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열림원)』 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이어령 마지막 인터뷰’”에 대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 이후 김지수 기자가 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되었다.”(p.6) 필자 김지수는 ‘이어령 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랐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p.9)고 전한다. 덕분에 독자는 지혜 앞에 귀기울이는 자들의 무리에 함께 스밀 수 있게 되었다. 이어령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그 호칭은 너무도 광범위하다. 『우상의 파괴』를 발표,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 교수이자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명 칼럼리스트, 88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세계의 눈을 집중시켰던 문화 기획자, 디지로그 시대의 개척자이자 전도사, 저자이자 비평가 등 수많은 역할을 통해 목소리를 내온 우리시대의 지성은 지금, 새롭게 지혜를 전한다.
열여섯 번의 인터뷰 중 첫 인터뷰에서 이어령 교수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며 ‘이 모든 것은 내가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이야. 이해하겠나?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고 받은 전리품 같은 것이지.“(p.21)라고 말한다. 마인드로만 채우고 살아온 사람과 영혼의 세계를 이야기한 사람들의 다른점, 두 가치의 상이함과 그 결과를 비유의 숨은뜻을 헤아리며 듣는다. 글자쓰는 사람과 글쓰는 사람,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 니체에게서의 콜링과 영화 ’토리노의 말‘ 그리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독서법까지 석학의 목소리는 개념과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시킨다. 이어령 교수가 암과 싸우지 않고 같이 살려한다며 ”고통을 겪는것까지가 내 몫이 아니야, 관찰하는 것까지가 내 몫이지.“(p.58)라고 하자 필자는 ”겪는 것도 비통한데, 왜 고통을 관찰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는 게 나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라는 그는 ’그게 작가‘라고 답한다. 이어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다네.“라며 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욥의 마지막 희망, “이 고통을 반석 위에 쓸 수 있다면.”(p.59)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들, “실토하지 않을 수 없군. 글이 안 써지는 거야. 내가 암에 걸리고 마지막이 되고, 그러면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하는 기가 막힌 글이 나올 것이다······절실한 얘기가 나올 것이다···그런데 안 돼. 당황스럽더군. 그래서 기도했지.”(p.61) 이 인터뷰는 최고의 지성에게 듣는 죽음의 화학식같다. 이 방정식은 어떤 풀이과정을 거쳐 정답에 이를 것인가. 수학 낙제자가 아니라 빛나는 통찰로 세계를 움직였던 자의 풀이과정인데 무참하게 적나라하고 솔직해서 침착하고 단정한 척 귀기울이기에는 마음이 뚝뚝 떨어져내리는 지점들이 불시에 등장하곤 한다. 물론 해법도 제시한다. ‘작고 아름다운 것들’로 세줄로 된 글, 3행시로 써내는 글은 금새 수묵화가 되고 ‘눈물 한 방울’에서 흡족히 마친다.
아흔아홉 마리 양과 한 마리 양의 경중, 예수는 왜 한 마리 양을 구하려 했을까 질문은 생각을 계속 이끌어낸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유명한 예화 ‘파 한 뿌리’이야기, 판단의 기준들과 칸트의 3대 비판서와 동서양의 가치 차이 등도 솔깃하게 이어진다. 의도적으로 갈증을 남겨두는 이유와 물독과 두레박 돌멩이의 비유, 그리고 딸, ‘내 딸 민아는’이라고 간간히 이어지는 말씀들. 무엇 하나 놓치기 어렵다. 열 여섯 번째 수업에서 그는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p.291)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음새라곤 없이 유려하게 이어지는것만 같은 지혜의 물길, 그 마지막은 회상으로부터 가져온다. 오래전 대학 신입생 강연회 후 만났던 한 여학생의 소망과 답변, 지금 다시 주고 싶은 답으로 마감한다. “나 절대로 안 죽어.”(p.295)라고, 진심을 담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쉽지 않았던 2021년을 보내며 그 중에서도 ‘올해의 기억할 선물’로 남길만한 책이다. 성탄인 오늘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정성껏 남길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그는 지식의 마루에 선 거목 같음에도 “지적인 것은 마음을 울리지 못해.”(p.259)라며 “죽음과 죽기 살기로 팔씨름을 하며 깨달은 것들”(p.21)을 아낌없이 내어준다. 김지수 기자의 투명하고 진정한 마음이 독자에게는 좋은 선물을 전달받게 해주는 감사한 손이었다. 묻고 답하는 공간의 분위기와 울림, 순간 침묵의 결까지 고스란히 일깨워주는 글이어서 책을 읽는 도중에도, 하나의 장을 마친 후에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많은 밑줄은 찾아 보고 싶은 책을, 인물을, 영화를, 말씀을 남겨놓는다. 바쁘고 분주한 연말일 것이고 마냥 장밋빛이 아닌 새해가 되겠지만 그 안에서 감사할 것들을, 한 마리 양이나 세 줄의 시, 눈물 한 방울을 헤아려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