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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이미 지나온 과거는 어쩔 수 없는 고정이고 불변이라는 의미에서 끝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최은영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문학동네, 2023, 352쪽 분량)』은 끝나도 끝난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온전한 마침을 위한 복기는 그 시간 함께였던 이들을 향하는 깊은 포옹이고 그 포옹 끝에 안기는 건 자기 자신이다. 과거는 털고 묻어야 할 게 아니라 응시하고 언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배운다. 고되고 불편한 과정을 작가가 대신해줄 때 어떤 문장에서는 속이 시원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부끄럽고, 때론 독서실인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앉아있다. 한뼘 위로받기도, 다행이야 싶은 지점도 만난다.
최은영은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하였고 작품으로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등이 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등단 10년이 되는 해에 지면에 발표했던 중단편 7편을 묶어낸 소설집이다. 이중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2020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에서 최은영은 자신의 결핍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핍을 적대하지 않고 동행하겠으며 무엇보다 찾아오는 감정을 마다하지 않고 지켜보겠다고 전한다. 이는 살아가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읽기와 쓰기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는 길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 그 길을 걸어가는 두 여성을 통해 묻는다. 영어 에세이 강사는 희원에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멘토였고, 잃어버린 멘토가 된다. 희원은 그녀가 남긴 희미한 빛,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내뱉은 흰 숨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몫>은 화자 자신(해진)을 이인칭 대명사 “당신”으로 칭하며 대학의 교지 편집부에서 만났던 정윤, 희영과의 시간을 복기한다. 자신을 당신으로 부르는 거리두기는 화자에게 더욱 엄격하겠다는 의지로 다가오고 독자 역시 긴장하여 세 인물의 선택을 읽는다. “당신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후략)”(p.52) 이런 글은 이미 글이 아닐 것이고 글 안에 증명할 수 있는 실천이 녹아난 행위의 결집이지 않을까. 결국 글처럼 삶은 살아진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다르지 않다.
<일 년>은 이야기가 주제다. 이야기 수위 지침이라는게 있으면 어떨까. 적정선을 넘어 실례의 영역으로 무단 침입하는 상황을 그려볼 때 말하는 이에게 더 실례일까, 듣는 이에게 더 실례일까. 가끔 생각해온 이 문제가 여전히 어렵다. 그녀와 다희가 카풀을 하면서 일 년간 보낸 시간, 나눈 이야기를 그리는 <일 년>은 이야기의 대척점에 “기계”를 놓는다. 감정이 없고 단단한 속성은 오히려 안도감을 준다. 이 작품에서 “희미한 빛”은 이야기다. “그때, 둘의 이야기들은 서로를 비췄다.”(p.123) 사라지는 것 없이 살아있는, 그 자체로 온점이 찍히는 결말도 담백하고 거리를 두는 시점도 이를 돕는다. 세 번째에 <답신>이 실렸다. 책 말미 해설에서 평론가 양경언은 <답신>이 “나”와 “언니”의 개인사를 넘어서는 “사회가 구조적 취약성의 문제를 방기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p.335)이라고 본다. 괴로운 이야기인데 현실 밀착형 사건이라 더 괴롭고 무력하게 읽고 있다는게 또 괴롭다. 그러나 간절한 소망을 담아 “‘그래도’ 남기는 이야기로”(p.336) 라는 데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는다.
<파종>은 희미할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회복한다. <이모에게>에서 희진은 “방화문을 닫듯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의 불길로부터 안전했다.”(p.258) 하지만 닫히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고백한다. 소설은 마음의 안전장치를 사수하는 열 가지, 스무 가지, 백 한 가지 방법 찾기가 인생인가 자문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이가 안심하기를, 그의 손을 이끌고 “조종실에서 봤던 가장 아름다운 하늘을 모아”(p.264) 이모에게 보여주기 원한다. 이 빛은 희미하지 않다. “저 너머의 눈빛”(p.265)은 꺼지는 법이 없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기남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부끄러워도 돼요.”(p.319)라고 말한다. 소년의 천진한 목소리는 단번에 어떠어떠했던 것이, 하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워 오래 자신을 옥죄었던 결박을 푼다.
작가는 스며드는 문장으로 말을 걸어 놓치고 온 것을 살피게 해준다. 외면하고 온 것을 다독이게 만든다. 무시로 겪는 감정을 친절하게 언어화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줄 때 이것만으로도 힘을 얻는다. <일년>에서 “서운함”을, <답신>에서 “수치심”을 다시 들여다본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에서 “기만”의 이유, 기만이 쓴 가면, 작동과 결과를 본다. 이번에는 밝은 밤이 아니다. 희미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시공간을 밝힐 수 있을까? 우리 안에 흩어져 있는 어떤 때, 어떤 곳까지 파고들어 정확히 조명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어둠에 익숙해진 시각이 통로를 발견하고 탈출의 가능성은 보장받는다. 희미하지만 사그라들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뿌리 내리는 이야기들은 뿌리에서 잔뿌리로, 다시 솜털로 뻗은 끝에 조용히 단물을 빨아올린다. 버석거리던 갈증은 가라앉는다. 오아시스 곁에 마음 내려놓고 쉴 수 있다면 빛은 희미해도 고맙다. 이 고마운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닿기를.
책 속에서>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해주는 경험을 했다.(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