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청소년판)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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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다즐링, 2023, 308쪽 분량)』는 사랑받았지만 느끼지 못하는 아이와 간절히 원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아이를 그린다. 둘의 결핍 지점은 엇갈리고 이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투명한 창처럼 사람들을, 관계를, 현상을 있는 그대로 통과시킨다. 안전장치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다. 편 가르는 선, 비난의 시선, 날아오는 무기를 자기 능력껏 막아내고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는 안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미션은 클리어해야 하는 법이다. 작가 손원평의 등단작이자 제 10회 창비 청소년 문학 수상작인 『아몬드』가 새로운 옷을 입고 재출간되었다. 뒷모습을 담은 성인판과 소년의 옆모습인 청소년판, 두 개의 선택지 중에서 아련해 보이는 청소년판을 선택했다.

손원평은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서른의 반격』 『프리즘』 『튜브』등 장편소설과 소설집 발표 외에 영화 각본 집필과 연출을 했다. 『아몬드』는 아시아권 최초로 일본 서점대상 1위에 오른 책이기도 하다. 절판 후 재출간된 다즐링 판본의 최대 강점은 추가된 단편 외전 <상자 속의 상자>다. 윤재가 참담한 비극을 유리창 안에서 바라보고 있을 때 밖에 있던 목격자 중 한 사람의 이야기다. “단속한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주먹을 들면 안 되는 것처럼 누군가를 돕기 위한 손길도 내밀어서는 안 된다.”(p.277)라고 마음을 다잡던 남자를 통해 묻고, 동조하고, 결국 정화되는 체험을 선사한다. 바닥에 떨어진 금속조각들의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금으로 변하는 눈부심 같다고나 할까.

소설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윤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롤로그 첫 문장에서 서술자는 이 소설이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p.9)라고 요약한다.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칭한 이유는 모두에게 있는 ‘아몬드’가 자신에게는 정상 범주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아몬드, 즉 편도체의 이상이라는 선천적 결함을 충분한 근거로 확정했고, 가족은 아이가 다르지만 달라 보이지 않는 법을 익혀 눈에 띄지 않고 사회에 수용되기를 최대 목표로 삼는다. 할멈은 윤재의 인생에 갑자기 등장해서 엄마가 잡고 있는 반대편 손을 잡아준다. 굳건한 지지는 외부의 가공할 충격으로 끊어지고 마는데, 이별은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다. 혼자 남은 윤재를 돕는 심 박사, 또 다른 괴물이라 부른 곤이, 곤이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도라가 등장한다. 엄마와 할멈은 윤재의 안전 마지노선이었는데 울타리는 깨어져 버렸고, 다른 의미로 괴물인 곤이는 손 잡아주는 엄마를 애초에 잃었다. 대신 평생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p.127)는 신조를 지켜온 아버지 윤 교수가 “왜”라는 의문을 품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선의 의미를 곤이는 안다.

윤재의 성장은 습기를 흡수하지 못하는 습자지가 조금씩 물을 머금게 되는 과정에 견줄 수 있겠다. 물론 급격한 변화의 계기도 마련된다. 반면, 곤이의 상처받은 여린 마음은 거친 행동으로 표면화된다. 일종의 방어기제일 텐데 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윤재다.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는 것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p.234) 이처럼 소설은 언어의 한계뿐 아니라 ‘역설’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고(p.22) 이에 부합하는 역설적 상황을 곳곳에서 제시한다.

소설은 윤재의 성장담에 그치지 않고 곤이를 비롯한 등장인물 각각의 서사를 고루 조명한다. 빵을 구우면서 자신만의 애도를 실천하는 심 박사,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고 싶다며 눈물을 보이는 윤 교수, 여름 바람 같은 친구 도라를 이야기한다. 성장이 생리적 성장기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꽤 늦은 시기에 알을, 세계를 깨겠다고 각성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안전의 욕구, 욕구 단계이론의 거의 기반인 2단계, 그러므로 본능에 가까운 욕구를 위해 행동하지 않고, 공감한다고 하지만 쉽게 잊고 마는 사람들도 기록한다.

『아몬드』는 윤재가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로 순행과 역행을 반복하며 서사를 쌓는다. 그 안에 다채로운 사유와 질문이 녹아있어 멈추게 만드는데, 정상과 비정상, 평범과 그 안에 담긴 도달하기 쉽지 않은 지점인 평탄함, 다가오는 현실에 눈 감는 자와 눈 감지 않는 자, 비극과 희극 등이다. 무엇보다 주요 공간적 배경인 헌책방을 중심으로 글자, 책, 책과 영화의 비교, 작가 등을 서술하는 대목은 가장 아끼며 찾아보게 만든다. 흥미롭고 가독성 있는 전개, 조바심과 안도를 넘나들 때의 속도감, 세심한 심리 묘사와 빼어난 비유, 위트까지,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깨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알, 틀, 프레임, 고정관념, 불치 진단, 상자가 어느 날 깬다기보다 녹을 수 있다. 윤재의 눈물처럼 온도를 잴 수 없는 뜨거움으로 말이다. 초등 고학년 이상, 연령과 상관없이 권할 만하다. 이 책의 행간과 여백에서도 오래 머물게 될 것이다.

책 속에서>

불을 끄고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내겐 풍경처럼 익숙한 냄새였다. 그런데 거기 무언가 다른 게 실려 있었다. 갑자기 마음속에 탁, 하고 작은 불씨가 켜졌다. 행간을 알고 싶었다. 작가들이 써 놓은 글의 의미를 정말 알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을 알고 깊은 얘기를 나누고 인간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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