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석 웅진 모두의 그림책 29
조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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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까마귀를 보니 막내딸이 생각난다. 분초를 아껴야 할 고3이 문 닫고 뚱땅거리고 나면 책상이며 책장, 서랍장 등 가구 위치가 다 바뀌어 있곤 했다.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함이라지만 네가 이럴 때니 엄하게 나무랐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넌 힘도 세다! 기운 아껴서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는 드디어 “나의 구석”이 생기자 메트리스와 까마귀의 것과 흡사한 책꽂이와 화이트 러그를 채워 넣었고, 학교에서 밤새워 물레를 차며 도자기 머그잔을 구워 차를 우려 마시고,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과제를 한다. 창을 크게 열기 위해 열심을 낸다.

나만의 공간, 자기만의 방은 인간이 충족해야 할 기본적인 욕구에 속한다. 매슬로우의 유명한 피라미드 가장 하단에 위치할 것이다. 세상과 나로부터 경계를 풀고 묵고 싶은 만큼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는가? 그곳이 사방 트인 펜트하우스가 아니어도 좋다. 빛이 덜 드는 반지하 창고라도, 먼지 자욱한 다락방이라도, 나무 책상 하나 밀어 넣은 층계 밑 골방이라도 주인의 마음은 부유할지 모른다. 조오의 『나의 구석(새의 노래, 2020, 64쪽 분량』은 작가의 첫 그림책으로 공간에 대해서 말을 건네지만 내면의 힘을 생각하게 한다.

세로로 긴 판형의 그림책은 표지에서 그늘진 구석을 보여준다. 앞표지의 제목은 볕이 들지만 뒤표지는 침침하고 을씨년스러운 맨 구석이다. 구석만 드러난 타이틀 표지를 지나 첫 페이지에서 주인공은 한 곳을 응시한 채 등장한다. 독자를 등지고 구석을 향한다. 그 시선에 이끌려 독자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벽과 벽이 만나는 곳, 하지만 구석의 변신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힘껏 밀고 온 메트리스가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제법 안정감이 느껴진다. 하나씩 추가하는 물건은 주인의 취향을 드러낸다.

“뭐가 더 필요할까?”라고 자문하더니 까마귀는 노란 크레용으로 빛 머금은 도형을 그려 넣는다. 화사한 벽화가 완성된다. 그 와중에 화분에 물을 주고 돌보는 일 역시 게을리하지 않는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춤도(어쩌면 운동) 추는 까마귀의 시간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더 이상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 주인의 개성이 돋보이는 아늑하고 멋진 공간, 아지트가 완성된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시 한번 묻는다. “그래도 허전한데······.” 구석 옆에 창이 나니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게 된다. 나와 내가 잘 지냈는데 이제는 나와 너도 잘 지낼 차례다. 서로 눈 맞추고 인사 나눈다. 함께 할 우리가 생길 테고, 초대할 벗이 늘어갈 테고, 구석은 사랑방이 될지 모르겠다.

『나의 구석』은 글 없는 그림책에 가까워 이미지가 스토리를 이끈다. 간략한 텍스트는 잠깐씩 시선을 보충한다. 세로로 긴 판형의 제본선을 중심으로 흰 벽이 세워지고 선 두 개가 만나 바닥이 된다. 독자는 까마귀의 구석에 초대받은 즉시 물건이, 색이, 음악과 빛이 보태질 때 일어나는 변화에 몰두한다. 각각의 변화는 대단하지 않지만 사소함이 쌓이자 변화는 성장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고 설렘으로 다음 장면을 기대케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아끼고 사랑스럽게 공들일 때 돌덩이는 보물이 되고, 빛은 퍼져 온기로 닿는다. 뚜벅뚜벅 나아가는 움직임이 사랑스럽다. 천천히 읽고 거듭 읽어야 할 그림책이다. 혼자 읽고 여럿이 같이 읽어야 할 그림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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