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은 곧잘 무한히 맞물리며 작동하는 톱니바퀴에 비유한다. 시스템에 갇힌 채 익명이 익숙한 사람들은 어디나 있다. 때로 패턴화한 몰개성은 피로를 낮출 뿐 아니라 예의와 동류로 인식되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오십 명 쯤 된다면 한두 가지 주조색으로 수렴하거나 채도를 낮춰 완만한 풍경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프티 피플』의 인물들은 소외되는 법 없이 자기 자리에서 균형점을 향한다. 해피 엔딩 일색이 아니라 각자의 최선을 경주한다는 의미로 빛을 낸다. 그들은 표지 사진처럼 적당한 열을 받아 분자운동이 활발해진 3차원 공간 안의 컬러볼을 연상케 한다. 격차 없이 고르게 주목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창비, 2021, 488쪽)』이 2016년 세상에 나온 이후 개정판으로 찾아왔다. 정세랑은 2010년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고 2017년 『피프티 피플』로 “강력한 가독성과 흡인력으로 이 사회의 연대 의지를 되살리는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수상했다. 작가는 소설집과 산문집 외에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던 『보건교사 안은영』, 3대에 걸친 여성서사로 주목받은 『시선으로부터』등 다양한 작품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피프티 피플』은 오십 여명의 이름이 목차를 구성한다. 첫 번째 이름 송수정부터 차곡차곡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책 전체가 충실한 등장인물 소개다. 읽는 일이 그들의 삶에 노크를 한 후 차례로 방문하고 떠나오는 일의 반복인 셈이다. 어떤 방문은 돌아서기가 망설여지고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 속내도 털어 놓을까 하고 불시에 살피기 때문이다. 작은 힌트를 주고 싶은 이름이 있고 현명함을 배우겠다고 잊을세라 메모하게 만드는 이도 있다. 영화에서나 가능할법한 사건 사고가 일반인에게 벌어져도 하소연할 수가 없다. 불가능하리라는 상식은 삶의 곳곳에서 파괴된다. 그저 싱크대 안쪽에 꽂혀있던 빵 칼이 사용될 줄 누가 알았겠나, 내 털실 인형같은 며느리가 구멍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나, 폴 댄스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될지, 화물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오고 비가 강력한 트리거로 변하게 될지, 안하무인 광 상사를 군대에서 만날지를 누가 알았겠느냐 말이다. 이러이러한 삶을 예측하고 기대했을지라도 실시간 수정하게 되니까 계획이고, 살아가야 하니까 인생이다.
작가는 적절한 비유로, 꼼꼼한 묘사로 뭉뚱그려져 있어 답답하고 괴로운 감정을 독자에게 설명한다. 작가의 언어가 회피하고 있던 내면의 덩어리를 조명할 때 부드러워지기도 작은 덩어리로 갈라지기도 한다, 제법 다루기 수월한 크기로 줄어들자 명명해 볼 기회가 된다. 등장인물의 상황을 빌어 현실에 대어 보는 게 소설 읽기의 미덕이기에 거듭 활용해 본다. “특수한 촬영기기가 나와서 윤나의 복잡한 안쪽을 찍어볼 수 있다면, 환의는 그 기계를 다룰 수 있도록 잘 배울 것이다.”(p.69) 나 역시 기계치라는 약점에 결연히 맞설 테고 이에 더해 마음 번역기나 무의식 해석기기 따위도 나오기를 바래본다. 미진함이라고는 남기지 않는 완벽 소통을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피프티 피플』은 감정과 이성을 고루 긴장시킨다. 깔끔하게 정리된 인물관계도를 속으로 탐내며 정작 엄두는 못낸다.
표지 사진은 달콤함으로 무장한 불량사탕 같기도 반전 맛을 숨긴 소금사탕 같기도 하다. 친절하고 동시에 잔혹한 세상이라는 공간에서 컬러 뒤에 숨은 진정한 맛은 무엇일지 가늠한다. 통통볼처럼 튀어 오르기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기도 한 사람들이 ‘지금’을 통과하고 있다. 작가가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얼굴은 정성스럽다. 그들이 처한 고통을 다 아는 척 하지 않고 다만 이름 불러주고 성실하게 기록해내는 시선이 지지를, 때론 응원을 담는다. 읽다보면 가장 마음이 가는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아무도 한나가 사서인 걸 모르지만 한나는 사서로 살 것이다.”(p.265) 책만 있으면 잘 지내는, 비밀리에는 언제나 사서인 한나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양혜련처럼 동화같은 해피엔딩도 있다. 어떤 문장에서는 밑줄을 세게 긋는다. 별도 붙여 놓는다. 위트 넘치는 문장이 웃음을 주지만 철렁함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누구에게나 할당된 무대, 허락된 지면이 있다. 이를 구상하고 채우고 꾸미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등장인물이 오십 명인지 오십 일 명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끝에 등장시킬 독자 자신의 이름일 것이다. 촘촘하게 이름 불러주는 이 소설은 당신의 이름도 불러줄 것이다. 『피프티 피플』은 더 좋은 오늘을 위해 바라고 노력하도록, 다정하게 살피도록 힘을 싣는다.
책속에서>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p.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