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창해)2023, 272쪽』는 부제(그림으로 본 고흐의 일생)가 설명하듯 고흐의 삶을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고흐에게 그림은 일기였고 자작시였으며, 혼자 부르는 노래, 그러나 청중을 간절히 기다리는 노래였다. 제목인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가 숨을 거둔 후 주머니에서 발견한,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속 문장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p.269)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KBS 해피FM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에 다년간 출연하며 ‘예술가와 뮤즈’를 다루었고, 그때 고흐를 방송한 인연으로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를 출간했다.(출판사 인용) 책은 들판에서 뛰어 놀다 우연히 형의 비석을 발견했던 7세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고흐 삶의 궤적을 전한다.
화가의 길을 선택한 후 10년 동안 “유화 900여 작품과 드로잉 1100여 작품을 완성했으며, 기적같이 딱 한 작품만 팔렸”던,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역사상 최고가를 형성(p.30)하게 된 고흐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책은 총 7장으로 장별 5~11개 소제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각 소제목은 10면 이내 분량이며 고흐가 통과하는 시간이 어떤 작품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림이 삶이고 삶이 그림이었던 순간들은 외제니 로이어부터 마르그리트 가셰까지 기쁨이자 상흔이었던 사랑의 행적을 기록한다. 아를에 화가 공동체를 마련하겠다는 꿈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했으나 이 계획에 호의적이었던 고갱과는 공감보다 갈등하는 일이 더 잦다. “자연스런 풍경”과 “작가의 이미지 속에 잘 정돈된 그림”처럼 고흐와 고갱은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화풍 뿐 아니라 성격이나 가치관도 달랐고 이는 고흐에게 특히 아픔으로 남는다. 고흐가 겪어야 했던 경제적 어려움과 동생 테오와 가족들에게 품고 있던 미안함, 어머니와의 관계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구두 한 켤레>를 둘러싼 하이데거와 미술 사학자 마이어 샤피로, 그리고 쟈크 데리다의 논쟁이다. 고흐가 파리에 있던 1년간 그렸던 구두 그림이 5점이나 되고 이후 아를에서 1점,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렸던 가죽 나막신까지 고흐가 의미를 부여했던 대상은 시공간을 넘어선다. 그리고 처음이자 유일한 감상자들에게 닿는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는 매개체가 된다.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올리브나무 등 연작 시리즈들은 고흐가 겪는 감정의 고저를 가감 없이 반영하는 듯 보인다. 고흐가 극적으로 활용했던 임파스토 기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 회화가 조소처럼 보이는 현장, 입체감에서 오는 깊은 감동이 전율을 안겨준다는 <별이 빛나는 밤> 앞에 서고 싶어진다.
이제 ‘반 고흐 미술관’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디어 아트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로 그를 만날 수 있다. 고흐 관련서도 동생 테오와 나눈 서한집부터 전기소설, 인문 기행서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그림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고흐의 일생을 작품으로 요약하면서도 분량이 부담 없다. 또한 피상적이라거나 부족한 느낌 없이 한 예술가의 내면에 깊이 닿는 충만함을 선사한다. 다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림 사이즈가 너무 작았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문과 후기 생략에도 본문에 저자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현명하고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본격적으로 고흐를 만나보려는 독자나 전시 관람을 앞두고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