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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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유년을 펼쳐놓을 수 있다면, 그래서 교집합의 범위를 상상할 수 있다면 그 안에는 분명 안데르센이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건 안데르센에서 비롯한 파편은 처음 떨어진 그 자리에 핀처럼 박혀 녹슬지 않은 채 그때의 감정을 오래도록 일깨운다. 안데르센의 흔적은 스치고 흘려보내는 상황들, 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멀어져가는 모퉁이마다 깃들기에 재회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고 그리움과 반가움은 늘 혼재한다. 어슐러 K. 르 귄은 안데르센의 힘, 섬세함, 창조적 천재성은 바로 자신의 영혼이 지닌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고 활용함으로써 나온 것이라며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리얼리스트 중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괴로움에 눈 감지 않고 현실을 직시한 예술가는 이야기 하나 하나를 완벽하게 빚어낸다. 이 책은 그가 집필한 160여 편의 동화 중에서 잔혹함이 부각되는 작품을 간추려 소개한다.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안데르센 원작, 센텐스, 2024, 272면 분량)은 고전문학 번역가 박예진이 꼽는 욕망, 사랑, 마법, 철학이라는 네 개 주제의 안데르센 동화 모음집이다. 각각 네 편의 동화 중에는 <인어 공주>와 같이 유명한 대표작도 있고, <마쉬왕의 딸>처럼 익숙하지 않은 작품도 실렸기에 안데르센을 다양하게 만나볼 기회를 선사한다. 책은 동화를 읽다가 역자가 발췌한 영문 문장과 해석에 주목하고 다시 동화가 진행되는 방식이 반복되며 말미에 필요한 정보와 해설을 덧붙여 독자가 한 번 더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석까지 곁들인 친절한 기획은 생각의 물꼬를 안내하는 반면 주도적 읽기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긴다. 자연히 완역 원전으로 재독하겠다는 다짐이 다음 독서 계획으로 잡힐 것이다.

 

동화의 선구자 안데르센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힘을 잘 보여준다. 영화, 연극, 발레, 애니메이션 등으로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독자를 찾아 왔지만 원형은 가장 빛이 난다. <어머니 이야기>에서 죽음에게 빼앗긴 아이를 찾아가는 모성의 여정은 고통과 사랑의 정점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조선경 작가가 그림 작업을 한 그림책을 다시 꺼내본다. <빨간 구두>에서 욕망과 억압, 모순을 읽을 때 구병모 작가의 <빨간 구두당>은 한 발 더 나아간 전복적 이미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가장 아끼는 이야기는 <성냥팔이 소녀>.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바꾸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아이는 지금도 소녀 앞에 있다. 나에게 최고의 안데르센은 어떤 작품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지금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이 동화의 기승전결 중 백미는 어디였을지, 내가 선택하는 명문장은 역자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가장 행복한 작품, 가장 가슴 아픈 작품, 이 동화는 작가에게 어떤 매듭이었을지, 어린이에게 성장이란, 성인에게 카타르시스란 어떤 의미인지, 메타포와 현실, 글과 삶은 어느 각도로 대치하고 있을지 또는 평행 이동일 뿐 합동에 근접할지 질문은 계속된다. <문장의 기억>시리즈의 두 번째 책, 안데르센에서 역자의 진심을 읽으며 다음 작가를 기대한다. 완역 또는 전작읽기를 향한 마중물이자 기록하고 기억할 활용서로 추천한다.

 

 

책 속에서>

-작품 속, 소녀가 성냥을 켤 때면 따뜻하고 맛있는 요리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소녀가 죽어가며 보게 된 환각 증세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성냥을 모두 꺼내 불을 붙였을 때는, 당연히 엄청난 양의 백린 연기가 뿜어져 나왔을 것입니다.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단순히 가난과 추위가 아니라 사회와 어른들의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성냥불 이면에 숨겨진 내막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읽지 못했던 동화의 배경을 성인이 되어 이해했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동화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내막을 알고 나니 어릴 적과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p.234)

 

-인생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다. 가사만 망가져 있다.(p.262)




(서평단_출판사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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