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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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크리스마스 타일(창비,2022,312쪽)』은 넋놓고 크리스마스잖아 싶은 표지가 이 성탄에 읽지 못한다면 당신은 확실하게 손해 보는 것이라 말하는듯하다. 얼추 맞다. 제목을 보고 가능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읽을수록 마음을 밝히고 있는 유년의 성탄도 소환한다. 그러나 소설은 기억 속 트리의 오색 불빛처럼 마냥 알록달록하지만은 않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 중인 인물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단편 속에서 크리스마스 곁을 서성인다. 더 이상 어드벤트 캘린더를 떼어내는 설렘은 없다. 하지만 주목받지 않아도 성탄은 여전히 소소한 마법을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닐까. 


『크리스마스 타일』은 김금희의 첫 번째 연작소설이다. 『크리스마스에는』으로 시작된 이야기에 한편씩 보탤 때마다 작가는 “마음속 가장 깊은 그늘과 가장 환한 빛을 동시에 통과하는 기분이었다”(p.307)고 전한다.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신춘 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금희는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등의 소설집,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를 비롯해 중편과 산문집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여 왔다. 『크리스마스 타일』에 담긴 이야기 일곱 편은 트리를 장식한 색색의 전구처럼 다르지만 조화롭게 읽힌다.


수술을 받고 난 은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계를 맺겠다고 마음먹는다. “참여자 없는 연극이자 듣는 이 없는 아리아, 만남이 불발된 채 혼자서 나누는 열렬한 악수 같은”(p.13) 다른 차원의 고독이 어울리는 삶을 선택하기로 한다. 복직한 은하는 예능국 전보자 오태만의 크리스마스 일화를 듣는다. 거듭된 낙방이라는 절망을 안고 간 아바나에서 탈진했을 때 자기에게 다가왔던 마차 한 대, 구조는 곧 구원과 맞먹는 효험을 일으켜 아나운서 시험에 결국 합격했으니 성탄 선물과 다름없다. 은하는 쿠바에서 만난 떠돌이 개와의 짧은 장면을 떠올릴 때 자신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기적적 순간이었음을 회상한다. 안미진과 나이트 근무를 함께 끝낸 크리스마스 아침, 퇴근길의 한가을은 수치심일지도 열패감일지도 모를 “어떤 것들”(p.103)과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새로이 시작할 수도. 


“옥주는 거기서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중략) 그런 변화는 셀 수 있는 게 아니니까.”(p.106) 여러 이별을 감당하며 중국으로 향했던 옥주에게 예후이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과일, 사과에 대하여 알려준다. 새로운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예후이의 고향에 동행했으나 흩어지듯 떠나가고, 흠집과 아쉬움만 남는다. 그럼에도 중랑천가를 걷는 사람들 일부로 섞여드는 옥주가 더 이상 걱정되지 않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양감을 간직한 호수, 예후이와 보았던 호수를 마음 깊이 지니고 있을 것이기에. 때로 때때로 길어 올려 세포 틈틈이 윤기마저 넉넉히 채울 것이기에. 하바나 눈사람 클럽의 뒷이야기를 여전히 울퉁불퉁할지언정 양진희와 주찬성이 열어 재낄 미래는 결국 만났음으로 행복 꽃길 아니겠나 예측한다. 대학 동아리에서 알게된 지민과 현우는 우연히 일 때문에 재회한다. 시간은 흘렀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맞았던 공간은 기억 속 그대로다. 두 번째 이별은 훨씬 온건하다. “복수도, 화해도, 용서도, 기적적인 능력에 대한 찬탄이나 입증,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던 부산행이지만 적어도 생일 축하는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니 홀리하긴 홀리했다고 여기면서.”(p.304)


소설은 찰떡처럼 쫀득하고 때론 설기처럼 푸실해 두 가지 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곤란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독자 자신의 엇비슷한 추억을 꺼내보게도 만든다. 취재와 자료수집 과정도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인물의 환경과 역사를 천천히 조립하며 퍼즐을 완성시켜가는 연작소설의 매력이 새롭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시기가 공통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잔뜩 힘을 준 채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그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당해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조명을 비춘다. 크리스마스야, 그래서 어쩌라고, 만만치 않다, 삶! 해가며 마구 냉한 기분으로 이성을 갈고 닦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잖아요, 크리스마스라고요 참견하며 일깨워주고 싶어진다. 


이만큼 살아왔다는 나이듦이 성장과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전진하는 시간이 성숙과 퇴보를 반 보씩 겹쳐가며 거시적으로는 좋아지고 나아지는 일에 가깝다고 낙관한다. 계절과 눈을 그려보이는 묘사가 아름답다. 툭툭 내뱉는 듯 무심해 보이는 문장이 소설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담백하게 기록된 감정을 읽고 있으면 독자에게도 말을 거는 듯하고 경쾌한 문체가 미련이나 아쉬움을 털고 걸음을 내딛게 만든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매정하지 않다. 대상과 주체 모두에게 유일하고 소중했던 시간이었기에 이에 걸맞게 머물러 응시한다. 그렇게 떠나보내는 일은 조금 더 단단해진 나로 새로운 날을 여는 좋은 인사를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타일』이라기보다는 퀼트,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아꼈던 헌 옷의 조각을 꿰매 붙인 조각 이불이 어울린다. 닳아 해지긴 해도 깨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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