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노윤기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2, 456쪽)』은 철학자 리 메킨타이어의 신념이 이끄는 열정 가득한 저서다. 자못 긴 제목은 초지능, 초연결, 초융합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개를 갸웃할 주제다. 대화형 인공지능이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며 일상이 혁명 같은 날들을 겪고 있는 21세기에 느긋해보이는 제목부터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왜 제목부터 불편할까? 무시 못 할 걸림돌들이 자꾸 발끝에 채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어요, 라고 지인이 말을 건넨다면 속으로 답할 것이다. “아니 왜? 설마.” 그 후 대화의 주제를 바꿀 것이다. 그러니 그와 즐거운 대화라, 어렵고, 생산적인 대화라, 역시 어렵다. 어려운 일에 전심으로 기꺼이 몰두하는 것, 내가 가진 물질과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끝없이 쏟는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지치는 그 어려운 걸 저자는 해낸다. 책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동참하자고 설득하는 초대에 더 가깝다.

제사로 인용한 레온 페스팅거와 마크 트웨인의 글이 앞으로 직면할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그가 속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보다 그를 속이는 일이 더 쉽다.”(마크 트웨인)는 명징한 한 문장을 저자는 각오처럼 걸고 시작한다. 리 매킨타이어는 철학과 과학사 센터 연구원과 윤리학 강사를 지냈던 철학 박사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하버드대학교와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등에서 자문 및 연구부서 부편집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 등에 기고하는 한 편 저서로는 『포스트트루스』. 『과학적 태도: 과학 부정론과 사기와 유사 과학으로부터 과학을 수호하기』 등이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과 현실마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탈진실‘의 시대이며 ’현실 부정‘은 ’과학 부정‘이라는 근원으로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15년간 연구실에서 과학부정론을 연구했던 저자는 2018년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가한다. 최악 가운데서도 최악이자 과학 부정론의 가장 기본적인 사례에 도전함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고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첫걸음을 내딛는다.

2장 “과학 부정론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과학 부정론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인 체리피킹, 음모론, 가짜 전문가에 의존, 비논리적 논증, 과학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을 차례로 설명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과학에 맞서 싸우는’ 전투 계획이 된다. 과학을 부정하는 일은 오류가 아니라 거짓이다. 허위 정보가 의도적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p.107) 다섯 가지 수사는 의도적인 전략이다. 또한 그들의 신념, 즉, “그들이 믿는 것은 그들 자신의 반영”(p.126)이며 그들이 경험한 결핍은 정보가 아닌 “신뢰의 결핍”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3장에서는 실증적 문헌, 연구 논문들을 검토하고 적용해 본다. 특히 슈미트와 베슈의 실험으로부터 “잘못된 정보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p.147)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연구실 밖으로 나온 저자의 도전은 계속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고 평평한 나라 몰디브에서 기후변화 위협의 현주소를 확인한다. “그들은 어떤 과학도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이미 체득한 것 같았다. 그것은 신념이 아니라 관심의 문제였다.”(p.206)며 슬픈 한계를 직시한다. 석탄 광부들과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GMO(유전자변형생물체)를 불신하는 동료들과 문답을 이어간다. 때론 민감하고 의견이 나뉘는 주제이지만 대화로 서로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화를 가능하게 한 유일한 요소는 신뢰와 상호존중임을 확인한다. 정치적 입장과 과학부정론의 연결 고리도 계속 등장한다. 과학 부정론의 최신 사례인 코로나 19 팬데믹 에서는 음모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한 후 대응 방법을 정리한다.

저자는 가능한 경우의 수를 살펴 과학 부정론을 바로잡고자 동분서주한다. 그의 설득은 집요하고 간절하고 확신에 차 있다. 과학 부정론자들을 외면하고 어리석은 자들로 치부하는 일은 솔깃한 유혹임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p.343)고 자신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언급한다. 방법은 거의 유일하다. 신뢰와 관계 구축, 공감과 존중의 자세로 대화하기다. 살려내야 할 지구, 살아남아야 할 모두. 어느 한 편이 아닌 모두의 생존을 끝없이 주장하는 목소리가 배어 있는 책이다. 다만 재차 반복되는 부분을 조금 더 요약 전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분명 저자의 간절함이 브레이크 따위는 치워버렸다고 이해된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했으리라. 생생하고 치열한 저자의 여정에 동참하며 변화를 위한 나비의 날갯짓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들께 이 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