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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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난다, 2022)』는 “신형철 시화(詩話)”임을 먼저 밝힌다. “시평(詩評)”이 아니다. 신형철은 2005년 계간 <문학동네>에 글을 발표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평론가로 《몰락의 에티카》 《느낌의 공동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을 출간했다. “우리 문학을 향한 ‘정확한 사랑’이자 시대를 읽는 탁월한 문장”이라는 말이 그를 설명한다. 본문에 앞서 “내가 시를 겪으며”라는 머리말은 네 면이다. 이 네 면은 끝나지 않을 페이지처럼 서두를 채운다. 조심하지 않으면 네 번이고 사십 번이고 반복하게 될 서두다.

“‘시’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예술이다.”부터 “그런데 나는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고 있다.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도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니까.”(p.7)까지, 암기, 암송, 뭐라도 좋다. 외워야 하는 문장이다. 이런 만남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4년 만의 신작 『인생의 역사』 머리말은 아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맺는다. 이게 시가 아니면 뭐람! 저자는 시를 읽는 일에 이론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p.8)는 말로 독자를 초대한다. 경직돼있던 어깨가 어느새 편안히 내려간다.

책은 총 5부에 걸쳐 스물다섯 편의 시를 담고 있다. 부록에서도 다섯 꼭지를 더해 아쉬움을 달랜다. 1부 “고통의 각”은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을 “공무도하가”로 연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는 인생의 아픈 장면을 잠시 보여준다. 죄 없는 인간이 받는 고통의 절망은 욥기로 살핀다. 카라마조프가의 이반과 알료샤가 치열하게 논하던 밤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슬픔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시인”(p.49) 에밀리 디킨슨 편에서는 “그리고 ‘지옥’이 창조되기 위해서도 단테가 상상한 총 아홉 개의 구역 따위는 필요 없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뜨기만 하면 지금 여기가 지옥이므로.”(p.50)라는 데서 우두커니 멈춘다. 정확한 표현에 절로 나오는 게 심호흡인지 한숨인지, 선명함으로 거듭 공감을 부른다.

2부 “사랑의 면”에서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 “두이노의 비가”다. 내 스물 언저리에 경이와 절망을 함께 건넸던 릴케의 정점, “두이노의 비가”를 저자는 어떻게 보여줄까. "언어에 대한 환멸이 심해질 때마다 약을 구하듯 되돌아가는 책들“(p.86)로 자리매김한다. 인간의 사랑이 배울 수 있는 최상의 자세를 이해시킨다. 무엇보다 ”내가 소리쳐 부른들, 천사의 서열에서 어느 누가 그 소리를 들어주랴?“(p.88)(서가에서 꺼낸 이미 절판된 두이노의 비가는 ”내 울부짖은들 천사의 열에서 누가 들어주랴.“로 번역되었다/한기찬 역), 잊히지 않았던 시작만으로도 충만해진다.

놀라운 발견, “허공 한줌”은 단독자인 독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움켜쥠과 놓아줌은 어떠한지. “성숙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지, 할 의지가 있는지를 말이다. “기러기”에서처럼 어떤 측면에 주목하며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 선택할 수도 있다는 시 읽기의 방법론적 힌트도 얻을 수 있다. 어떤 시 편에서는 눈물을 참아야 한다. 김시습이, 윤동주가, 최승자가 말이다. 레이먼드 카버를 향한 하루키의 오랜 애도에는 숙연해진다. 독자는 성찰하는 저자의 눈을 따라가다 그 시선의 끝에 나를 놓아볼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될 테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결국 ‘혁혁한 업적’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고마워라. 김수영이 김수영이어서 괴로웠던 것은 김수영뿐이고, 우리에게는 그가 있어 온통 다행인 일들뿐이다.”(p.230), 여운이 진동한다. 특히 이런 감동은 매 장을 맺을 때마다 어김없이 돌아온다. 마지막 문장들을 따로 모아 소지하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시선이 지극히 민감하고 세심하다, 엄격하다. 그래서 위안이고 동시에 힘이 된다. 벅차올라 심장 누르며 읽었던 게 얼마 만인가. 신형철은 처음인데요, 자책하던 나를 너그럽게 둔다. 읽어낼 “나날들”(p.232)이 남아있음에 감사하자며. 늘 감정을 부각하지 않는 건조하고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다. 서평은 이런 목적에 얼추 걸맞다. 그런데 흔치 않은 일이 때론 발생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밑도 끝도 없이 고백하고 싶어지는 난감한 상황이 말이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럼에도 한사코 목소리를 내고 마니 “인생의 역사”, 너무 사랑합니다. 모두 읽고 암송합시다! 저와 함께 외워주세요! 라고 말이다. 말리기엔 이미 늦었다. 기록해버린 진심.

책 속에서>

한 시인의 삶이 객관적으로 보기에 불행한 편에 속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타인이 주관적으로 확언하는 말을 하는 것은 부주의한 일이다. 당사자가 ‘나는 불행하다’고 말한다 해서 타인이 아무 때나 ‘그는 불행하다’라고 말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p.67)

왜 릴케인가. ˝릴케의 시에는 답이 없다. 인간의 언어로 제기된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어디엔가 이렇게 쓴 적이 있는데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중략)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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