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보다 더한 현실을 견디는 챌린지와 같은 요즘이다. 폭우에 떨었고, 지나고 나니 햇볕이 사정 봐주지 않는다. 폭염과 어려운 여건에 떠나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소식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위협도 두려움을 안긴다. 일정 시기로 특정됐던 진로 고민도 과거의 이야기다. 몇 번이고 다시, 무한 다시, 길을 찾는 여정이다. 그와 다르게 주어진 규칙만 어기지 않으면 문제해결을 보장하고 나아가 문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사회라면 어떨까.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The Giver, 장은수 옮김, 비룡소, 2007, 1993, 310쪽 분량)』는 설계된 이상향의 위험을 비판하는 디스토피아 소설로 작가의 SF 4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인 <그 여름의 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별을 헤아리며>로 첫 뉴베리 상(1989년)을 수상했다. 이후 <기억 전달자>로 두 번째 뉴베리 상과 보스톤 글로브 혼 북 아너 상을 받는다. <기억 전달자>, <파랑 채집가>, <메신저>, <태양의 아들>이 청소년 SF소설 4부작을 이룬다. 『기억 전달자』는 2014년 필립 노이스 감독이 영화화(《더 기버: 기억전달자》)했다. 두 번째 펴는 책은 수년 전 연필 밑줄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주인공 소년 조너스는 미래 사회의 어느 마을에 살고 있다. 조너스는 걱정을 안고 참석한 열두 살 직위받기 기념식에서 직위를 받지 못한다. 대신 다음 번 기억 보유자로 선택된다. 기억 보유자를 위한 새로운 규칙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항목들과 전혀 달랐다. 기억 전달자는 과거의 많은 세대를 뛰어넘어 그 기억을 현재로 끌어당기고 선출된 새 기억보유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기억은 통제 이전, 즉 “늘 같음 상태” 이전의 세상을 알려준다. 위원회가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차이를 없애고 통제할 대상을 정할 때 포기해야 할 목록은 저절로 늘어났다. 눈이나 썰매, 햇볕과 색깔을 이미 알지 못하는 세계다. 날씨와 인구, 본능과 감정을 비롯해 배우자와 직위 선택도 통제 대상이다. 사람들이 자기 직위를 스스로 선택한다면, 하고 조너스가 가정하자 기억전달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답한다. 기억 전달자는 불편함은 회피하고 단지 필요한 조언을 구하는 원로들을 대신해 혼자 고통을 감당한다. 기억 보유자가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한 조건에서 조너스는 부조리함을 발견한다. 조작된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지는 비인간적 행위들도 알게 되자 조너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소설은 조너스가 기억보유자로 선택받기 전에 당연시했던 삶과 이후 새롭게 통찰하게 된 세상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인구 증가는 기아문제를 낳고 전쟁의 원인이 되어 설계된 사회를 선택하게 했다. <멋진 신세계>에서 9년 전쟁 후 “세계를 통제하느냐 아니면 파괴하느냐 양자택일”에서 “안정”을 선택한 것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우선하는 가치는 안전과 효율이지만 이면에는 극단적 행위를 감추고 있다. 담당자는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부속품에 가까워져서 마치 컨베이어 벨트의 일부처럼 임무 해제에 임한다. 소설은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제한과 감시를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 생생함을 더한다. 정해놓은 기준을 수정하기 어려운 시스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원로들, 기억은 지혜를 주지만 지혜보다는 조절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위원회 등 소설은 다양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책이 금지된 사회에서 마을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조건, 가장 중요한 근간이 언어의 정확성이라는 아이러니는 가장 인상 깊었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책들에 대한 탄압과 함께 셰익스피어를 감췄다. 독자는 조너스의 선택이 이끄는 결말에 안도하지만 동시에 다음 장면을 원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 필요하다. 색깔과 음악, 기억이나 고독, 사랑 등 추상어가 연이어 등장함에도 마치 영상처럼 독자를 이끌어가기에 한 호흡으로 집중할 수 있다. 또 다른 선택지로 P. 크레이그 러셀이 작업한 그래픽 노블을 소장하지 않을 수 없겠다. 토론을 위한 재독인데 더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사물 너머 보고 듣기, 한계를 넘기 위한 패달 밟기는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물론 연령에 관계없이 선택해야 할 책이다.

책 속에서>

“모든 게 바뀔 거야, 가브리엘.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 게 틀림없어. 색깔들도 있게 될 거야.”(p.219)

늘 하던 대로 언어의 정확성에 대해 생각하던 조너스는 이 행복감이 자기가 느껴 본 적이 있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전혀 새로운 깊이의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쨌든 이 느낌은 매일 저녁, 모든 기초 가정에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한없는 토론을 거쳐서 분석해 내는 느낌들과는 전혀 같지 않았다.(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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