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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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2019)』는 차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활동가이자, 국내의 열악한 혐오·차별 문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전념해온 연구자(출판사 소개 인용) 김지혜 교수의 첫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제목이기도 한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p.11) 사람들 이라고 정리한다. 저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 기묘한 현상’과 더불어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p.7)고 ‘모욕을 한 사람은 없고 모욕을 당한 사람만 있’(p.9)는 불일치 또는 모순에 초점을 맞춘다. 문헌을 찾고 사례를 모으고 목소리를 듣고 질문한다. 그 질문이 독자에게 닿고 새로운 시각을 알아차리게 되는 과정이『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는 내내 반복된다.

책은 총 3부 10장으로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까지 차별의 기원, 과정, 기대와 전망의 형식을 취한다. 저자는 사회에 이슈를 던졌던 비극적 사건들을 비롯해 반목하고 갈등하게 했던 일들을 다양한 사례로 내어놓고 분석하고 정의 내리고 설명한다. ‘소수자 때문에 다수자가 차별받는다는 –다수자 차별론-은 어떻게 가능할까?’(p.22) 저자는 명목상의 차별시정정책인 토크니즘이 평등이 달성되었다는 착시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기울어진 공정성을 추구한다.’(p.37)는 말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평등을 이루려는 시도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역차별로 보이고 충돌은 여전한데 뚜렷한 해법은 요원한 현실을 지적한다. 호모 카테고리쿠스, 범주화하려는 인간의 경향과 스테레오타입 또는 고정관념을 의미하는 단순화된 정보의 집합체를 설명한다. 또한 단순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인 일부 특징에 대한 과잉 일반화, 즉 편견(p.45)과 부정적 고정관념인 ‘낙인’까지 저자는 기존의 연구자료와 데이터를 소개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환기한다. 1부의 결말을 마음아픈 ‘인형 실험’과 세기의 판결을 통해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p.79)고 맺는다.

2부,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의 첫 장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로 시작한다. 금기의 빗장이 약자를 향해 풀렸을 때 잔혹한 놀이가 시작된다(p.89)는 점, 그 잔혹성은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엄청난 간극에서 온다는 사실(p.90), 비하성 표현의 문제가 단어 교체로 해결될 수 없는 이유, ‘둘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이 해답을 가져올 수 없는 이유, 능력주의 관점의 오류와 한계 등 귀 기울일 때 독자는 스쳐지나갔던 순간들을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3부, ‘차별에 대응하는 자세’에서 저자는 “결국 ‘다르다’는 말은 ‘서로 다르다’는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고정된 특정 집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차이’가 낙인과 억압의 기제로 생성되는 것이다.”(p.184)고 지적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구호 역시 이 ‘다름’이 주류 집단의 기준에서 ‘일탈’된 무언가를 지칭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틀림’을 전제하는 형용모순(p.184)이라고 밝힌다. 나아가 내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방어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다.(p.189)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p.209)고 밝힌다.『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마음을 열고, 때로 추임새를 넣으며, 때론 안타까움을 느끼며 읽어낸 독자라면 저자의 제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록으로 장 별로 구분된 각주와 참고문헌의 분량을 보면서 저자의 진심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에 담긴 사례와 예시, 이론과 문헌 등이 어떻게 독자에게 닿게 되었는지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물론 다 읽은 후 ‘그래서 결론은? 성찰의 계기가 되자는 것이 다인가?’ 아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학자의 문제 제기는 훌륭했고 이제 정치와 경제에서 구체적인 해결책들이 변화에 속도를 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익숙한 틀과 관점을 지속하는 것 또한 거두어야 할테다. 다시 생각하고 취하고 변화해갈 그 끝에 더 나은 삶과 희망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려 한다. 여전히 ‘차별’은 예민한 키워드이고 뜨거운 감자다. 김지혜의『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이해하기 쉽고 친절한 안내서로 일독을 권한다.

책 속에서>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다수자와 소수자의 자유는 같지 않다. 존 스튜어트 밀이『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수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다수자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서 잘 말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실상 침묵을 강요한다.(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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