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훈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 2022)』이 2년 전 출간본의 리커버 에디션으로 나왔다. 속표지 이전 첫 면에 실린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라는 글귀가 김 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면서 다시금 기대를 높인다. 공간적 배경을 설명하는 지도와 등장인물 소개가 이어지는데 여기서 등장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과 말”이라는 구체적 지목이 눈에 띈다. 그 둘의 이야기가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 없이 동일한 무게로 펼쳐지지 않을까 예상케 한다. 최근작 『하얼빈(2022)』을 비롯하여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까지 역사소설 3부작 외에도 장편과 단편, 에세이 등에서 작가는 탁월한 문장가, 어휘의 달인, 작가들의 작가라는 명칭을 실감케 해왔다. 한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에서 보여주는 판타지적 설정은 조금은 독특한 지점에 자리한다. 간결하고 적확한 언어로 그리는 환상 서사라니,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이미 나아가고 있다.

초와 단, 두 나라는 두 세계를 상징한다. 유목 부족들을 통합하며 세력을 키웠던 초나라는 산 자들의 나라로 ‘돈몰’이라는 풍속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자를 멀리한 대신 노래와 춤은 좋아하며 아득하게 펼쳐지는 초원을 아름답다 생각한다. ‘시원기’로 초의 시종을 어림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문자를 받들었던 ‘단’은 늙음과 죽음을 귀히 여겼고 특히 왕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필요한 목숨은 기꺼이 희생시켰다. 농사와 성 쌓기는 땅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중요했다. 초의 신월마는 초승달을 향해 달리는 말이라는 의미대로 함께 이동하나 그중 일탈한 총총은 대가를 치른다. 단나라 왕의 성 수비대 마구간에서 태어난 야백은 비혈마로 그들은 지는 해를 향해 달린다. 초나라 목왕의 아들인 표의 말 토하와 단의 군독 황을 태우게 되는 야백은 인간처럼 바라보고, 느끼고, 가늠하고, 선택한다. 돈몰한 초의 목왕은 큰아들인 표에게 단의 돌무더기를 걷어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당연하고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 된다. 서로를 겨누는 전쟁에 다른 결말은 없어 보인다.

소설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가 충돌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시공간을 이탈시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로를 인정하고 허용하지 못할 때 파멸로 향하는 열차는 브레이크가 없다. 마치 표가 술에 취해 내린 결정을 깨서 뒤집고 깨서 내린 결정을 취해서 뒤집듯이 갈피 없는 혼돈이 지속된다. 개인으로부터 나라에 이르기까지 겪는 흥망성쇠가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인다. 싸움도 분노도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한순간에 흔적 없이 스러지고 말 때의 허무함은 깨달았을 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또한 이 어리석음은 먼 과거의 잊혀진 순간을 넘어 현재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작가 고유의 어투, 문체를 한껏 경험할 수 있었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은 묘사하고 설명할 때에도 선언처럼 다가온다. 글이 색과 영상을 만들어내고 상상을 자극한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정의 내리기는 의미를 곱씹게 한다. 다양한 함의와 은유는 지칭하는 대상의 표면에 머물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때로는 기록, 문장, 이야기,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읽는 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전한다. 소설은 죽기까지 달리는 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그 잃어버린 푯대에 대해서도 묻는다. 역동적이면서도 자주 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내내 그어지는 밑줄을 모아 다시 읽고 답하도록 독자를 이끌 것이다.

책 속에서>

후세에, 상양성의 폐허에서 기왓장에 새긴 단의 고문자가 발굴되었다. 상양성 시대보다 오백 년 앞선 시대의 문자인데, 그 후에 단 문자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고문자는 단어만 있고 문법이 없었다. 글 읽는 자들의 헤아림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를 엮어가면서 문맥을 통해야 했는데 읽는 자들 사이에 이해득실이 어긋나서 글자들 사이에서 때때로 피바람이 불었다.(p.153)




(서평단/출판사 도서제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