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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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의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이지원 옮김/사계절),2009, 90쪽』(원제; Tales From Outer Suburbia (2008년))은 삶이 간직한 비밀을 들추어 진실을 환기하는 판타지다. 그렇다고 무중력으로 떠다니며 현실에 잇댈 접점이라고는 없는 환상을 위한 환상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책을 펼치는 독자는 이야기가 가진 침투력 또는 파장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숀 탠은 대학에서 미술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1992년 국제미래출판미술가상을 수상한 뒤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는 애니메이션 '월-E'와 '호튼'의 컨셉 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는 비주얼 아티스트, 케이트 그린 어웨이 상과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호주의 대표적 그림책 작가, 세계 판타지어워드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독보적인 에스에프 일러스트레이터,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픽노블리스트 등 작가이자 예술가로서 다양한 성취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 《도착》을 비롯해 최근의 《개》까지 꾸준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은 열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앞 면지와 뒤 면지는 빼곡한 펜화로 채워졌는데 동일하지는 않다. 양 면을 넓게 활용한 두 번째 타이틀 표지는 가운데부터 모퉁이까지 그림을 응시하게 만든다. 차례 또한 평범치 않다. 차례라는 게 차례대로 써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역시 숀 탠 적이다. 공간적 배경은 어느 도시의 변두리 지역으로 화자가 들려주는 말을 독자는 경청하지만 예상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뚝뚝 끝나버린다. 독자는 결말 언저리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되고 다음 페이지를 펼쳐야지, 하고 결단 비슷한 마음을 먹는다.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읽는 일은 머뭇거림과 추스름, 전진과 넘김을 반복하는 일이다. 작가는 글로 한번, 그림으로 한 번, 두 개 방식의 병렬과 혼합으로 다시 한번, 최소한 세 번에 걸쳐 의미를 전달한다. <물소>의 마지막 문장 “도대체 물소는 어떻게 알았지?”(p.6)에 독자는 답한다. “물소가 뭘 뜻하는 거야? 혹시 내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고.

<에릭>은 조심해야 하는 작품이다. 폭풍 감동에 무방비로 습격당할 수 있다. <부서진 장난감들>에서처럼 의도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의로 작용하는 법이 종종 있다는 사실, 그럴 때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좋으리라 예견케 한다. <멀리서 온 비>, 형식이 곧 내용이고 주제며 텍스트와 이미지는 뒤섞인다. 천재 맞다. <기억 상실 기계>는 꼼꼼히 살펴야 한다. 발견했는가? 저기 꼭대기에 있는 솔 벨로우의 문장. 신문 기사에서 “부정부인부 장관”(p.74)이라니! 현실 비판 또한 강렬하다. <경야>에서 보여주는 비판은 또 어떤가. 최근작 『개』를 연상케 하며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이 책을 ‘보석’이라 하자. 아니, ‘보석의 모음’이다!”(스쿨라이브러리저널)라는 탄복이 결코 과장되지 않다. 작가는 환상적인 비틀기를 시종일관 구사한다. 하지만 간절하고 선한 염원이 충분히 드러난다는데 차이가 있다. 궤변이야, 싶은데도 불구하고 숀 탠이 말하면 믿어진다. 마법, 환상, 동화가 실제 하는 듯한 감동은 마냥 감정에 호소한 결과는 아니다. <할아버지의 결혼식에서>처럼 대화는 직설적이고 그래서 부연은 불필요해진다. 책은 오래전 경험했지만 잊었던 순간들, 아름다웠던 찰나들을 불러온다. 그런 지점을 어느 순간 불쑥 내어민다. 작가는 아이러니와 과장법, 다양한 종류의 비유 등을 빼어나게 사용한다. 상징과 은유는 시간을 들여 숙고하게 만들고 단편의 분량과 여운은 비례에서 벗어난다. 독자는 상상력의 한계를 재어보게 될 것이다.

남루하고 고된 세계의 이면에는 틈이 있다. 모두에게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 틈새를 알아차리는 이들이 필요하다. 아이 또는 천재, 천사 또는 어린 왕자처럼. 숀 탠이라는 천재 덕분에, 몇 년이 넘도록 책꽂이에 두고 어여쁘다 바라보던 끝에 이제 함께 읽어볼까 결심한 어느 저녁 덕분에, 이 틈은 발견된다. 이제 새롭게 보는 법을 약간은 수월하게 익힌다. 비록 지속기간을 장담하지 못할지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빛을 내고 손짓하고 속삭일 ‘사이’들이 안겨온다. 차원의 수가 높아질수록 경이로움은 일상이 되고 온기도 지닐 것 같다. 그가 건네는 종이상자를 풀어보자.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들이 눈부시다. 이야기는 빛으로 스며들어 먼저 우리 내면을 밝힐 것이다.

책 속에서>

안쪽 정원에서는 계절이 반대였다. 여름에 그곳은 겨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한 해의 가장 춥고 축축한 때에 여름 햇빛을 흠뻑 받곤 했다. 그것은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어떤 곳에 온 느낌이기도 했다. 고향과는 전혀 다른 어떤 곳의 느낌······. 희귀한 꽃들이 밤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고요한 밤에 식구들은 그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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