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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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1952, 176쪽 분량)는 우리가 바라고 감당해가는 일생이 어떠한가 묻는 상징과 은유 가득한 희비극이다. 일생은 하루 하루를 잇대어 나갈 때 만들어지고 각각의 날들은 조바심을 일으키다가도 무료하고 적막하게 숨을 짓누른다. 에스트라공에게는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타자가 있고 일상을 비롯해 속 깊은 감정까지 교환하지만 소통은 충분하지도 적확하지도 못하다. 말은 조리를 잃고 기억은 불확실하며 육신은 쇠약해간다. 만담처럼 주고받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대화가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서도 묵직한 의미를 드러낼 때 독자는 그 문장이 함축하는 뜻을 이미 알고 있다. 각본대로 움직이는 인물과 무대는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와 그 삶의 반경으로 대치된다.

 

사무엘 베케트는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한 이유를 모국어보다 습득해서 배운 언어가 스타일 없이 쓸 수 있어 쉽기 때문”(p.159)이라고 밝힌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사람들의이야기이며 언어의 정수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p.160)에 접근하도록 이끈다. 작가는 고도의 의미를 묻는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에게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하니 독자는 자기만의 고도를 헤아려볼 수 있겠다. 개인적인 고도 역시 시와 때에 따라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출간 다음 해, 파리 초연 이후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피가로)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명성을 얻는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와 실존주의 사상을 빼어나게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2막으로 구성된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느 날 저녁,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시골길을 배경으로 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긴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언제라도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동시에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미 무용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고도. 이 기다림은 유일무이한 가치이고 사명이기에 모든 악조건은 진지한 푸념의 대상은 못되고 단지 지루함을 떨치려는 소소한 시도 중 하나가 지껄이기다.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침묵 대신 지껄임을 택하고 청각에 의지해 모든 소리를 민감하게 모으기도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심각함을 농담으로 희석하고 영 이치에 맞지 않는 행인들에게 주의를 돌리기도 한다. 포조와 럭키의 관계는 터무니없을 만큼 부조리하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주목하며 비합리의 근거를 넌지시 건네나 포조의 변은 또 다르다. 포조와 럭키의 2막 재등장은 어떤 의미에서 저놈과 내 처지가 바뀌지 말란 법도 없지.”(p.49)라는 1막의 대사를 상기하게 만든다. 게다가 막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어린 소년은 고도가 오지 않으리라는 소식만을 전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에 오래 머문다. 뒤에 생략된 말은 무엇일지 가늠하자니 고도를 기다리며 떠나 보낸 삶”, 고도를 기다리며 채워간 인생, 고도를 기다리며 견딘 시간, 고도를 기다리며 받은 고통, 얻은 홧병 아니 우울까지 이르더니 고도라도 기다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렇기에 감사한 인간의 조건, 실존에 닿는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간격을 고도를 기다리면서 메꾼다. 울고 웃고 화내고 애원하며, 이성과 감정을 두서없이 섞어 다져 넣는다. 그러다 보면 난데 없는 걸작도 만들어내고 원하지 않는 엉망도 쌓으며 부지런히 부산물을 분리수거하고 반복적으로 지쳐 떨어지기도 할 것 같다. 구두를 탓하고 외투를 탓하며 체중을 또는 마른 나뭇가지를 탓하며 졸고 바라고 다시 잠들고 깨는 인생을 책은 너무도 잘 보여준다. 또한 기다린다는 행위가 애초에 주체적일 수 있을까? 이에 주목할 때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겹친다. 드로고가 요새를 향해 첫 발을 뗀 9월 어느 아침부터 혼자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시간의 돌이킬 수 없는 도주와 삶을 바스러뜨리는 시계추를 숨 막히게 형상화한 작품을 불러낸다.

 

고도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이미 스쳐갔는데 못 알아본 것은 아닌지,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데 여전히 불순물 과도한 선함이기에 눈에 띨 새라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고도는 영적 존재일까, 절대자이며 구원자일까, 꿈과 희망, 행운이고 기회일까, 아니면 일상을 혼란시키고 몰입을 흔드는 유혹자일까, 고대하는 변화이고 성장일까, 탈 매너리즘 또는 부단한 깨어있음일까, 역시 모를 일이고 애쓰고 힘써 알기 원하는 날들의 부피 없는 덧댐이 살기일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주기적으로 읽어야 할 작품이다. 이런 책은 열 살 이후로 5년 또는 10년 주기로 재독하고 감상을 남기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알려줬는데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열 살 독자는 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지 모른다. 스무 살 독자는 모호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견할까. 밑줄 부분이 포개질 수도 추가될 수도 있겠고, 지워야할 밑줄도 생길까? 읽을 때마다 감상은 겹치는 면적과 어긋나는 면적이 차이를 보이고 그러다 언제쯤엔 슬프고 눈물 쏟을 나이도 있을 테다.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힐 작품이다. 간결한 대화는 다양한 감정을 불러내고 주의 깊은 사유로 이끌 것이다. 글로 읽어도 소리로 들어도 좋겠지만 지금 공연 중인 국립 극장의 연극으로 만난다면 벅차오를 것 같다. 가장 기대되는 장면은 물론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갈 순 없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와 럭키의 쉴 틈 없는 독백 장면이다. 70여 년 전에 쓰여진 글이 페이지에서 튀어나와 노배우들로 분한 현실 매직을 꼭 직관하고 싶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마지막 페이지에 투명한 도돌이표가 찍힌 듯 다시 첫 페이지를 열게 만들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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