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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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플로베르의『마담 보바리(문학동네/김남주 옮김)』는 친구이자 시인인 ‘루이 부이예에게’라는 짧은 헌사를 남기는데 그에 앞서 마리앙투안쥘 세나르에게 표하는 감사를 따로 덧붙힌다. 출간에 앞서 문학잡지에 연재 당시 종교 모독과 풍기문란을 야기할 가능성으로 결국 기소되었지만 세나르의 변론으로 무죄판결을 받았기에 1857년 『마담 보바리』의 초판에 세나르에 대한 글이 담긴다. 영어권 작가 125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문학작품 10권을 물은 결과 1위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2위에 올랐으며 1857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현대(modern)'를 연 소설로(영어권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역자 해설의 시작 역시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자리잡은 이후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 단 하나의 단어도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없다는 일물일어설을 낳은 절대 작품.’(p.501) 여기서 끝이 아니고 계속 이어진다. 운명의 소설, 실패의 소설, 기다림의 소설, 환멸의 소설이라는 별칭(방미경, 2003)을 가졌으며 출간 이후 ‘무려 백육십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줄곧 현역으로 읽히고 있는 이 소설’(p.502)의 힘은 말 그대로 ’힘을 다해‘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마담 보바리』는 총 3부로 소설의 도입부라 할 수 있는 1부는 샤를 보바리가 전학해 온 학창시절과 가정의 분위기, 공의가 되고 아내가 죽은 후 환자의 딸이었던 에마를 만나 결혼하고 사 년간 머물며 자리가 잡히기 시작한 토트를 에마의 성화로 떠나게 되기까지다. 샤를에게는 내키지 않았던 이사의 직접적 원인은 보비에사르에 있는 당데르빌리에 후작 집에 초대받았던 데 있다. 사랑에 관한 책들에 빠져 보냈던 열 다섯 살, 책 속 인물과 그들의 삶을 지금 자신의 현실과 비교했을 때의 괴리에 “맙소사! 내가 도대체 왜 결혼을 했을까?”(p.70)라며 ‘만일’을 곱씹고 보태던 시기에 이루어진 초대는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되고 그날의 인상은 촘촘히 각인된다.

보바리 부부의 새로운 거주지는 용빌라베다. ‘노르망디, 피카드리, 일드프랑스 세 지역이 맞닿아 있는 이곳은 풍경에 별 특징이 없듯 사람들의 말투에서도 두드러진 억양을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잡탕 지역이다.’(p.106)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은 오메 씨의 약국으로 약제사 오메는 마지막까지 샤를과는 정 반대의 인생곡선을 그린다. 에마에게 공증인 사무소의 서기 레옹 뒤퓌는 남편 샤를과 달리 대화가 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레옹과 함께 있던 에마는 우연히 눈길이 닿은 남편이 ‘짜증’스럽다. ‘그녀의 눈에 프록코트로 감싼 그 등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그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보였다.’(p.148) 법률 공부를 위해 레옹은 파리로 떠나고 ‘보비에사르성에서 돌아온 후 얼마간 머릿속에서 카드리유가 맴돌았던 것처럼 그녀는 침울한 애수, 어딘가 마비된 듯한 절망에 휩싸였다. 레옹의 모습이 실제보다 더 크고 더 멋있고 더 감미롭고 더 모호하게 눈앞에 떠올랐다.’(p.178) 에마는 상념에 빠져든다.

약제사 오메의 예상대로 올해의 농업박람회는 용빌에서 개최되었다. 로돌프 불랑제의 눈에 ‘그 여자가 예뻐 보였’(p.187)고 그는 그녀를 유혹할 계획과 ‘나중에 떼어낼’ 생각을 동시에 챙기지만 그의 구애에 에마는 소녀 시절 꿈꾸었던 책 속 여주인공들의 삶이 자신에게 비로소 실현되었다고 여긴다. ‘이제 그녀 자신이 명실상부하게 그런 상상의 일부가 되었고, 그토록 부러워했던 사랑에 빠진 여자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젊은 시절의 오랜 몽상을 실현한 셈이었다.’(p.232) 에마는 샤를의 외반족 수술 실패 이후 남편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중략) 그라는 인간 전체, 요컨대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짜증을 불러일으켰다.’’그러자 샤를이 곧 죽을 사람, 그녀의 눈앞에서 임종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인 양 그렇게 그녀의 삶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영영 없어져버린,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 허상으로 여겨졌다.‘(p.264) 에마는 자신에게 허락된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에마의 집착이 커질수록 로돌프는 발을 뺀다. 분노와 상실로 인한 신경증의 발작 이후 샤를의 정성으로 겨우 회복된 에마는 레옹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새로운 정열에 자신을 맡긴다. 이미 상인 뢰뢰는 그녀의 틈과 약점을 간파하고 있다. ‘아! 걸려들었군.’(p.270) 뢰뢰의 사악한 덫은 에마를 죽음으로 몰고 일 년 후 샤를에게, 그리고 어린 베르트만 남을 때까지 일가 내의 죽음은 계속된다.

『마담 보바리』는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꿈꾸는 환상을 살고자 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보바리슴’(p.504)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생생하게 펼쳐지는 사건과 인물들에게 때론 감정을 이입하게, 때론 묻게 됨에도 줄거리 자체는 단순하게 요약이 가능하다. 과연 작가는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했을까 생각할 때 존 업다이크의 “『마담 보바리』는 한 시대를 나타내는 기차역이다. 고풍스러운데다 꽃까지 만발해 있지만 강철로 만들어져 단단하기 그지없다.”는 평은 해답을 간직한다. 꽃과 강철이라는 극단의 상징처럼 작가는 세차게 몰아치는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내맡겼던 아름다움을 가차없는 비극으로 완결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잠시 넋을 잃게 한다. 그리고 에마같은, 샤를같은 나아가 오메나 로돌프, 뢰뢰같은 자들의 존재를 헤아려보게 된다. 의외로 그들은 특별하지 않기에, 다분히 보편적이기에 더 씁쓸하다.

논픽션의 대가 존 맥피 역시 플로베르의 글쓰기에 대해 언급한다.“나는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보다 아는 단어를 찾는 데 월등히 많은 시간을-적어도 99대 1의 비율로-쏟는다.(중략) 나는 이를 ‘일물일어를 찾는 탐색’이라고 부른다.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날이면 날마다 자기 집 안뜰을 걸어다니며 가장 적확한 단어 하나를 찾아 머릿속을 뒤졌다는 이야기를 8학년 때 바살러뮤 선생님한테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이야기를 잊을 수 있겠는가? 플로베르는 영웅과도 같았다.”(p.265/네 번째 원고/존 맥피/글항아리) 역자는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가는 철두철미한 글쓰기’(p.502)라고 말한다. 겉과 속을 모두 그려내는 문학에서의 그림(p.505), 진짜 교향곡으로 보일 것이라며 수정을 거듭했다는 장면들(p.515)까지 아마도 완독 횟수가 늘어갈수록 작품은 달리 보일 것이다. 하지만 농업 박람회의 시상식 장면에서 호명되는 수상자와 로돌프의 구애가 교차하는 서술기법은 생동감이 넘치고 입체적이며 독특했다. 재독을 하지 않더라도, 예민하지 못한 감각을 지닌 필자조차도 그 장면은 인상 깊으니 말이다. 이런 문장은 어떤가. ‘하지만 아무리 충만한 마음이라도 때로는 고작 공허한 비유로나 표현될 뿐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욕망이나 관념, 고통의 정도를 결코 적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사람의 말이란 금간 냄비와도 같아서 별을 감동시키고자 하지만 곰을 춤추게 하는 가락을 내는 데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p.273) 대안은 이런 문장을 암기하는 것일까.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 역시 내내 반복되면서 독자의 감상을 풍성하게 한다. 인물의 단정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대변하는 무언가를 통해 좀 더 잘 이해하게, 실제적으로 느끼도록 돕는다. ‘층층기법’에 대한 역자의 설명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상기하게 했으며 작가의 치밀한 시도들이 다시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를 만든다. 에마의 고단한 삶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에마와 샤를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에마의 중독과도 같은 맹목적 선택과 행동은 비단 그녀만의 한계일까 생각하게 된다. “내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는 지구처럼 외부적으로 전혀 묶인 데 없이 문체의 내적인 힘으로 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한 권의 책입니다. 가능하다면 주제랄 것이 거의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책 말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그 재료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책입니다. 표현이 생각한 바에 가까워질수록, 언어가 사고와 하나가 되어 사라져버릴수록 작품은 더 아름다워집니다.”(p.516) 플로베르의 문학이『마담 보바리』전후로 완전히 달라졌다(김계선,2017)고 하듯 이를 분명하게 성취한 작품이었고 문학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역자 해설의 ‘플로베르 론’을 읽고 난 독자는 아마도 당장 다시 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임은 알았지만 플로베르 탄생 200주년은 후에 알게 되었다. 지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0번으로『마담 보바리』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책 속에서>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깊이 어떤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난당한 뱃사람처럼, 삶의 고독 위로 절망적인 눈길을 던지면서 저멀리 수평선의 안개 속에서 하얀 돛을 단 배가 다가오지 않는지 살폈다. 그 우연이 어떤 것일지, 어떤 바람이 그 배를 그녀 자신에게까지 밀어붙일지, 그 배가 그녀를 어느 기슭으로 데려갈지, 조각배일지 삼중 갑판이 딸린 선박일지, 뱃전까지 기쁨이 가득차 있을지 고뇌가 가득차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그녀는 바로 그날 그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고 들리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소스라쳐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에는 언제나 더욱더 서글퍼져서는 어서 빨리 다음날이 왔으면 하고 바랐다.(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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