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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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문학동네/2020)』는 2009년 등단해 단편소설부터 중편, 장편 그리고 산문집까지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김금희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이다. 작가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집필 머신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김금희의 최신작이기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에게 전하는 음성이 더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김금희는 이 작품으로 올해 1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에서 지난해 하반기(8~10월) 출간작 20여편 중 2021년 본심의 첫번째 후보 작가 네 명에 포함되었다.(조선일보기사20210108) 소설은 작가가 2018년 제주의 한 섬에서 머물렀던 기억과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 및 그 소송을 모티프로 했음을 밝힌다.(p.240)

이영초롱은 가죽 도매상을 했던 부모의 부도로 보건소 의사인 고모가 있는 섬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제주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고고리섬, ‘이삭’이라는 뜻의 제주어이며 봄의 청보리밭이 유명한 섬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내게 된 열 세살 영초롱은 떨어져 지내게 된 동생 영웅을 위로한 후 생각한다. “이제 나는 슬픔에 대해 완전히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슬픔은 차갑고 마음을 얼얼하게 하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그만한 선택이 없었다.”(p.17)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아이의 이름은 고복자다.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복자와 지낸 2년동안 섬의 풍광과 섬 사람들의 말, 그들의 삶을 보게 된다.

회상과 현실이 교차하며 동창이었던 고오세를 비롯해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잘 못 알려준 주소’처럼 대수롭지 않아 기억조차 흐릿했던 일이 온전한 배경을 드러내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대면시킨다. 이는 과거 함께 지냈던 고모의 타자기를 두드리던 밤들과 남자 아이를 동반하고 친척들의 눈총을 받는 현재를 연결시킨다. ‘복자를 통해서만 섬의 대부분의 것들을 받아들’(p.80)였던 영초롱은 배관일을 하던 임공을 이선 고모집에서 본 적 없다 해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약속을 저버린 채 자신의 생각과 판단, 선택과 행동을 고수했던 날 이후 용서와 화해 없이 떠남으로 유년의 아픈 기억이 된다. 고모의 전동타자기로 쓴 복자의 편지들, 복자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들은 부쳐지지 않고 모두 폐기된다.

“하지만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짊어진게 되는 무게와 끊임없이 유동하는 내면의 갈등과 번민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p.110) 부치지 못했던 편지의 대상인 복자와의 재회가 두 친구의 새로운 현재로 펼쳐진다. 다른 아픔을 간직한 피해자 복자와 그녀를 돕겠다는 판사로서 서로를 지켜보고 마음을 들여다 볼 때 영초롱은 조금씩 깨닫는다. 자신이 복자를 ‘원고와 피고 같은 프레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을 일면적으로 읽듯 복자를 읽으려고 했’(p.135)음을, 이는 숙부들이 고모에게 으레 갖다 붙이는 말처럼 ‘삶을 한정’(p.148)시키는 것과도 어쩌면 유사하다는 것을.

『복자에게』는 앙골아주(안 가르쳐줘) 이영초롱이 이해하고 화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그리는 성장의 이야기다. 또한 관계와 연대의 이야기다. 이국적 정취와 아픔을 두루 간직한 제주와 고고리섬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글로써 그곳의 풍광과 바람까지 독자에게 보내준다. 영초롱을 통해 판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던 점도 즐거웠다. “선배들을 무릎 꺽이게 하는 일이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 겨울이면 불려가서 해야 하는 수백 포기의 김장이나, 일거리를 싸들고 가서라도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갖가지 집안 행사라는 현실”(p.175)에 물질하는 해녀들의 숨길이 겹치기도 했다.

경쾌하고 위트 넘치는 김금희 표 문장을 읽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동시에,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깊이 통찰하는 문장들, 단언하는 글로 포착해내서 익숙하지만 무형이었던 것에 형태를 부여함으로 사전처럼 의지하게 만드는 문장들은 별에 별을 그리게 했다. 프랑스에서 볼테르의『관용론』을 읽는 영초롱도 상징적이고 특히 마지막 펜데믹의 현재는 박수 받아 마땅한 생존자인 모두를 향한 응원이자 격려같다.『복자에게』는 장면 사이사이 틈이 넓어 독자의 얼굴을 슬쩍 끼워넣고 자신을 반추하게 만든다. 성장과 희망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모두에게 권한다.

나는 제주, 하면 일하는 여자들의 세상으로 읽힌다. 울고 설운 일이 있는 여자들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는 무한대의 바다가 있는 세상. 그렇게 매번 세상의 시원을 만졌다가 고개를 들고 물밖으로 나와 깊은 숨을 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다 잘되지 않겠니?(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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