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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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이경식 옮김/문학동네)2016』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먼저 쓰인 작품으로 저작연대는 '1600~1601년'(p.235)으로 추정한다. 원제는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적 이야기(The Tragicall Hif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e)'로 제목에 ’비극‘이라 명시하고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1564~1616)는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중반 영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80년대 말쯤에 런던으로 진출해서 극작가 겸 단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시집 및 『소네트집』을 남겼다. 생전에도 인기 작가였던 셰익스피어는 사후에도 수많은 찬사를 받는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토머스 칼라일),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근대를 나누어 가졌다. 그 둘 사이에 세 번째란 없다”(T.S. 엘리엇), “문학적 위력이라는 면에서 셰익스피어는 성경에 맞먹는 유일한 인물”(헤럴드 블룸),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벤 존슨) 등의 말로 그를 기린다.

『햄릿』은 궁성의 망대 파수병들에게 선왕의 혼령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작고한 햄릿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가 덴마크 왕국의 새 왕이 되었고 형수였던 거투루드를 “기쁨과 애통이 동일한 무게를 지니는 가운데”(p.21) 왕비로 맞았음을 공표한다. 왕비는 아들에게 “착한 햄릿아”라 부르며 말을 잇는다. 새 왕께 정다운 눈길을 보내볼 것을, 죽음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임에도 “어째서 너는 그처럼 유별나게 보이느냐?”라고 묻는다. 햄릿은 “저는 ‘보인다’를 알지 못합니다.”(p.24)라며 자기 속에 있는 것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 별개의 문제인지 짚는다. 결국 보이는 것, 연기, 꾸며낼 수 있는 것, 겉치레, 장식, 겉옷과 자신의 속에 있는, 이 모두를 “초월하는 것”(p.25)이 대결하는 구도가 성립된다. 즉 후자에 진실, 진심, 가려진 실체, 바로잡아야 할 죄악과 부패-이는 국가 덴마크로 확대했을 때와 왕의 가문으로서, 개별적인 한 가정으로 점차 축소해도 동일하게 적용되는-가 속한다. 햄릿의 호소할 곳 없는 갈등은 “아비가 당한 흉측한, 가장 반인륜적인 살인을 복수하여라.”(p.47)라는 선왕 혼령의 명령 앞에서 나아갈 방향에 명분을 갖추고 동기를 부여받는다.

“세상은 관절이 어긋나 있다. 오, 이 저주받은 운명이여, 이것을 바로잡도록 내가 태어나다니!“(p.55) 햄릿은 이를 위해 광인 행세를 시작한다. 그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대신 혼령이 내린 명을 재점검하는 도구로 극중극인 ”곤자고 살인“을 공연한다. 동시에 그런 스스로를 자조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햄릿은 복수의 적기를 놓치고 어머니와 대면 중 의도치 않게 폴로니어스를 살해하고 이는 딸 오필리어와 아들 레어티즈까지 참혹한 결말로 이끈다. 『햄릿』은 왕부터 무덤일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삶을 포착한다. 권력자는 의도하고 계획하나 민중의 사랑은 선택한 대상에 자유롭게 머문다.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문학사의 선두에 있는 캐릭터 햄릿은 물론이고 혼령, 거트루드 왕비, 클로디어스 왕과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레어티즈, 호레이쇼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사건을 주동하기도 이에 반(反)하기도 한다. 안타깝게 희생당하거나 비겁하게 침묵하기도 하며 각자의 가치나 실제적 이익을 선택하는 인간 군상을 대변한다. 관계맺음의 역동을 읽어 나갈 때 이를 간파하고 냉소하거나 때론 일격을 가하는 문장들은 시간이라는 녹을 깨뜨리고 날카롭게 빛난다. 아름답고 고통스럽고 깊고 명랑해서 인간 감정의 보고를 완성한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p.100)라는 독백이 여전히 긴 파장으로 공명하듯이 오래된 고민은 지나간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햄릿』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내어주는 작품이다. 간결하게 밀도를 높인 대사는 독자가 겪어내고 있는 시간의 결에 따라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목소리를 들려준다. 여백에서 행간에서 일대 일, 또는 일대 다(多)의 은유와 상징이 숙고하게 만든다. 노래 같은 비유도 신화에서 인용하는 문장들도 마찬가지며 유명한 대사와 구절이 많아 ‘격언의 연속’(p.227)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햄릿의 입을 빌은 셰익스피어의 연극론은 독자를 위한 다채로운 선물 중 하나다. 역자는 이 작품의 주제를 “햄릿의 복수 지연”(p.306)이라고 전한다. 숨겨진 진실에 닿는 일은 내면의 자신을 정확히 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햄릿은 타협하지 않고 들여다보려고 애쓴다. 관찰의 도구인 돋보기와 미세한 저울추, 들끓는 침묵을 마련하지만 이와는 달리 제어하지 못하고 한 순간 저지른 행동은 폴로니어스 살해를 초래한다. 정작 좌우명을 기록한 수첩은 펼치지 않은 채 유예시킴으로 수레바퀴는 이탈하고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는 의도했을까 떠밀렸을까.

모두의 비극을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비극의 범위를 최소화할 수도, 아니 정밀하게 겨눌 수도 있었을까. 그러나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조건, 보편적 삶이라는 무대로 극을 가져간다면 차이를 가리기 어려워진다. 사느냐 죽느냐 할 때 죽음 이후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면 더욱 가늠하기 힘들다. 지금 이 순간을 바르게 통과하기 위해 고투하는 한 인간을 본다. 그는 기준이 되는 단위가 여럿이고 어지러워서 부릅 뜬 눈으로 실수하지 않으려, 수치 환산에 정확을 기하려 헤아리는 일에 전념한다. 그런 순간의 나열은 대포 쏘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마지막 지문까지 이어지고, 이후 내려오는 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난다. 햄릿이 인간의 초상인 이유 중 하나다. 르네상스적 인간 햄릿은 여전히 넘사벽의 아우라를 지니지만 말이다. 세 번째 읽는 햄릿이고 더 읽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삼회독 이유는 100면에 달하는 역자 이경식의 해설을 정독하는데도 있었다. 공부하면서 읽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자기만의 시선으로 마냥 읽어내도 좋을 작품이다. 더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북돋는 고전 『햄릿』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것이 더 숭고한 정신인가,

변덕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면 파도처럼 몰려오는 많은 고난에 대항하여

물리치는 것일까.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뿐이다. 그리고 잠에 의해서 우리가

심적 고통과 육신이 받는 허다한 충격들을

끝장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적의 결론으로서

우리가 열렬히 바랄 바가 된다.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잠자는 것, 어쩌면 꿈꾸는 것-그렇다, 여기에 난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의 잠 속에서 어떤 꿈이 찾아올까가-

우리가 인생 굴레의 속박을 벗어던졌을 때-

우리를 멈추게 한다, 바로 이 난점 때문에

장기간의 불행을 만들어가는 것이다.(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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