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
토마스 불핀치 지음, 손길영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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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손길영 옮김/스타북스)2022,1855,504쪽』는 고전의 반열에 서 있는 한 편 동시대적 이슈에 의해 지속적으로 소환되며 여전히 화재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스어 미토스(mythos)에서 유래된 신화(myth)는 ‘전해들은 말 또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란 “고대 그리스 민족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호메로스에 의해 신화가 처음으로 문학으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된 이후”(p.10/눈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인서트, 모리 이요코 외) 신화는 서구 정신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이 책의 저자 토마스 불핀치는 신화를 학문으로서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수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했다. 토마스 불핀치 (Thomas Bulfinch,1796~1867)는 미국의 문학가, 역사학자, 신화학자로 대학의 고전학과에서 여러 고전작품을 배운 후 교사와 사업가를 거쳐 은행에 취직해 평생의 직으로 삼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읽고 쓰는 일에 바친다. 1855년에 완성한 『신화의 시대(The Age of Fable)』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책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해외저자사전, 2014. 5.)

책은 총 34장으로 장별 제목 아래 소제목을 두어 신, 요정, 괴물과 인간의 주요 에피소드를 다룬다. “그리스 신과 로마의 신”을 시작으로 후반으로 가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간략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5장과 6장은 “소원을 말해봐”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파에톤과 미다스, 바쿠키스와 필레몬까지 그들이 원하는 소원은 어리석음과 욕망, 애틋함을 보여준다. 파에톤 편에서 태양신의 궁전의 아름다움을 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신화 읽기의 보너스 트랙과도 같다. 여러 지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우키스와 필레몬 편에서는 노인 내외가 나그네로 변신한 제우스와 헤르메스를 위해 차리는 식탁이 흡사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비버 부부가 차려내는 식탁을 연상시킨다. 힙노스가 있는 잠의 집 정경 또한 인상 깊다. 묘사하는 글이 지루할 틈이 없고 상상은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재현된다. 아비코스 편에서 그려지는 고대의 노천극장도 눈여겨보게 된다. 신전 경내 원형 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 장면(p.343)은 무척 생생하고 아바타를 상영하는 현대의 극장 체험과 맞먹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히아킨토스의 죽음에 슬퍼하는 아폴론의 한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모든 이들의 노래 같고 모르고 짓는 죄를 향한 벌, 가혹한 단죄가 여러 형태로 반복되는데(p.121), 이는 신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한낱 도구적 존재 인간의 무력함을 본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세상을 다스린 신들의 사생활’이라는 부재가 말하듯 인간사에 끊임없이 개입했던 그리스 신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치를 장착한 채 차원을 달리하는 순간을 영위한다. 신들이 보이는 행동의 근간 또는 이유 없음, 우연 등의 선행조건과 그로 인한 파장과 결과들이 이어진다. 그들의 의도에 부합해 받아들일만했던 사건과 의도치 못했으나 기준과 법칙을 깨뜨릴 수 없기에 역부족으로 넘겨야 했던 일들, 의도치 않았고 결과도 탐탁지 않아 신들 스스로 감정이 격동한 채 휘둘리고 질주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27장부터 본격적인 호메로스 읽기의 서론 격으로 등장하는데 이어서 두 편의 서사시<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완독해야 어쩌면 그리스 신화를 얼추 읽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명화에서 가져온 흑백 삽화도 곁들여 독자 스스로 관련 자료를 더 찾아가며 읽고 싶도록 한다. 신화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을 찾아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일상에 깊이 스며있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정독의 필요가 있다. ‘토머스 불핀치 오리지널 완역본’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단, 아쉬운 점으로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교정이 미흡했는지 너무도 잦은 오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타가 번역에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괴롭고 언짢았던 중대한 독서 방해요소였다. 게다가 이제는 마지막 페이지부터 서서히 낙장이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완역한 다른 판본을 재구입할 예정이다. ‘고대인으로부터 구전되고 현대에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는’ 신들을 만나는 중, 몽테뉴의 한 문장이 허를 찌른다. “인간이란 참으로 지각이 없다. 진드기 하나 만들지 못하는 주제에 신을 한 다스나 만들어 놓는다.”(에세2, p.331,민음사) 정말이지 한 다스다. 길어내도 마르지 않는 샘은 여전히 흐르며 묻는다. 거울이 되어 이십일 세기의 독자를 비춘다.

책 속에서>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상자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곧, 불운한 인간을 괴롭히는 무수한 재액이 그 속으로부터 빠져 나왔다.(중략) 그리고 멀리 사방 팔방으로 날아갔다. 판도라는 놀라 재빨리 뚜껑을 덮으려 하였으나 이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은 다 날아가고, 오직 하나만이 맨 밑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희망’이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떤 재난에 처해서도 희망을 전적으로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떠한 재난도 우리가 절망할 정도로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하는 것이다.(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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