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 - 오리지널 완역 일러스트 에디션
모리스 르블랑 지음, 벵상 말리에 그림, 권은미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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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팽과의 첫 만남은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을 탐독하던 유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은 모든 면에서 뛰어났지만 탁월함을 더욱 빛내는 건 여유와 유머였다. 아르센 뤼팽이 아니라 괴도 루팡으로 각인되었던 인물을 긴 시간을 건너와 다시 만나니 반갑다. 모리스 르블랑의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권은미 옮김, 주니어김영사, 2023, 1907, 292쪽 분량)』은 아홉 편의 에피소드로 이중적 이미지를 간직한 최강 캐릭터 뤼팽을 선보인다. 플로베르를 흠모하며 작가를 꿈꾸었던 모리스 르블랑이 첫 단편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를 발표한 게 1905년이었고 이는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진다. 2년 후 출간한 단편 모음집이 바로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이다. <기암성>을 비롯해 생기를 잃지 않는 대표 작품들은 여전히 새로운 번역 소식이 들릴 때마다 독자를 설레게 한다.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은 세련된 도주의 명수로 기억하고 있는 뤼팽의 체포를 제일 먼저 배치한다. 호화 여객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외부의 도움이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괴도와의 동행이 알려지자 의심과 불안은 커져만 간다. 뤼팽으로 추정했던 로젠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아르센 뤼팽, 그는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었다.”(p.20) 불확실성이 주는 두려움, 익명의 공포를 구사하는 문장은 독자를 같은 공간으로 초대한다. 뤼팽은 넬리 양의 눈앞에서 100년을 살아도 잊지 못할 것이라는 무참한 순간을 맞는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힌다.

이름도 스산한 사탄 남작은 아무도 들이지 않는 자기만의 성에서 진기한 보물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두려움은 커져간다. “구두쇠처럼 악착같이, 또 연인처럼 질투에 사로잡혀”(p31) 사랑하는 보물이건만 귀하의 보물을 훔쳐가겠다는 뤼팽의 편지가 도착한다. 교도소에 수감된 채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는 뤼팽의 절도 예고라니. 지키려는 자와 빼앗겠다는 자의 심리는 한 순간에 주객이 전도된다. 불안에 떠는 자는 누구일까.

게다가 “나는 내 재판에 참석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공지까지. 그는 덧붙인다. “아르센 뤼팽은 자기가 있고 싶은 만큼만 감옥에 있지, 1분도 더 있지 않습니다.”(p.60)라고. 뤼팽의 당당함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라 오히려 재론의 여지를 차단한다. 신비롭기까지 한 그의 언행은 등장 인물들을 놀래키고 독자에게 와 닿으며,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선언이 지켜지기를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이야기 <헐록 숌즈, 한발 늦다>에서는 넬리 양이 재등장하고 홈즈에서 이름을 정정한 숌즈의 출연까지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작가가 인간의 마음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내밀한 심리를 기록할 때마다 보편적 정서에 함께 물들고 적확한 지적에 공감하고 만다. 시대를 앞서가고 있는 듯한 통찰을 만날 때는 놀라게 되며 감정과 심리, 풍자와 회한이 풍부하게 전달된다. 자연과 배경을 꼼꼼하게 묘사할 때는 분위기까지 생생하다. 매력적인 인물, 극적인 사건, 다채로운 배경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벵상 말리에의 삽화까지 더해지자 유년의 추억은 소중해지고, 만일 첫 만남이라면 다음을 상상하는 기대로 마음은 부풀 것이다.

책 속에서>

우리의 적수는 그런 낡은 수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는 최신의 수법, 아니 차라리 미래의 수법을 사용할 인물이지요.(p.49)


(신간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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