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읽고 마음을 쓰다 - 3분 응시, 15분 기록
즐거운예감 아트코치 16인 지음 / 플로베르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즐거운 예감이 예술을 매개로 마법처럼 실현되었다. 예술 감성교육 플랫폼 즐거운 예감에서 배우고 성장한 아트코치들은 3분 응시, 15분 기록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 아름답게 펴냈다. 그림을 읽고 마음을 쓰다(플로베르, 2024, 328쪽 분량)16명의 즐거운 예감 아트코치가 꺼내놓는 마음의 지문같은 기록이다. 웃을 때만 즐거운 건 아니다. 기쁘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사랑스런, 애끓는 감정들이 미묘한 방식으로 매끄러운 표면을 뚫고 솟구치는 순간은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하는 동시에 정화시키고 결국 안심케 한다. 아트코치 16인의 기록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자는 한 점 그림과 그 그림으로 쓴 글 한 편에 빠져들고 나오기를 반복하다보면 시간이 흐른 줄 모른 채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즐거운 예감 대표이자 예술 교육자 임지영은 프롤로그에서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예술을 통해 그득히 길어 올려진다고 말한다. 그 소중한 것들은 1부에서는 먼저 나를 치유하는 그림 글쓰기2부에서는 우리를 치유하는 그림 글쓰기로 나아가고 각각 다섯 개 소주제 아래 다정하게 놓인다. 첫 번째 그림은 너무도 유명한 뭉크의 <절규>. 저자 김승호는 목소리가 소거된 듯한 이 남자의 외침에 걸음을 멈추고 위로 받는다. 고통의 본질을 이해시키는 그림으로 고통을 성장의 바탕, 희망의 모색이라고(p.23) 재정의 할 때 명화는 더 이상 멀리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듯 다양한 도안으로 활용되며 패러디 그림으로 희화화되기도 하는 명작이 오롯이 작품 본연의 깊이로 들어갔을 때 한 사람을 일으키고 독자의 마음까지 곧추 세우니 그림 감상은 휘발되는 무엇이 아니고 삶에 밀착한다.

 

김현수는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를 꼽지 않았다. 그녀는 머리와 마음이 복잡하면 <아티제 호수>를 보며 복잡한 심경들을 그 오묘한 물결에 흘려보낸다고 전한다. 갑자기 청량해지면서 지금 내 마음에 알게 모르게 들어찬 짐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덕분에 발견한 그림이 마치 나의 성취인양 뿌듯해진다.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은 예술교육 리더과정의 상징과도 같은 선물이다. 이 그림으로 쓴 학생들의 글도 보았고 참여자로서도 써 보았지만 저자 이혜령은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인정받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나의 얕음이 경박함으로 비치지 않도록 노력했다."(p.41)는 부분을 읽으면서 말도 안됩니다, 라는 추임새를 넣었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저기 얕게 파고 있다. 그러다 새로운 나를 대면하는 순간이 기쁘다.“(p.43)는 맺음에 뭉클해진다. 나의 두려움이 조금은 잦아든다. 어차피 얕게 파게 될 텐데 칸트를, 키에르케고르를 지금 시작해도 되겠어? 너 이러려고 시작하니 무책임하게, 라는 내면의 목소리에게 답한다. 얕게 파도 된대!

 

최영미의 <또 하나의 세계>는 저자 박은미에게 완벽한 또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멋진 증거를 간직한다. 최병일 저자는 김경민의 <돼지엄마>에서 고단했던 시절 기꺼이 희생했던 이 땅의 누이들을 기억하고 여전히 헌신의 아이콘인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라는 불멸의 이름을 저자 윤석윤은 정보경의 <어미, 분홍비>에서 뜨겁게 맞는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이 좋아서 집에 가면 과식을 했다.“(p.265)는 말에 목이 메이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저자 이화숙이 구채연의 <선물>에서 끌어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어머니가 받게 되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를 상상케 한다.

 

이렇게 쓰는 서평은 반칙이다. 끝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을 읽고 마음을 쓰다그렇게 하나만 더, 한번만 더 말하고 싶게 하는 책이다. 책은 한 점의 그림을 응시하고 써낸 결과물이 그토록 많은 시간, 그토록 짙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가에 경탄케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익숙한 장면, 모호한 경계, 바로잡거나 화해하거나 보태거나 덜어내어야 할 지점들, 미지의 가능성까지 한 점의 그림과 보고 쓰기로 한 진심 앞에서 단정한 온점을 허락한다. 그 온점은 아무리 작아도 단단한 디딤돌이 된다. 책을 읽고 나면 귓전에 미세한 울림이 남는다. 그래도 괜찮아, 이제 괜찮아, 라는 말이다. 여러 번 여러 목소리로 반복된 듯 하고 이 말은 독자 역시 공감케 만든다. 투명한 마음으로 써낸 글을 모아 독자에게 닿게 해주어 감사하다. 예술과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몸소 보여준 책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독자는 내가 선택한 그림과 이야기로 계속 이어지는 상상을 할지 모른다. 친근하게 말을 거는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될 모두에게, 마음으로 꼭 끌어안고 이야기를 시작할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바로 그 순간에 예술이 필요하다. 미술관에 가서 느리게 걸으며 삶의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내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 앞에 머문다. 그렇게 응시하며 그림 앞에 멈춘 나를 기록한다. 그 기록에는 지금 나의 마음, 현재 나의 상태, 잊었던 소중한 것이 다 들어 있다.(p.18, 임지영)

 

작가도 그녀의 어머니도 나도 모두 자신만의 점을 찍고 있다. 조금 느려도 남들과 달라도 괜찮다. 오늘 용기 내어 찍은 점 하나가 우리의 삶을 멋진 예술로 만들 테니까.(p.65, 김예원)

 

지금까지 세상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도 예술을 통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미래를 가꿔나갈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나를 대접하는 방법이다.(p.155, 이영서)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고 말했다. 별빛이 있는 줄도 몰랐던 나는 고개를 들어 별빛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림 앞에 서성이다 소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리렴. 너는 별빛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될 테니···.”(p.199, 우신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