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틸라와 해골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02
존 클라센 글.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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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클라센의 『오틸라와 해골(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2023, The Skull, 112쪽 분량)』 은 도망치는 오틸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마도 우연한 탈출은 아닌듯하다. 탈출이라는 게 우연히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고, “모두가 잠든” 깊고 긴 밤이 배경이니 누구라도 깨어있다면 시도조차 어려울 수 있겠고, “마침내” 도망쳤다니 몇 번째 시도일지도 가늠케 할뿐더러 타이틀 표지가 나오기 전에 첫 문장이 먼저 나온 셈이니 얼마나 급박한 상황일지도 충분히 짐작할 일이다. 작가는 그 장면을 간략한 인증처럼 그려 넣었다. 책의 결말부에도 인장 같은 그림의 변주가 반복된다. 단지, 밤은 햇빛 받은 아침으로 바뀌었고, 도망은 산책으로 달라진다.

『오틸라와 해골』은 <유령과 도깨비 이야기(1969)>의 의도치 않은 패러디 그림책이라고 작가는 밝힌다. 자꾸 생각났던 이야기를 찾아보니 기억에서 꽤 빗겨있었고,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원작의 변용을 작품화한다. 새로운 옷을 입는 고전은 언제나 매력적인데 무려 존 클라센의 손을 거쳤으니 정좌하고 펴볼 일이다. 존 클라센은 간결한 표현, 열린 결말, 절제된 색감을 특징으로 하는 캐나다 출신의 그림책 작가로 글 작가인 맥 바넷과 함께 여러 작품을 함께 작업했다.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늑대와 오리와 생쥐》를 비롯한 공동 작업을 발표하며 칼데콧상,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등을 수상했다.

숲속에서 자란 오틸라는 깊은 밤, 마침내 도망친다. 울타리 밖으로 쌓인 눈 위에 오틸라 발자국이 찍힌다. 이름 부르는 소리를 뒤로하고 멈추지 않고 달리던 아이 앞에 크고 오래된 집이 나타난다. 문을 열어준 이는 해골이다. 잠시 숨어갈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은 몸이 없어 굴러다니는 자신을 데리고 다니겠다는 약속이다. 해골은 집을 구경시켜 주는데 벽난로 방에는 해골의 예전 모습 초상화가, 정원이 있는 방에는 배나무가 자란다. 벽에 가면들이 걸려있는 방, 지하 감옥과 탑에도 이른다. 아주 큰 무도장에서 둘은 가면을 쓰고 춤을 춘다. 묵어가기로 한 오틸다에게 해골은 한 가지 비밀을 전한다. 몸통만 있는 뼈다귀가 집에 찾아와서는 해골을 잡으러 쫓아온다고. 많이 느려진 해골은 뼈다귀에게 잡히기 싫다고 말한다. 오틸라는 곰곰이 생각한다.

『오틸라와 해골』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긴밀하게 조응하고 협력하고 상호 보완한다. 글로 한 번 읽고, 그림으로 설명을 듣는 효과를 내면서도 독자를 위한 여백 또한 충분하다. 평면에 얹힌 일러스트는 깊이를 드러내며 공간을 확보하는데 해골이 안내하는 방과 방, 복도와 계단을 따라갈 때 오래 갇혀있던 묵직한 공기와 고성의 서늘한 향, 소리의 울림을 체험하는 듯하다. 오틸라는 어떻게 해골을 도울 수 있었을까? 오틸라는 고통당하는 해골에게 구원자로 다가온다. 오틸라가 먼저 고통당하는 자였고, 연약했지만 무기력하지 않았고,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행동했던 경험이 이를 가능케 했다. 소녀는 두려움을 감수하고 탈출하는 자였다. 땅바닥에 넘어지고, “눈과 어둠과 막막한 고요 속에” 엎드려 있다 울음을 터뜨렸을 뿐 아니라 “울음을 다 쏟아 낸” 다음에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갔”던 일련의 고투는 오틸라에게 성장 과정이자 삶을 대하는 태도로 스며들었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오틸라는 해골에게 자신의 공로를 생색내며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감추고, 그럼으로써 상대를 배려한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지만, 오른손 뿐 아니라 제 3의 손이 없는 걸 아쉬워할 때도 있는 소생은 부끄럽다. 앞으로 그들이 함께 맞이할 날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시간으로 쌓일 것이다. 두려움과 폭력의 굴레를 끊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채워질 날들이다. 무엇인들 새롭지 않겠나. 다양한 메타포를 간직한 환상적인 이야기는 독자의 감각을 구체적으로 일깨운다. 우리들의 그날, 그때를 환기시킨다. 긴장과 사랑스러움이 교차하는 그림책이다. 후루룩 읽고, 천천히 읽고, 열 가지 방법으로 다시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 역시 존 클라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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