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 인간의 시계로부터 벗어난 무한한 시공간으로의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현주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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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동화를 연상케 하는 시적인 제목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은 다양한 주절을 붙여 문장을 완성해 보게 한다. 문학 작품의 주제로 시간은 매력이 넘치기에 그런 책들은 더욱 각별하다. 한동안 여운에 사로잡히는 <트리갭의 샘물>부터 초침 소리가 진동하는 듯한 <타타르인의 사막>, 과학자 류비세프의 도전을 담은 기록물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가 떠오른다. 시간은 거울과 같이 인간을 그 앞에 세우고, 재판관처럼 과오를 드러내는 전천후 저울이자 사라지지 않는 기준이라는 시선은 보편적이다.

 

그에 비해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김보희 옮김, 이중원 감수, 쌤앤파커스,2021, 2014, 220쪽 분량)은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기존의 시공간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과 이탈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초청의 책이다.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 현재 프랑스의 대학에서 이론 물리학센터 교수로 강의 및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저서로 <모든 순간의 물리학>,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등이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함께 꿈을 꿀 벗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상상 속 여행과 길 위의 여행”(p.9)을 떠났던, 그리고 진리를 찾기 위한 모험을 위해 홀로 여행했던 청춘의 때를 회상한다. 책은 호기심과 꿈이라는 푯대를 향했던 모험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과학의 길을 넓히고 새로운 차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복기한다. 20세기 과학적 대혁명은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두 가지 축으로 대변할 수 있으나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개념에서 각각 서로 모순되는 과거의 개념으로, 둘을 연결하는 것은 양자중력”(p.21)의 핵심문제다.

 

막다른 길이라는 스승들의 만류에 청춘의 즐거운 고집”(p.22)과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그를 나아가게 만든다. 저자는 동료 리 스몰린과 함께 공간을 재정의한다. 공간은 일차원 물체인 루프들로 짜여 있으며, 이 루프들이 세 개의 차원상에서 서로 엮이며 삼차원의 직물을 형성한다는 이해는 공간이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p.60)고 공간 대신 입자들, 장들, 중력자의 루프들과 이들의 상호작용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데 이른다.

 

저자는 계속해서 악화되어온 과학의 이미지와 왜곡된 시각을 우려하며 과학적 사고의 힘은 과학적 사고의 특징인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고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올리는 능력”(p.81)이라며 과학의 핵심을 변화라고 꼽는다. <공간의 역사>편에서는 고대 역사까지 거슬러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의 공간을 사물간의 관계에서 보는 관점과 뉴턴의 항상 존재하며 하나의 구조를 가진 개체로 보는 시선을 비교하는데 흥미롭다.

 

이보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시간 테마다. 우주 속 모든 물체는 각각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있으므로 시간에는 지역적 조건이 있다, 일기예보와 같다, 분리된 시간과 공간이 아닌 시공간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등의 전개는 솔깃하다. 그리고 시간의 부재를 선포한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중략) 이 세상을 비시간적인 표현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p.144)는데 이는 우리에게 유익이 될까, 만일 사실이라면 유익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최신의 전자기기를 들여와 완벽히 다룰 수 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하며 부지런히 매뉴얼을 익힐 때의 설렘을 연상하며 적극적으로 방법-비 시간적 표현을 통해 세상 이해하는 법-을 요청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때 저자의 벗 리 스몰린은 시간을 부활시킨다. 항상 시간이 문제다.

 

저자는 수학자 알랭 콘과 시간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만 드러나는 창발현상이라는 지점까지 이른다. 창발의 사전적 정의는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다. 시간은 엔트로피화의 방향에 지나지 않고 엔트로피의 증가가 관찰되는 방향을 시간이라고 부른다. 물체가 낙하하는 방향이 아래, 열이 식는 방향이 시간이라는 결론이다. 이 책은 관심과 사유가 질문이 되고 과학적 성취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한 과학자의 추구와 지향, 관계를 맺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홀로 실험실에 또는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숫자와 공식만 파고들지 않는다. 행동하는 지성의 진면목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경청하고 인정하는 의사소통 방식에서 빛난다.

 

에필로그에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짚으며 같은 토양에서 자란 과학과 민주주의를 연결할 때 이는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내리는 과학의 정의는 유토피아처럼 근사하고 그가 학교에 바라는 공부의 참모습은 르네상스적 인간이 자랄 토양과도 흡사하다. 책에서 스승과 동료에게 돌리는 헌사와 미래 과학자들을 향한 애정 가득한 격려를 만난다. 끝까지 수학은 나를 눈물 나게 했고 물리는 나의 뇌구조를 평면이 아닐까 좌절케 했다. 그럼에도 시적 제목의 밤하늘 같은 커버를 지닌 친절한 분량의 과학서가 페이지를 뚫고 나오는 저자의 진심을 그대로 전달한다.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의 감동을 경험케 하는 책이다. 명랑한 위트와 적절한 비유,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까지, 곧 당신도 저자의 또 다른 책을 펴게 될지 모른다.

 

 

 책 속에서>


결과적으로,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관계적인 개념이 된다. 시간은 사물들의 다양한 상태 사이의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p.152)

 

한편 이러한 모험은 합리성에만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다. 물론 과학적 모험을 공식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은 직관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과학은 꿈에서 출발하고, 그 꿈이 지배적인 기존의 꿈들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 이는 비로소 전 인류의 공통의 꿈이 된다.(p.101)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볼테르의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동시에 과학적 방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결국 정확히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지역에서 함께 태어난 과학과 민주주의는 동일한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고요한 합리성, 지성, 대화의 정신이다. 이 정신은 우리 문화를 뒷받침하는 한 축을 맡고 있다.(p.207)

 

과학은 과학 그 자체로서 가르쳐야 한다. 과학은 매력 가득한 인류의 모험인 동시에, 대혼란 속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끈질기게 탐구할 때 어지러울 정도의 개념적 도약을 거쳐 마침내 퍼즐 조각들이 맞아떨어지는 번득이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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