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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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면도날(민음사/안진환 옮김)』은 『인간의 굴레에서(1915)』,『달과 6펜스(1919)』와 함께 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1944년 출간한 그의 마지막 장편이기도 하다. 그는 91세까지 사는 동안 장편소설 20편, 희곡 25편, 여행기와 평론집 11편, 단편소설 100편을 완성해 “정력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었으며(출판사 인용) 데뷔작의 성공은 전공했던 의학이 아닌 자신이 원했던 문학을 선택하고 몰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도날』은 동시대를 살았던 시어도어 드라이저로부터 ‘숭고한 작품, 가장 순수한 사고가 만들어 낸 보물‘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당대는 물론 현재까지 ’대중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의 만년작이다.

“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카타 우파니샤드” 제사(題詞)는 한 템포 머무르게 하는 책의 제목『면도날』이 ‘면도칼’ 자체의 날카로움에서 나아가 칼날의 위험까지 다뤄지겠다 예상케 한다. 소설은 1차 세계대전 직후와 1929년의 대공황을 거쳐 1930년대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갈등과 선택, 관계와 살아내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p.9) 첫 문장에서 독자는 화자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문장이 더해질수록 그 강도 역시 커진다. 작가 자신이 본인의 이름으로 등장해 말을 건네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으며 그의 해석도 엿볼 수 있다는 이중, 삼중의 즐거움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사람을 만날 때 사회적 신분 말고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19)는, 가까워질 지언정 우정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엘리엇 템플턴을 먼저 소개한다. 엘리엇을 수식하는 많은 말들, 친절하고 잘 베풀고 유쾌한 독설가이며, 신자로서 세속인으로서 모두 성공적인··· 등등 중에서도 ‘성공적인’은 두드러진다. 속물근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성공적인, 파티장인이기도하면서 성공적인, 하느님과의 선약 때문에 파티 초대에 응할 수 없다는 답신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또 편지로 이어서 자기 의사를 확실히 하고 마는 그가 원하는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평생토록 사교계에 몸담고 살았습니다. 세상을 떠난다고 예의까지 잊어선 안 되지요.”(p.396)

엘리엇으로부터 시작된 관계의 그물망 속 주요 인물들은 자기만의 생기와 서사를 독자에게 드러낸다. 여동생이 살고 있는 시카고에서 화자와 재회한 엘리엇은 조카 이사벨과 그의 약혼자 래리를 소개한다. 종전 후 돌아왔지만 조종사로 있던 항공대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은 사건은 래리를 결코 이전의 그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사벨에게 관계의 유예를 구하고 아무도 모르는 파리로 가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치열하게 답을 구한 후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면도날』은 청년 래리가 삶과 죽음, 진리는 무엇인지 정신과 육체로 깨달아 알고자 하는 구도의 여정을 보여준다. “(중략)이미 해 보고 싶은 만큼 했잖아. 이제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자.” “안 돼, 그럴 수 없어, 이사벨. 그건 내게 죽음과도 같아. 내 영혼에 대한 배신이야.”(p.126)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한 이유는 래리의 마음 자체가 그 무엇에도 묶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래리에게 이사벨의 현실적인 논리와 상식이 접점을 취하기는 불가능해보인다.

래리와 이사벨만을 두고 봤을 때 래리는『달과 6펜스』의 달을, 이사벨은 6펜스를 다시 한 번 재현한다. 래리의 행보는 스트릭랜드와 닮아 있다. 스트릭랜드가 자신이 그려내야 할 그림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듯 래리 역시 진리를 찾아가는 길에 주저라고는 없다. 흔들림 없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헤세의 인물들, 골드문트나 크눌프가 연상되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나름의 선택을 하고 댓가를 지불한다. “세련된 세계의 한가운데 있는 기분은 정말 황홀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었다.”(p.102) 래리의 누추한 공간을 회상하며 몸서리치던 이사벨은 아마도 다른 세계에 속하고 강화되어간다.

“래리가 ‘정말’ 너를 사랑했을까?”(p.278) 화자는 어려움에 처하거나 고통스러운 청춘들에게 좋은 청자이자 상담자, 지지자가 되어 주지만 때론 날카롭게 각성을 요구한다. 열정은 무언가를 파괴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는 화자의 ‘열정론’은 그들의 관계를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이사벨에게 소피의 죽음을 전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시종일관 재미와 가독성을 놓치지 않는다. 눈앞에 그려질 듯한 구체적인 묘사는 오감을 즐겁게 하고 반짝이는 물질의 세계, 미국과 유럽의 30년대 거리와 골목을 누비게 할 뿐 아니라 먼 동굴과 산에 오르게 한다. 풍성한 대화문은 때론 긴장하게도 숨은 의미를 숙고하게도 만들고 인물들과 독자의 심정적 거리는 더 좁혀진다. 화자가 작가이기에, 그리고 또 하나의 ‘구도의 서’이니 만큼 중요한 작품, 예술품들의 인용도 시선을 붙잡고, 비참하고 고통스런 순간들, 비극으로 마감하는 인생, 퇴장하는 캐릭터 역시 자기만의 인장을 또렷이 남긴다.

하지만 p.421부터 이어지는, ‘하느님이 왜?’ 논조로 시작되는 래리의 진리 탐구사는 다소 장황해 보이기도 했다. 결국 지금껏 무엇에도 굴함 없이 산뜻함을 유지했던 래리는 결론 마저 깔끔히 내리고 경쾌하게 발을 뗀다.『면도날』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독자에게도 답을 요청하는 작품이다. 영상으로 봐도 흥미로울 것 같고 몸이 인기 작가일 수 밖에 없겠다 싶은 문장의 유려함과 여유로운 유머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읽은『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에 비해 아쉽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아마도 래리의 미소, 밝고 침착한 분위기를 스트릭랜드나 월터가 겪어낸 고뇌의 묵직함 곁에 놓고 부지불식간에 견주기 때문인듯하다. ‘그 세계’에 입성하기 위한 초대장,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지, 어쩌면 선택은 불가능한 것 아닌지 생각해본다.


책 속에서>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그 어떤 술보다도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다.(p.348)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그 어떤 술보다도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다.(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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