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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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문학동네/김운찬 옮김/1994)』은 페소아의 열렬한 애독자이자 연구자로 적극적으로 세상에 그를 알렸던 안토니오 타부키의 전기적 픽션이다. 이탈리아 작가 타부키는 소르본 대학 문학 강의에서 페소아를 처음 알게 된 후 우연히 파리 헌책방에서 프랑스어판 페소아 시집 『담배 가게』를 읽게 된다. 이후 그는 페소아의 도시 리스본에 살다시피 하며 작품들을 번역, 소개하고 가장 명망 있는 페소아 연구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출판사 인용) 영화화된 작품들과 문학상 수상 등 활발하게 활동했던 타부키에게 페소아는 창작은 물론 생애 전반의 중심축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페소아의 삶의 궤적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텃밭을 가꾼 것을 일생 동안 글에서건 삶에서건 부인하지 않았다.’(출판사 인용)고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은 ‘어떤 정신착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차례는 작품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분명히 한다. 1935년 11월 28일, 1935년 11월 29일, 1935년 11월 30일이 목차의 전부로 11월 30일 그는 임종한다. 페소아 생애 마지막 3일을 작가는 최고의 예를 다해 그려내고, 이는 물리적 시간을 초월한 온전한 인사, 남은자는 물론 떠나는 자에게도 충분하리라 짐작할 만한 아쉬움 없는 애도가 된다. 병상에 누워있는 페소아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방문한다. 쇠약해진 페소아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지만 방문자들은 꼭 해야 할 말을 하고, 들어야 할 말을 기대한다. 공동의 추억을 회상하고, 좋아하던 음식을 권하고, 작품을 논한다. 어쩌면 침묵의 공간일지라도 함께 있다는 인식으로 족했을 것이다. 방문자들에 대해서는 말미에서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로 정리해준다. 실존인물이건 창조된 캐릭터이건 페소아 일생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페소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명(異名)’, 즉 가상 인물이다. 페소아에게 창작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를 분리해내고 그들에게 삶과 영혼을 부여하여 완전한 하나의 독립체를 형성하는 일‘이었다.“(불안의책,p.594해설, 문학동네) 70개가 넘는 페소아의 이명 중 주요 인물을 재 등장시키는 일은 충분히 의미있어 보인다. 다음은 지난 1월 필자가 쓴 페르난두 페소아의『불안의 책』서평 마지막 부분이다. -이제 페소아를 조금이나마 더 기억하기 위해 타부키의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을 읽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수많은 이명 속에서 익명이었던 페소아 자체 같이 슬프고도 사실적이다. ​“내일이면 나 역시, 그렇다, 느끼고 생각하는 영혼이며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우주인 나 역시 이 거리를 더 이상 지나지 않을 테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어떻게 됐지?’라고 어렴풋이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587p)”- 읽겠다는 약속을 열 달이 지나서야 지켰는데『불안의 책』의 마지막 문장은 “페소아 자신과 가장 흡사한 인격체라는 이유로 ’반 이명‘이라 불렸“(불안의책,p.599해설)던, 이명 저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의 목소리다. 즉, 페소아 자신이다.『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에서 그의 임종 순간은 소아르스가 떠나고 병실에 들어온 철학자, 또 다른 이명인 안토니우 모라가 지킨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는 타부키가 있겠다.

‘어떤 정신착란’이라는 부제가 혼란한 허구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3일째 밤, “내가 그대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용서하시오.”(p.53)라고 했듯이 꿈과 현실의 경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초혼제이자, 타부키식의 오마주”는 가장 페소아가 흡족해했을 방식으로 이루어진 듯하다. 페소아가 1928년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쓴 시, 타부키 평생을 이끈 단초가 되었던「담배 가게」전문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매우 특별한 선물이다. 그가 “20세기의 가장 멋진 시”라고 칭했던「담배 가게」중 한 연이라도 옮기지 않을 수 없다.

(중략)

그런데 담배 가게 주인이 나타나 문가에 선다.

나는 불안정하게 반만 붙들린 영혼을 뒤섞어

불편하게 반만 목을 돌린 채로 그를 바라본다.

그는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그는 간판을 떠날 것이고, 나는 시를 떠날 것이다.

결국 간판이 있던 거리도,

그리하여 시가 적혀 있던 혀도 죽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 만물을 돌리던 지구의 수레바퀴도 멎을 것이다.

다른 우주의 다른 행성들에서는 사람 같은 무언가가

계속해서 간판 같은 것들 아래에 살면서 시 같은 것들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언제나 다른 것과 마주한 어떤 것,

언제나 다른 것만큼이나 무용한 어떤 것,

언제나 현실만큼이나 어리석은 불가능한 무엇,

언제나 겉에 잠자고 있는 신비만큼이나 진짜인 내적 신비,

언제나 이것 아니면 언제나 저것, 또는 이도 저도 아닌 것.

(담배 가게/부분 발췌 p.78)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다. 타부키의 마음이 곧바로 이해되지 않는가!(이만큼이라도 암송해보자는 의지가!) 사후 47년만인 1982년 처음 출판된 『불안의 책』을 생각할 때 페소아는 아깝고 신비롭다. 그는 본체가 맞는가라는 비논리적 물음도 뒤따른다. 작품도 놀랍지만 작가의 여정 역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페소아를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덕분에 온전히 배웅한 것 같다. 작지만 묵직한 책, 타부키 덕분에 다시 페소아를 기억할 수 있었고, 이제 또 다른 타부키의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책 속에서>

-빛의 색조에 대해 쓰기란 어렵지만 나는 해냈어요. 낱말들로 그림을 그렸지요. 홉킨스처럼 말이오?페소아가 물었다.

네, 베르나르두 소아르스가 답했다. 그렇지만 아이디어는 존 키츠의 일기를 읽으면서 떠올린 겁니다. 그리고 러스킨의 ‘말로 그리기Word-painting’이론이란 게 있어요. 그가 터너의 옹호자가 된 건 우연이 아니지요. 간단히 말해 나는 낱말들을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붓처럼 사용했고, 내 팔레트는 리스본의 새벽과 석양이었어요.(p.43)

-하지만 부탁하건대, 지금 떠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로서 우리 사이에 잠시 더 머물러주십시오.(중략)사랑하는 안토니우 모라, 페르세포네가 자기 왕국에서 나를 원해요. 이제 떠날 시간이에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이미지들의 극장을 떠날 시간입니다. 내가 영혼의 안경을 통해 무엇을 보았는지 당신이 알까요.(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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