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
로버트 자레츠키 지음, 윤종은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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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자레츠키의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 Victories Never Last(윤종은 옮김,휴머니스트), 2022』는 “사회적 재난 시대의 고전 읽기”라는 부제가 시사하듯 고전을 거울삼아 현실을 비추는 책이다. 3년여 전 맞닥뜨린 코로나 19라는 현실은 두렵고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를 뚝뚝 떨어뜨렸던 팬데믹은 과거의 예를 거슬러 올라가고 문학의 상징을 들여다볼수록 예외적 현상이 아닌 또 한 번의 반복임을 일깨운다. 또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역사학자이면서 근대 고전 언어학자인 로버트 자레츠키는 유럽의 문화사와 지성사를 연구해 왔으며 카뮈 관련서들을 출간했다. 2020년 초 코로나 19가 미 전역을 휩쓸고 대면 강의가 중단된 시기에 저자는 요양병원 봉사를 자원해 재난에 처한 위기의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된다.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는 활자로 기록된 고전 속 인물들과 예기치 못했던 환경에서 힘겨운 숨을 내쉬는 현실의 사람들을 교차시킨다. 어떤 뜨거움과 감동이 있다면 이는 학자의 책상을 벗어나 고통 받는 이들에게로 섞여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의 두 주인공, 리외와 타루의 대화에서 책의 제목을 가져왔다. 들어가기에 앞서 “하지만 당신의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뿐이에요.”라는 문장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전염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가능한 대처 방법으로 <페스트>의 장 타루가 강조하는 “주의력”과 아이리스 머독이 말하는 “삶의 밀도”에 집중한다. 이를 위한 방법은 철학과 문학 탐색인데 본문에서 다섯 명, 후기에서 다시 두 작품을 살핀다. 1장 “투키디데스와 아테네 대역병”에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내전인 스타시스의 기원과 의미, 투키디데스가 히포크라테스의 후계자라기보다 홉스의 선구자에 가까운 이유, “희망과 거리를 둘지언정 절망에 빠질 여지는 더더욱 남기지 않는”(p.63) 태도와 그로 인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길이 소장할 고전임을 전한다. 이쯤 되면 읽어야 할 다음 책으로 순서를 바꿔 명단에 올라오고도 남는다. 2장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안토니누스 역병”은 전쟁과 역병이 한창이던 때 <명상록>을 집필하며 “내려다보는 시각”, 곧 “추상하는 시각”을 추구했던 철학자이자 로마 최고 통수권자를 만나본다.

3장 “미셸 드 몽테뉴와 가래톳 페스트”에서 역병을 피해 영지를 버리고 방랑자가 되었던 몽테뉴는 참혹했던 6개월 이후 마흔도 되기 전 은퇴하며 철학적 사색에 매진키로 결정한다. “자기 존재를 충실히 누릴 줄 아는 것은 절대적으로 완벽하며 신성하기까지 한 일”(p.152)이라고 했던 그는 세 권의 <수상록>으로 모든 순간의 정직한 기록자가 된다. 4장 “대니얼 디포와 런던 대역병”은 17세기 영국에서 통계의 의미와 이점을 찾아본다. 즉, “겉으로 보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위안을 줬으며, 미래를 수량화함으로써 두려움을 억눌렀고, 과거에서 일정한 형태를 찾아냄으로써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했다.”(p.175)는 통계의 기능이다. 하지만 디포는 알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뒷받침하는 데 통계를 활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숫자가 의도에 의해 편집되는 일은 그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 5장 “알베르 카뮈와 갈색 페스트”는 카뮈의 부조리 론과 이를 드러내기 적합한 장소, 알제리의 오랑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페스트는 사건을 넘어 나치즘을 뜻한다고 훗날 밝힌다. 타루의 입을 빌린 “인간의 모든 문제는 꾸밈없고 명쾌한 언어를 쓰지 않는 데서 온다”는 말이나, 랑베르의 예에서 “도덕은 봐야할 것을 똑똑히 보는 일“(p.227)이라는 지적은 여운을 남긴다. <후기>에서는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과 카뮈의 <최초의 인간>을 나란히 놓는다. 결국 사랑이 부조리를 치유한다.

이 책은 범 유행 전염병, 팬데믹이라는 재난을 경험하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서가의 고전 몇 권을 처방한다. 그들의 행보가 우리와 다른 듯 닮았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취할 수 있을지 힌트를 마련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고전이 특별히 추려진 양보할 수 없는 작품임은 바로 알 수 있다. 로쟈 이현우는 『승리는 언제나 일시적이다』가 서평 겸 비평의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거나 한 번 읽게 하는 서평의 역할과 작품 속 인물에게 재해석의 여지를 줌으로 다시 읽게 하는 비평의 역할을 언급한다. 자연히 책장을 덮은 후 제2, 제3의 독서가 그물처럼 이어지게 된다. 또한 여기에 머물지 않는 저자의 행보가, 스러지는 이들과 눈 마주쳤던 순간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한 인간이 받아 마땅한 예우를 저자가 대표로 표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각자 더욱 궁금한 작품은 다르겠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탁월한 저자 투키디데스를, 자기만의 성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수상록(에세)>의 몽테뉴를 먼저 만나보고 싶다. <수상록>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마지막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했던 우정을 어느 시대, 어느 독자가 되었건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문장이 의미로 가득 차서 한 줄도 제외할 수 없는 이 책은 느리게 아껴 읽을 만하다.


책 속에서>

그랑은 카뮈가 <페스트>를 구상하며 쓴 노트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러나 훗날 카뮈가 <보잘것없음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말했듯, 보잘것없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을 아니다. 오히려 그랑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다른 인물과 달리, 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알고 있다.(p.238)

내가 보기에 요양원의 현실은 고대 그리스 극작가들이 고안하고 카뮈가 받아들인 비극적 상황에 속했다. 1943년, 카뮈는 노트에 이렇게 썼다. “비극은 대립하는 두 세력이 동등하게 정당하고 동등하게 존재할 자격을 갖추고 있을 때 성립한다.” 요양원은 <오이디푸스 왕>의 테베는 물론, <페스트>의 오랑과 비교해도 전혀 방대한 무대가 아니었지만, 충분히 비극적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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