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아의 『1000개의 그림 1000가지 공감(아이템하우스)』 머리말 첫문장은 “미술은 아름다움을 보는 기술이다. 그래서 1000개의 미술엔 1000가지 아름다움을 보는 다채로운 우주가 있다.”(p.6)는 설렘 가득한 초대로 시작한다. 도감도 아닌데 1000개의 그림이 가능할까 싶은 호기심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끄는 그림의 향연으로 과장이 아니라는 확인과 동시에 우연히 펼친 장면은 한없이 머무르다 서둘러 넘기는 과정을 반복케 한다. 책은 176명의 서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1000편의 그림을 각 사조별로 담고 있는데, 저자는 다섯가지 미술 감상독법을 먼저 소개한다. 서양 미술사의 사조 순으로 명화를 감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며, 두 번째는 ‘화가의 사상적 변천의 흐름을 짚어보는 방식의 감상법’(p.7)이고 다음은 ‘내 마음이 가닿는 미술을 위주로 일정 주제별로 묶어서 감상’(p.7)하는 법, 넷째는 ‘당대의 문제작을 중심으로 미술사의 흐름을 짚어보는 법’, 마지막으로 ‘한 주제를 놓고 각각의 사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미술품을 비교해서 감상’(p.9)하는 법을 전한다. 감상의 기본을 알았으니 이를 중심으로 나만의 목적과 스타일을 보태 책 속 미술관에 입성할 차례다.
『1000개의 그림 1000가지 공감』은 사조별로 자연주의 미술에서 현대미술까지 주요 화가와 작품들을 4쪽에서 6쪽 분량으로 담고 있다. 선정된 대표작과 설명은 왼편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그 외 페이지당 1~3점씩 소개한다. 대표작 오른쪽 페이지 상단에는 축소된 증명사진처럼 작은 크기의 자화상이 있는데 눈에 띄지 않는듯한 이 구성이 의외로 작가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 조금 더 눈여겨 그의 그림을 응시하게 된다. 책 한 권에 그림 1000개는 과한 것 아닌가 의아했지만 각각의 작품은 자신의 아우라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독자에게 말을 건다. 유명한 그림은 유명한대로 내게만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고, 그림과 화가에 대한 요약글이 그림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서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책으로 그림 감상하기는 한 순간에 여러 때, 특별한 기억으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변하고, 더 알아야 할 행복한 과제로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으로 인해 더욱 잊지 못하는 순간으로 각인되었던 장면들을 회상하고 그 그림을 찾아 화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세잔의 ‘커다란 소나무와 생 빅투아르 산’(p.93)은 세잔에게 감화되었던 페터 한트케와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을 다시 불러온다. 어렵게 찾아갔던 미술관이 휴관일이어서 애석해했던 전시, 어쩌면 그 때문에 더 의미있게 된 윌리엄 터너, 그의 아스라한 풍경화를 기쁘게 만난다. ‘전함 테메테르 호’는 ‘영국인이 꼽은 가장 위대한 그림 1위’(p.214)를 차지했다고 하니 그날의 휴관이 더 아쉽다. 페이지를 넘기며 혹시 있으려나 찾아봤던 그림은? 역시 있었다. 한스 홀바인의 ‘관속의 그리스도’인데 ‘한스 홀바인의 걸작이자 문제작’(p.547)이라고 평한다. 이 그림은 도스토옙스키의 5대 소설 중 하나인 『백치』에서 미쉬낀 공작이 로고진의 집에서 보고 한참 이야기 나눴던 그림으로,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하루동안 스위스 바젤에 머물기도 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중요하게 이 그림을 등장시킨 것이다. 먼저 그림의 크기를 확인하고 상상해본다. 이 그림 앞에 섰던 화가와 대문호와 작중 인물인 미쉬낀 공작과 로고진, 그리고 다시 한 번 찾아보고 기억하려는 독자이며 감상자인 나! 그림은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 갇히고 때론 떨어질 것을 요구받는 시대에 그림 한 점은 시공을 초월하고 연결시키는 현존으로 다가와 벅찬 감동을 준다. 계속해서 다시 펼칠 책이고 그때마다 다른 것을 내보일 것이다. 신비로운 보물찾기가 될 『1000개의 그림 1000가지 공감』을 기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