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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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안미란 옮김, 민음사, 2010, 1879, 148쪽 분량)』은 성숙한 소통, 인격적 대화가 없는 곳은 어디나 인형의 집, 가식의 성임을 말하는 희곡이다. 피상적 대화는 시간을 잠식할 뿐이고 어느 날 상대가 낯선 이라고 깨우칠 때까지 어떤 가치로도 축적되지 못한다. 희곡의 종결 부분에서 부부는 결혼 팔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문제에 관해 진지한 대화”(p.114)를 하게 된다. 노라는 아버지 소유 인형의 집에서 남편 소유 인형의 집으로 평행 이동했음을 자각한다. 일상은 재미있었을지언정 행복에 도달한 적 없었고 가장무도회와 같은 놀이의 연속은 교육에 배치되었다. 그녀는 늦게나마 비로소 자아 찾기의 여정에 오른다.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헨리크 입센은 1850년 필명으로 발표된 <카틸리나>로 데뷔하여 반세기에 걸쳐 1편의 단막극을 포함하여 모두 25편의 희곡을 발표했다. 입센은 근대 시민극 및 현대의 현실주의극을 세우는 데 공헌하면서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의적 망명으로 고국에 대한 객관적 시선을 확보하고 ‘사회변혁의 옹호자’, ‘삶의 위선에 반대하는 투쟁자’가 될 수 있었다. 현재 영어권에서 꼽는 입센의 4대극은 <인형의 집>과 <유령>(혹은 <들오리>), <헤다 가블레르>, 그리고 <대건축사 솔네즈>다.(이현우)

<인형의 집>은 전 세계 무대에 끊임없이 오르며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외출에서 돌아온 노라는 기분이 좋다. 크리스마스를 위한 트리와 선물을 마련했고 무엇보다 해가 바뀌면 남편 헬메르가 은행 총재로 부임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즐거워하는 아내 노라를 종달새, 다람쥐, 또는 낭비꾼 새, 군것질쟁이라고 부른다. 애정어린 호칭에 답하는 노라의 세계는 주머니 안에 남아있는 마카롱처럼 화사하고 달콤하다. 노라는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 크리스티네의 은행 일자리 부탁을 흔쾌히 허락한다. 그녀가 “고생이라고는 모르는 네가”(p.24) 도와준다니 더 고맙다는 말을 하자 노라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건강을 잃은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남편 모르게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리고는 혼자 어렵게 갚아왔던 것이다.

노라는 자존심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편이 이 일을 안다면 “우리의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거야.”(P.28)라고 이유를 댄다. 문제는 노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변호사 크로그스타드가 크리스티네 때문에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데 있다. 크로그스타드는 노라의 비밀을 빌미로 업무에서 밀려나지 않겠다는 행동을 취한다. 노라는 남편을 속인 일에 대한 두려움과 그럼에도 자신을 지키리라는 희망 사이에서 고통받고, 희망은 절망으로, 절망은 돌이키지 못하는 각성으로 이어진다.

희곡은 노라가 집을 나가는 결말로 맺는다.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뒷이야기는 수 차례 작품화되기도 했는데 채만식 최초의 장편소설로 ‘노라의 후일담’이라고 불리는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에서 노라는 주인공 임노라가 된다. 옐리네크의 <노라가 남편을 떠난 후>(1977)는 집을 나간 노라의 홀로서기 분투 및 실패기로 씁쓸함을 준다. 결심만으로 만족스러운 성취를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변화와 성장으로 인도하는 길은 무수한 장애물이 깔렸을뿐더러 흐릿한 등대는 오히려 혼란을 가져온다.

그럼에도 노라를 응원하는 이유는 “인형의 집”이 깨어야 할 알이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라는 데미안의 지침은 언제나 유효하다. 노라의 집이 “인형의” 집이 아니었다면 그 알, 그 세계에서 유의미한 변화와 성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함을 각성한 노라의 다음 행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문 밖 찬바람 같은 타인의 시선은 소설이 출간된 당시에 비해 꽤 부드러워졌을지 모르겠다. 140년 전 소설은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를 여전히 묻고 있다. 성장의 계단을 오르고 있나, 자족하면서 매너리즘에 갇힌 건 아닌가, 어쩌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쳇바퀴 위인가를 답해야 할 차례다.


책 속에서>

노라: 아니요.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 요.

헬메르: 아니라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라: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 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 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 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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