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 나에게 친절하고 싶은 당신에게
이상희 외 지음, 김경태 사진 / 새의노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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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사진:김경태, 새의노래, 2023, 288쪽 분량)은 이상희, 최현미, 한미화, 김지은, 네 명의 저자가 공저한 그림책 에세이다. 다정함에 초점을 맞춘 그림책 서평 모둠, 즉 소개이자 추천의 책이기도 하다. 독자는 한 권의 책을 소개받을 때마다 미묘한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게 된다. 때로는 큰 폭으로 울렁이고, 때로는 잔잔하고 끝없이 일렁이는 경험을. 발견하는 기쁨은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옅어지지 않는다. 저자들을 지금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어른의 그림책 읽기'판을 다진 사람들이라고 칭하기도 한다.(출판사 소개)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 번역가 이상희, 기자이자 작가인 최현미(너무 좋아하는 책<아이스크림 여행>번역자라니 갑자기 만면미소가 피어난다),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한미화,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대학 교수로 저술과 함께 좋은 책을 찾아내 독자에게 안내하고 있는 김지은까지 그림책 현장을 지켜온 분들이다. 그림책의 아름다움을 전했던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2016)』의 다음 이야기는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으로 알차게 묶였다.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은 다정함을 주제로 한 그림책 서른 권을 네 명의 저자가 번갈아 소개한다. 글마다 그림책 앞 표지 사진에 한 면을 할애한다. 펼친 본문 두 면을 뽑아 책 안의 책처럼 삽입해서 직접 대상도서를 읽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1장,“나에겐 소중한 기억이 있어”에서는 기억과 추억을 불러낸다. 글은 책의 물성, 형식도 다루지만 등장 인물들의 서사에 깊이 이입하며 책 속 시공간 여행에 온전히 빠져든다. <할머니의 식탁>에서 이상희는 오무 할머니는 스튜 냄새 뿐만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모성이 무수한 ‘다정’의 입자를 발신”(p.30)했을거라고 전한다. 심리학자 베티나 파우제의 책으로부터 코는 평화의 대변인임을 실감하고 팬데믹이 퍼트렸던 후각, 미각의 기능장애마저 나을 것 같다고 한계를 확장한다.

김지은은 조던 스콧의 <할머니의 뜰에서>를 찬찬히 보여준다. 보살피던 이가 보살핌을 받게 되는 역할 전환의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예외란 없다. 고요하고 따듯한 서사를 따라갈 때 깊은 숨이 쉬어진다. “여러분은 할머니의 다정함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나요.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 빨리 사라져버립니다. 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지금 어서 전화를 드려보세요. 더 많이 웃고 손잡고 자주 안아드리세요. 할머니에게는 그런 웃음과 포옹이 가장 큰 선물일 거예요.”(p.39) 이 부분을 사진 찍어서 딸들에게 보냈다.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자, 얘들아.

2장,“내 곁에 다정함이 살고 있어요”에서는 우리 마음에 안부를 묻는다. 근심으로 시무룩해 있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지,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다고 느끼는지 물으며 마음을 살핀다. 버나드 와버의 여운 깊은 글과 이수지의 찬란한 그림이 함께한 <아빠, 나한테 물어봐>가 반갑다.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책꽂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까지 함께 간다. 3장, “나를 믿고 뭐든 해봐요.”편에서는 나도 한 번 해볼까, 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물 속에서>는 물과 한 몸되는 기쁨이 생생하고 <에페의 심부름 가는 길>은 에페의 심부름에서 ‘오디세이아’같은 서사시(p.151)와 같은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미션완수의 과정과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4장 “다정함을 만나러 가요”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정함을 감각한다. <오토의 털 스웨터>는 그림으로, 스웨터의 무늬로 오로라를 만난다. 오로라는 하늘에 떠있는 장관일 때 보다 아껴주는 마음, 진실한 관계를 증명하는 매순간 빛난다. <여행의 시간>, 몰랐으면 어떡할 뻔 했나! 마지막 5장 <너에게 다정하고 싶어.>에서 여섯 작품을 나누며 다정한 세상으로 쑤욱 나아간다.

한때 힐링이라는 말이 대표 꾸밈말로 쓰였던 것처럼 이제는 다정함이구나 싶었다. 새삼 브라이언 헤어와 바네사 우즈의 선한 영향력에 놀랍기도 했다. 하지만 다정함에의 갈망은 언제나 생존본능처럼 우리 곁에 존재했던 것 같다. 이미 알았을 테지만 각성하고 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했던 계기가 두 저자인 셈이다. 다행이다. 기타 그림책 안내서와 이 책의 가장 눈에 띠는 차별점은 접근하는 방식에 있다. 관점인데, 그들이 “육아를 학습을 치유를 어떻게 얼마만큼 도울 수 있다”는 시선이 도구로서의 그림책, 목표 지향적 읽기를 내포하고 있다면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즉 그림책의 본질, “원형질”(p.9)인 “다정”에 집중한다. 그림책 세계에 고스란히 빠져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발화하는 감동을 나누겠다는 방향대로 책은 안온한 파도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구입할 책 장바구니가 찰랑찰랑 차오를 차례다. 이미 알았지만 재발견함으로 손 가까운데 끌어둘 작품과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명작이 한 곳에 모였다. 저자들의 그림책 사랑과 연결하고 발견해온 열정, 기록하고 나누어준 정성 덕분이다. 그 정성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양장 표지(겉싸게를 분리하면 표지가 무척 아름답다)와 넉넉한 판형 등 장정에서, 작가 김경태의 사진에서, 활자의 크기와 여백까지도 독자를 배려했다. 처음에는 그림책 입문자를 위한, 필요할 때 찾아볼 ‘참고서’격이겠다고 펼쳤다. 그런데 마치 교과서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때로 낭독하며, 때로 멈추며, 때로 수첩 모퉁이에라도 옮겨 적으며! 폭력과 슬픔이 만연한 세상일지라도 이 다정한 씨앗이 단단한 동아줄처럼 우리 삶에 드리워지기를.

책 속에서>

맛있는 복숭아를 만나거든 린 할머니를 떠올리기로 해요. 저온에 약하고 쉽게 무르는 복숭아는 보관이 어렵습니다. 냉장고에 두어봤자 단맛이 덜어지기만 합니다. 물론 병조림을 할 수도 있지만 잘 익은 복숭아와는 맛이 다르지요. 복숭아는 잘 익었을 때 남김없이 먹어야 합니다. 복숭아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린 할머니처럼 말이지요.(린 할머니의 복숭아나무/한미화/p,123)

여름은 길고 무더위는 견디기 어려우니 우리에게는 서늘하고 우아한 유령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윌리엄 볼컴이 1970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작곡한 음악 <우아한 유령Graceful Ghost>과 함께 이 그림책을 감상하시기를 권합니다. 여러 연주가 있지만 제가 추천하는 것은 양인모와 홍사헌의 연주입니다.(우리 집에 유령이 살고 있어요!/김지은/p.267)

 



(신간 서평단_출판사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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