지금 와서 보면 이유에 논리가 정연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는다. 한 시기에 릴케를 읽었고, 릴케가 보여준 말테에 놀랐고, 로댕과 살로메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긴다.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포레스트북스, 2024, 308면 분량)』는 장석주 시인이 사랑하던 시를 가려내고 모아서 감상과 해석을 곁들인 시 에세이집이다. 나태주 시인은 추천의 말에서 ‘읽어서 마음의 꽃다발이 되고 샘물이 되었던 시 작품들’이라고 소개한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 시인은 오랫동안 아끼고 품었던 시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내어놓는다. 5개 테마로 묶인 77편의 시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기도 하고, 처음 읽는 시는 여러 가지 감정을 일으킨다. 시인은 꼭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두르는 일 없이 시로, 삶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한 편씩 읽다 보면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이 그랬듯,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시가 있다. 저자의 짧은 첨언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만난다. 위로가 필요할 때를 응시하는 1장부터 그래서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저마다의 시가 있어야 한다는 5장까지 순서대로 읽을 때 ‘시를 교재로 삼은 인생 수업’의 방향성에 더욱 수렴하겠으나, 조금 더 마음이 가는 부분을 먼저 읽어도 머물고 누리고 새기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백석의 시는 대표작이라 할 만한 한 편이 실렸는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작은 도서관에서 자기 돌봄 예술 글쓰기 강좌를 진행 중인데 자화상 그림을 보며 나를 생각하는 첫날, 필사할 선물로 드렸던 시다. 개인적으로 백석의 시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가장 좋아한다. 마냥 뭉클해서 한 행에서 다음 행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심정을 매번 경험한다. 어떤 시는 계절을, 하루에 속한 때를, 그 시간에만 들려오는 음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김현승의 ‘고독한 이유’에서 오랫동안 고독하다고 울부짖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는 “입버릇처럼 고독하다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인한 정신, 자기 단련, 맨손 체조라고 생각했다. 아, 그렇게 고독하다고 말하는 이를 폄하했던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메마른 사람이었던가.”(p.103)라고 고백한다. 내게도 운동이 필요하구나 생각하며 다시 시를 읽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목적 위의 목적이다.”(p.102) 목적에 넘치도록 부합하는 노래는, 시는 얼마나 이 땅을, 사람을 이롭게 하는지 감탄한다.
잉게보르크 바하만 시집은 《소금과 빵》을 가지고 있다. 종이는 갈변에 이르고 활자로 남은 잉크는 분해 직전이다. 소금빵은 구미를 당기는데 소금과 빵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양식에 담긴 긴박함을 연상케 한다. 바하만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작정한다. 작정이 너무 많다보니 장작처럼 높이 쌓여만 간다. 저자의 시는 <밥> 한 편이 담겼다. 그 많은 시 중에서 호명된 <밥>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읽어본다. 나도 밥을 위해 타협하지 않으며, 밥 값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외면할 수 없는 주제를 받아든다. 밥을 초월한 존재인 천사 이야기로 시작하는 <두이노의 비가>는 ‘제 1비가’가 실렸다. 여전히 경이롭다.
이 책은 시가 거의 모든 것이었던 시인의 추억 앨범과도 같다. 시간을 거슬러 함께 걸어보는 듯하다. 소개하는 시인에 대한 간략한 요약은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시집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무엇보다 시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의내리고 선언하는 지점들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시는 움직이는 생물이고, 우주의 비밀을 새긴 로제타석이라는 것을.”(p.153), “파블로 네루다는 물음 그 자체가 시임을 증명한다. 시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묾음으로 끝나는 것!”(p.158), “쉬운 시가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시는 만인의 감정과 조응하는 바가 있어야만 한다.”(p.203) “시는 심상한 것의 심상치 않은 발견이다. 아무 발견도 머금지 못한 시라면 밋밋하고 무의미한 말의 무더기일 테다.”(p.230), 새겨야 할 말은 계속된다.
정독 도서관, 서울시내 고전 음악감상실 등 엄마에게 늘 듣던 단어를 읽는 일도 즐거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거다. 저자로부터 더 많은 소개와 추천과 해석을 듣고 싶어서 이런 책이 2권, 3권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시집을 사러, 아니 구하러 나가고 싶다. 시집은 왠지 클릭으로 구입해서는 안될 것 같다. 몸을 이끌고 공기에 부딪히며 발로 나아가서 손에 매만지며 품에 꼭 끌어안고 와야 할 것 같다. 장석주 시인의 책이 그 길에 동행할 것이다. 추워지는 계절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파블로 네루다는 물음 그 자체가 시임을 증명한다. 시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물음으로 끝나는 것! 물음은 시의 첫 징조요, 첫걸음이고, 곧 피어날 꽃봉오리다. 물음보다 더 강력한 시의 촉배제가 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그것은 시의 알파이고 오메가다. 물음을 품지 않은 시는 좋은 시가 아니다. 그러므로 천진한 물음은 좋은 시의 새싹이다. (p.158)
(신간서평단_출판사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