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지음 / 난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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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난다, 2021, 312쪽 분량)』는 영화 평론가 이상용의 봉준호 감독 영화 비평집이다. 책의 제목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수상 인터뷰 중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p.8)라는 감독의 말에서 취했다. 영화라는 언어로 한국은 물론 세계와 공명하는 동시대 감독의 작품을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는 일은 우선시 되어야 하겠지만, 채로 거르고 각을 맞춰 정련한 또 다른 언어로 살펴보는 일은 기대했던 것보다 근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영화광은 아닌데 자칫 영화 비평집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생겼다. 이상용은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첫 번째 영화 평론집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2008), 특별 프로그램인 부산 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를 묶은 『안나 카리나』(2010) 등을 썼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1993년 <백색인>부터 2019년 <기생충>까지 7개 장편과 5개의 단편영화 전작을 담고 있다. 챕터1 “짧은 연대기”는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아우르는 현재의 봉준호 감독이 되기까지의 주요 작품과 삶을 스케치한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되었던 <괴물>의 프랑스 잡지 인터뷰 제목이 “삑사리의 예술”(p.28)이었으며, 잡지 필진은 “삑사리”가 의미하는 아이러니와 유머를 봉준호 영화의 핵심으로 본다. 챕터2 “부치지 않은 편지”는 <기생충>의 마지막에 모스부호로 편지를 쓰는 아버지 기택과 답장으로 “근본적인 계획”(p.39)을 전하는 아들 기우를 소환한다. 과연 기우의 편지는 누가 수신인인가를 물으며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도둑맞은 편지>, 이를 둘러싼 유명한 분석인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 슬라보예 지젝의 분석 중 대타자 개념까지 전개한다. “대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다.”(p.45)라며 봉준호 영화는 자주 관객에게 시선을 던져왔음을 밝힌다. 일종의 권력인 대타자가 된 관객은 봉준호의 편지를 잘 읽어내야 하는데 이 책이 그 작업의 일부가 된다.


챕터3 “추격하는 세계”는 봉준호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추격전에 초점을 맞춘다. 목표가 분명한 게 추격전인데 그의 영화는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관객은 이를 오히려 반긴다는게 주목을 끈다. “추격의 대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현실이거나 현실이 담긴 심연”(p.62)이기에 관객은 다시 대타자로서 편지의 수신인이 된다. 또한 쫓는 자의 위기에 대해 니체의 저작을 인용하는데, 괴물을 추격하다 스스로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은 분명 경계할 지점이다. 챕터4는 괴물을 직접 조명한다. 한국 영화에서 괴물 캐릭터의 변천사에 이어 봉준호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괴물이 지닌 평범함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연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괴물은 목격담 속에, 소문 속에, 미디어 속에서 일그러진 채 현실을 지배한다. 그 효과 자체가 괴물이다.”(p.94)라며 무지와 오인, 맹목성에서 벗어나 어둠을 응시할 것을 제안한다.

챕터5, “보는 것의 변증법”에서는 봉준호의 인물을 가르는 기준인 보는 자와 보지 못하는 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괴물>에서 강두는 잠이 많고 우둔한 캐릭터에서 보는 자로, 이에 더해 “끊임없이 보는 자”로, 다시 “깨어 있는 자”(p.121)로, 종국에는 “눈을 치켜뜬 파수꾼”(p.122)으로 바뀐다. <훔쳐보는 것>편에 등장하는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은 눈에 띈다. 불쾌함과 매혹이 뒤엉킨, 더러운 동시에 자신(인간)으로부터 나온 것들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는 논리는 또 하나의 관점을 형성한다. 저자는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부터 다양한 아브젝시옹의 예를 손꼽는데 단연 <기생충>에서 정점을 이룬다. 챕터6 “헤테로토피아에서”는 유토피아와 대립되는 새로운 용어 헤테로토피아를 소개한다.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에 처음 등장하여 보르헤스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언어이건 공간이건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와해”(p.153)시키는 헤테로토피아는 독자를 각성시킨다. 봉준호 영화에서 변주될 때 특히 지하실이라는 장소가 헤테로토피아에 해당한다. 챕터7에서는 이야기의 기능과 효과를 영화를 통해 살피고, 봉준호표 가족멜로드라마를 환기시킨다. 챕터 8 “사물들, 기호들” 중에서 “골뱅이와 황금 돼지”에 나오는 “유사”와 “상사”의 비교, “상사”의 적극적 표현 방식 중 하나인 “패러디”(p.219)가 특히 흥미롭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봉준호 영화 전작을 보았어야 되는 게 아닐까를 염려했는데 다행히도 언급되는 장편은 다 관람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도 읽기는 가능하겠다. 그럴 경우 아마도 영화 비평서보다는 인문학으로 읽히겠지만 친절하게도 챕터10에 작품 리스트를 실었다.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데 요약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는 요약의 진수를 배우는 건 덤이다. 『봉준호의 영화 언어』는 스크린 위에 흐르고 지나가는 영상을 활자로 붙잡아 전해주는 감사한 책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 나오면서부터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하는 영화라는 예술 종합선물세트를 그 시간을 아꼈던 관객이 놓치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매듭지어준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하나의 주제로 헤쳐 모일 때마다 비밀을 이해한 듯 뿌듯함이 차오른다. 영화의 그 장면, 배우의 그때 표정, 아슬아슬했던 긴장과 엉망진창인 사태, 삑사리로 인한 급작스런 웃음이 교차하며 과거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으로 한꺼번에 넘어온다. 또 다른 영화들 특히 히치콕 작품과의 비교도 다시금 감상하고 싶게 만든다. 무엇보다, 풍성한 인용이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늘리는 부담보다는 너무나 궁금하다는 설렘으로 기운다. 봉준호의 영화는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집중한다는, 그의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최소”에 있다는, 도착하려는 목적지가 정복하다 또는 굳게 서다가 아니라 “흔들린다.”(p.263)라는 발견이 기쁘다. 우리 영화사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고 사회의 현주소, 삶의 진면목을 응시하는 일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 <무제>가 책의 표지에서 강렬하다. 압도하는 블랙 밑에서 붉은 생명이 눌리지 않기를 바란다. 푹신한 솜뭉치 그 뽀얀 완충제가 넉넉해야 가능할 것이다. 2023년 마지막 책이고 마지막 서평이다. 몇 해 전 김민영 선생님의 추천으로 계속 읽고 싶던 책을 비로소 읽었다. 이어서 도서관 동아리의 토론도서로 추천하였기에 논제를 만들어볼 차례다. 이 탁월한 비평서를 권한다. 일회독으로는 아쉽고, 여러 번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내어줄 책이다.



책 속에서>

-봉준호 영화의 시각적 변증법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둠으로써 일어나는 착시 효과인 동시에 각성을 일으키는 비전이 된다. 그 시각적 형상은 입체파의 그림처럼 완전히 왜곡되어 있지는 않을지라도, 현실을 비틀어 그 틈새로 들여다보게 하는 인식의 공간을 만들어낸다.(p.147)

-“흔들린다.” 그것이 봉준호의 영화가 도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다.(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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