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관의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아르테, 2022, 336쪽 분량)』은 도스토옙스키 애독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소장 욕구를. 저자는 책의 또 다른 제목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미술관>을 꼽으며 미술품을 모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의 미술관과 예술 비평의 관점을 가리키는 이중적 의미를 부여한다. 조주관 교수는 반세기가량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에 경도되어 살아온 국내 러시아문학 권위자로 논문 및 강연뿐 아니라 번역과 집필로 독자를 러시아 문학으로 이끌어왔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은 세 가지 형태의 기록을 종합하고 있는데 <작가 일기>와 아내의 <회고록>, 소설과 미술평론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도스토옙스키는 “미술관”이라고 여겼다. 그의 미술관 여행은 편안한 취미 활동보다는 절실한 필요에 이끌리는 행보였다. 그는 어떤 그림을 스치듯 통과하지 않았고 흡수하듯 영혼에 새겼으며 투영한 결과물을 일기와 소설, 비평에 녹여냈다.
도스토옙스키 장편 소설을 읽다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멈추어도 될까 자문한다. 각주가 제공하는 정보가 오히려 질문은 만들어 멈추고 두리번거려 본 독자들은 안다. 그렇게 모은다고 모은 자료 역시 영 흡족하지 못함을. 이 아쉬움을 해소해줄 책이라는 걸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이라는 제목만으로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백치』에서 정지버튼을 눌러야 했던 한스 홀바인의 <관 속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명해 줄까. 그림을, 작가를, 소설 속 인물들을, 그 순간 미쉬낀 공작과 로고진 사이에 흐르던 공기를 말이다. 저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냈던 치열한 정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 영혼에 새겼던 그림,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시간을 3부 20장의 전시실에 선보인다.
1부는 <성과 속>이다. 빛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는 마지막 작품인 <돌아온 탕자>에서 가장 완전한 용서의 순간을 담아낸다. 여기서 고통을 통한 구원과 러시아 문학의 영원한 주제인 “아버지와 아들” 문제를 부각하게 된다. 이 주제를 <미성년>에서 아르카디의 성장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죄 없이 벌을 수용하는 장남 드미트리의 선택으로 연결 짓는다.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은 “고난을 통한 구원”(p.58)에 도달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좋아했던 티치아노의 <공전>은 마가복음의 유명한 장면을 그린다. 주제가 돈이니 읽다보면 3천 루블이 시종일관 귓전에 맴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불러내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돈은 힘이며 자유이고 시간이자 언어”(p.79)였고 나에게 3천 루블은 무엇인가로 수렴하게 만들었던 미완의 최고작이다.
2부 <미와 추>에서 저자는 “어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p.117)라는 질문을 <백치>의 화두로 본다. 도스토옙스키는 <시스티나의 마돈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생각하는데 그림과 관련해 아내가 기록한 에피소드는 인상깊다. 반면 톨스토이나 체르니솁스키가 보였던 부정적 시선도 고르게 조명한다. 도스토옙스키가 아름다움을 성과 속, 두 가지 기준으로 구분했고 이는 그가 창조해낸 인물의 특징으로 스민다. 도스토옙스키가 바젤 미술관에 찾아가 보게 된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은 “미세한 상처의 찌르기”(p.174)와 같은 격렬한 인상을 남기고 <백치>에 그대로 담긴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함이라는 목적과 극단에 있는듯한 처절한 죽음은 반어적 표현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또한 사진의 중요성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실물보다 사진으로 먼저 나스타샤를 보았던 미시킨 공작의 반응을 따라가면서 시각에서 비롯한 통찰의 문제를 재확인한다. 3부 <생과 사>에서는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잊지 못했던 과거 사형집행의 순간과 집행 직전의 번복부터 소환한다.
“그가 언급하는 화가들은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눈의 소유자이다. 그러한 화가들의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스토옙스키에게 창작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p.331) 이는 저자가 에필로그의 소제목에 덧붙인 설명이다. 책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 51점과 직접 그린 드로잉 4점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을 재조명한다. 19세기 러시아 문화계의 기류, 왕성하던 이동파 화가들의 활동과 한계, 이에 대한 제언도 엿볼 수 있다. 미술 평론에 있어서는 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유럽인들이 러시아 미술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내 안나의 <회고록>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생생한 스케치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애독자라면 작품 속 불멸하는 인물들과 조우하는 기쁨이 가장 클 것이다. 읽지 못한 작품이라면 완독 후 본문의 분석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다지게 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초상화도 익히 보아왔던 페로프의 것과 새로운 발견 트루톱스키의 그림, 여기에 로운 이순영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까지 더해 모두 소중하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저자의 헌사와도 같은 이 책은 독자에게도 다시 펴보고 오래 아낄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