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강미경 옮김, 마우로 카시올리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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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이라 불렸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번영과 부를 누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야망은 식민지에 다른 얼굴을 보였고, 산업화로 인한 발전 이면에는 빈부 격차가 더해갔다. 모순과 불안이 커질 때 마치 안개에 에워싸인 형국으로 길을 찾기는 어려웠다. 유사한 갈등과 이중성은 한 인간 내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마우로 카시올리 그림, 강미경 옮김, 문학동네, 2009, 1886, 148쪽 분량)』는 인간의 본성인 선과 악을 두 개의 인격으로 분리해 고찰한 보고서를 연상케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의 원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축약한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소설은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판본으로 나와 있으며 극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축약한 아동용 도서부터 완역까지 선택의 폭이 넓고 제목 역시 다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Jekyll and Hyde)>는 국내에서 더 환영받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킬과 하이드를 제외한 서사와 인물에서 거의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새로운 작품이다. 루이스 스티븐슨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어려서부터 병약했으나 모험과 여행을 좋아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결핵 치료를 위해 갔던 스위스 다보스에서 《보물섬》 집필에 몰두하고 1883년에 출간되자마자 명성을 얻는다. 《물방앗간의 윌》, 《마카임》 등의 소품, 소설 《납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그리고 《팔레사의 해변》 《썰물》과 같은 여행기를 발표했다.

어터슨 변호사는 먼 친척 리처드 엔필드와 산책 중 기이한 사연을 듣는다. 엔필드는 캄캄한 겨울밤 한 남자가 자신과 마주친 소녀를 폭행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는 하이드라는 자가 내뿜었던 기형의 느낌, 특이하고 생생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이상히 여긴다. 어터슨은 지킬 박사의 유언장에 적힌 이름, 베일에 싸인 지킬의 후원자이며 절친한 의사인 레니언 박사조차 알지 못하는 하이드를 찾아내기로 한다. “그자가 숨는 자라면 나는 찾는 자가 될 테다.”(p.26)라고 말하며.

어터슨은 하이드로부터 친구인 지킬 박사를 보호하기 위해 단서를 모으고 조언을 구하고 연이은 사건에 주목한다. 지킬 박사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 듯 친구를 맞고 선행을 베풀며 그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지킬은 다시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겠다 선언하고 절친했던 래니언 박사도 돌연 죽음을 맞는다. 사건의 전모는 박사의 방에서 발견한 두 통의 편지, 래니언과 지킬이 남긴 편지로 확인하게 된다.

“헨리 지킬의 최후 진술”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성을 인정하고 과학의 힘을 빌어 둘을 분리하려 시도했던 여정과 심정을 고백한다. 말끔하게 드러난 모습이 감춘 위선과 자기 안의 젊잖지 못한 본능, 둘의 모순에 시달리던 중 발견한 탈출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지킬의 자백은 통렬한 회고록이자 솔직한 심리묘사로 주인공의 갈등을 지금 우리에게 묻는 질문으로 바꾸어 놓는다. 화자인 어터슨의 시선으로 지킬과 하이드를 쫒을 때 독자는 빠르고 흡인력 있는 전개에 긴장을 놓지 못한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문학으로 묶인 문학동네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단연 눈길을 끈다. 아르헨티나 삽화가 마우로 카시올리는 그림을 배경이 아닌 전면에 부각시킨다. 하이드 씨의 외모 묘사는 악의 전형화라는 점에서 중요한데 문장의 나열을 한 장의 그림으로 시각화한다.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라면 아름다운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안개”의 다양한 함의는 근사하다. 바람과 안개, 빛과 안개, 불안을 증폭시키기도 흉함을 가려주기도 하는 안개의 여러 변용, 포도주에서 안개까지 이어지는 서술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진다. 시도가 정도를 넘을 때 실험약은 마취제가 된다. 한 세기가 지난 소설은 여전히 안개 걷히지 않은 시간, 불안한 오늘, 내면의 투쟁을 비춘다.

이때가 오전 아홉시경으로 계절 들어 첫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다. 초콜릿빛 안개가 하늘에 낮게 드리운 가운데 바람이 이 수증기의 장막을 사방에서 쉴 새 없이 공격하며 흩뜨리고 있었다. 마차가 이 거리 저 거리를 기어가듯 느릿느릿 지날 때마다 어터슨은 어스름한 빛이 시시각각 농담을 달리하며 기기묘묘하게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쪽은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저녁 무렵처럼 어둑어둑했고, 또 저쪽은 마치 큰 화재라도 난 듯 짙은 갈색 빛으로 타올랐다. 그런가 하면 잠시 안개가 걷히면서 한 줄기 가느다란 햇살이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삐죽 얼굴을 내민 곳도 있었다. 이처럼 시시각각 달라지는 희미한 빛 아래서 진창길과 단정치 못한 행색의 행인들, 그리고 한 번도 꺼진 적이 없거나 아니면 어둠의 이 음험한 재침략에 맞서 다시 켠 듯한 가로등을 비롯해 소호 지구가 그 음울한 모습을 드러냈다. 변호사는 마치 악몽에 나오는 도시의 한 구역을 보는 듯했다.(p.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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