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탠의 『개(김경연 옮김/풀빛)』는 2020년 케이트 그린 어웨이 수상작인 “이너 시티 이야기” 중 한 작품으로 이번에 단독으로 출간되었다. 숀 탠 (Shaun Tan)은 비주얼 아티스트이면서 다양한 작품으로 여러 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로 <잃어버린 것>, <빨간 나무>, <도착>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간직한다. <이너 시티 이야기> 속 스물다섯 동물 중 선택된 <개>는 표지부터 부드럽고 온건하게 닿는다. 고급 벨벳 양장본으로 소장가치를 높였다고 하는데 지금껏 맺어온 관계, 앞으로 맺을 관계에 예를 더하는 느낌이다.
표지에 보이는 사선은 아스팔트 도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는 검은 개는 무엇을 향하는지 양면을 펼쳐보자 끝에 누군가가 있다. 둘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앞 뒤 면지는 동일하다. 어스름한 바탕에 사람과 개가 그림자처럼 찍혀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사람도 개도 모두 다르다. 패턴의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각각은 고유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동반자일 것이다. 흰 배경에 한 번, 검은 배경으로 다시 한 번 타이틀 표지를 거치면 드디어 시작된다. 이야기이자 역사가.
“옛날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다.” 작가는 그 의미를 글 텍스트로, 다음 장에는 그림 텍스트만으로 설명한다. 서로를 잘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 본능적인 믿음이 이미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와 인간도 가까워진다. 멀리서 바라보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걷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작가는 아름다운 짧은 문장으로 두 종의 연대를 온전히 보여준다. “우리는 함께 외로움과 두려움의 뒤를 쫓았고 언젠가 일어날 모든 일을 보았다. 아름다움과 공포와 흥망성쇠 모두.” 그러나 둘 모두에게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조건이 있다.
유사한 구도로 그림이 진행된다. 책장을 넘기며 독자는 시간여행을 한다. 제본선을 제외하고 좌우 한 컷의 그림은 빛과 어둠, 향기와 소리가 증폭되는 미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끈다. 컷마다 다르고도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쟁도 있었고 복구된 듯도 보인다. 비로소 시선을 마주했으나 환경은 이전과 다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다시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후기에서 숀 탠은 “이토록 웅대하고 서로를 바꾼 종족간의 우정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낙관하기 어려운 미래임에도 “유별나면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개와 인간의 유대에서 희망을 본다.
숀 탠의 『개』를 읽으면서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p.299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긴 연구서를 숀 탠은 아름답게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숀 탠은 새로이 출간될 때마다 주저 없이 소장할 수 있는 작가에 속한다. 『개』는 숀 탠 스럽고 숀 탠적이다. 글과 그림에서, 문장과 행간에서, 색채와 여백에서 많은 감정과 이야기가 흐르고 넘치고 기다려준다. 『개』는 그동안 함께 했던 나의 개들을 속으로 불러보게 한다. 그들이 여전히 나의 개이며 결코 잊지 않음을 확인시킨다. 존재하는 내내 흥망성쇠 모두 기꺼이 나누어 졌던 종, 개에게 바치는 숀 탠의 헌사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