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는 일정한 속도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위로 머릿속 필름이 한 장씩 내려꽂히고 쌓인다. 그런 페이지는 낱장임에도 꽤 두꺼워져 버릴지 모른다. 『삶의 모든 색』은 잊었던, 가려졌던, 감췄던, 무시했던, 아꼈던, 사랑했던, 웃음과 눈물로 덧칠했던 그때 그 순간을 소환한다. 영사기가 먼지를 내며 회전할 때 낡은 스크린 위로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토록 반짝이다니. 경이로운 수레바퀴가 작동한다. 생의 수레바퀴다.
리사 아이사토의 『삶의 모든 색(김지은 옮김, 길벗어린이, 2021, 2019)』은 모두의 생에 바치는 찬가이다. 작가는 고운 장면만 추리기 위해서 임의로 배제하지 않았으며 서두르는 서투름과도 멀다. 95컷 그림을 담은 총 200쪽 분량의 책은 압축과 상징, 여백과 여운으로 인생 파노라마를 펼쳐낸다. 무엇 하나 놓치는 법이 없는 작가의 통찰은 놀랍다. 리사 아이사토는 노르웨이에서 최고의 그림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일러스트 작업을 한 <책을 살리고 싶은 소녀>로 수상을 했으며 <삶의 모든 색>은 2019 노르웨이 북셀러 상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