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선집
찰스 디킨스 지음, 권민정 옮김 / 시공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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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권민정 옮김,시공사,2020,676쪽) 1859』는 19세기 영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찰스 디킨스의 후기 대표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단행본 소설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함께 2억부 이상 나간 베스트셀러(박차영, 2022)이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Charles John Huffam Dickens)는 하급관리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학교 대신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15세 부터는 사환, 속기사, 기자 등 일을 하면서 고전을 탐독한다. 스물네 살에 등단한 그는 《피크위크 클럽의 기록》(1837), 《올리버 트위스트》(1838)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중편《크리스마스 캐럴》(1842)과 후기 작품들까지 약 20여 년의 작품 활동 동안 열다섯 편의 장편소설, 다섯 편의 중편소설, 수백 편의 단편소설을 남긴다.

천재 이야기꾼이자 활동가였던 찰스 디킨스는 톨스토이부터 조지 오웰, 마르크스 등 동료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학자이자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영어로 소설을 쓴 천재 작가에 대해 말하라면, 그 시작도 끝도 디킨스다”라 평한다. ‘카프카적’이라는 대체할 수 없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었듯이 유사한 예가 디킨스에게 보이니 ‘디킨스적’이라는 표현은 그가 작품 속에서 자주 사용했던 끔찍한 사회 환경이나 코믹하게 그려지는 인물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인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지 150년이 지났지만 디킨스의 작품들은 현재성을 띠고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상영 중, 공연 중, 읽히는 중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디킨스가 1859년에 발행한 주간지 《올 더 이어 라운드(All the Year Round)》에 실었던 연재 소설로 모든 계층의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이자 ‘대중문화에 가장 영향을 끼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인 첫 문장으로부터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인 프랑스 혁명기 1789년 전후와 소설 출간시점인 1850년대 ‘현 시절’(p.13)을 가늠하게 된다. “친애하는1775년 무렵”(p.17)이다. 영국 텔슨 은행에서 일하는 자비스 로리는 20여년 전 자신이 수탁자 역할을 맡고 있던 고객인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를 구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로리는 18년간 바스티유 감옥에 억울하게 갇혀있던 마네트 박사와 딸 루시를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이 배에서 루시와 찰스 다네이가 만나게 된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의 지위를 포기한 에브레몽드의 아들이고 에브레몽드는 마네트 박사에게 죽음보다 더한 18년의 악몽을 설계한 주범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한 인물이다. 박사는 그럼에도 조건을 걸어 루시와 찰스 다네이의 결혼을 승낙한다.

어수선한 시대에도 루시가 등장하는 장면이면 고요와 밝은 빛이 일렁인다. 사려 깊고 선한 루시의 사랑은 피폐해진 아버지, 위험의 한복판으로 밀려들어가는 남편에게는 물론 사자의 배경으로 자칼을 담당하고 있는, 무력한 체념만인 일상인 시드니 카턴에게까지 미친다. 카턴은 비록 사적 사랑의 성취에는 실패하나 이와 비교하기 어려운 숭고한 결단과 행동으로 주변 인물에서 벗어나 작품 전체의 주제를 견인한다. 루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불길하고 미스테리한 인상을 전하던 드파르주 부인이다. 그녀는 단호하게 응시하고, 결코 잊지 않겠다 기록하고, 피를 묻히는 일에 거리낌이라곤 없이 폭력과 죽음을 잇댄다. 드파르주 부인은 혁명과 복수의 아이콘으로 뜨개질이 멈출 때 까지, 숨이 멎을 때 까지 무자비한 질주를 막을 길이 없다. 그녀는 왜 그토록 가혹해야 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마네트 박사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던 에브레몽드 가문의 악행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드파르주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악은 복수를 부른다. 이를 갈며 견딘 시간은 공감이 연대를 낳게 하고 어느 순간 눈덩이처럼 커진 군중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들은 이미 못할게 없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두 도시,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를 대비시킨다. 극적인 대비는 소설의 주요 장치로 무능하고 이기적인 귀족과 학대당하는 민중을, 부와 가난, 악과 선을 교차 배열해 부각시킴으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일개 부품처럼 망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은 대의나 군중심리, 일종의 광기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두 개의 악이 겨루는 형국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만연체 문장은 긴 호흡으로 이어지지만 묘사와 대화, 서술이 균형을 이루어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하게 된다. 극적인 전개와 캐릭터들의 생생한 육성은 시간을 거슬러 그 공간, 바로 그 순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질척이는 발밑의 땅과 굶주림의 고통과 추위, 도처의 혈흔까지 감각되는 듯하다. 여성성으로 때로 의인화되는 기요틴이나 멈추지 않는 뜨개질의 상징성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폭력의 시대,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긴 호흡임에도 빠른 템포로 끌고 나간다. 참담함 앞에 잠시 멈춰 설만한 여유는 없다. 때론 노래처럼 곡조가 연상되는 문장으로 때론 리드미컬한 시처럼 라임이 맞춰지고, 후렴이 있고, 구조가 세워지는 디킨스표 문장 읽기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부서진 포도주 통에서 흘러가는 포도주. 이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 이로써 민중의 일상, 기호나 삶의 편린을 포착하고 어느 사이 포도주는 중의적 의미로 변화한다. 결핍과 굶주림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복선을 깔기도 한다. 동어 반복의 미학, 구조 중첩의 효과를 발견할 때 하나의 단어는 고정된 의미라는 한계마저 넓힌다. 기록해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본다. 역설과 풍자로 옷입고 핵심을 되풀이 두드린다.

그 시대의 독자에게 눈맞춤하며 써낸 작품,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진심은 아마도 마지막 문장에 녹였을 것이다. 심정을 가늠하는 유언 격으로 “나는 본다,”(p.655)로 시작하는 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지금껏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 내가 취하러 가는 안식은 지금껏 내가 알았던 그 어떤 안식보다도 훨씬, 훨씬 근사하다.”(p.657)로 마침하는 순간은 "슬프게, 슬프게,"(p.160) 떠오르는 태양을 맞던 과거의 카턴을 생각할 때 깊은 감동을 안긴다. 삶과 죽음,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죽을 것인가, 사소한 것부터 판단보류인 채 얼어붙게 만드는 온갖 가슴 절이는 선택의 갈림길을 바라보게 한다. 백 여년 전 고전은 미래를 선취함으로 희생이 회생하고 부활케 하는 봄을 동시대 독자를 넘어 새로운 세기의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세계로 부르는 매력 넘치는 초대장임이 분명하다.

책 속에서>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고, 믿음의 세기였고, 불신의 세기였고,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우리 앞에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 앞에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모두 천국을 등진 채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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