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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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민음사/2019』은 2004년 등단해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던 조해진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그의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에 실린 단편 「문주」로부터 시작되었다.(작가의 말) 여기에 ‘생명이 화두인 소설을 쓰고 싶다’(p.258)는 작가 마음이 더해져『단순한 진심』으로 세상에 나왔다. ‘역사적 폭력에 상처를 입은 개인에 주목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출판사 인용)는 평가를 받는 작가는 상처가 생명으로, 빛과 관심, 결국 사랑과 연대로 치유받고 자유로와지는 과정을 오롯이 그려낸다.

“우주가 내게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된 그날, 서영이라는 한국인 여성에게서 또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p.11) 일주일 전 첫 번째 이메일에서 그녀는 ‘나나 씨의 오래전 이름인 ’문주‘의 의미를 알아내는 과정 자체’(p.12)가 자신이 찍고 있는 영화라며 한국에서의 영화 작업에 나나를 초대한다. 다시 두 번째 이메일은 “이름은 집이니까요.(중략)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p.17)는 말을 전한다. 이 말은 프랑스로 입양되어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는 아이를 가진 채로 비행기에 오르고 지금껏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 암흑’(p.7)을 자신의 ‘근원’이라 여겼던 신조를 내려놓고 어쩌면 찾게 될 지 모를 자기 근원의 온전한 정체를 찾아 떠난다.

나는 누구일까, 나의 기원 찾기는 몸을 움직여 찾아 나서는 능동적 행위와 이름에 담긴 실제 의미 탐색으로 채워진다. 그 과정은 자아 찾기의 주인공 나나(문주)와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내는 인물들과의 만남을 영화라는 틀을 통해 보여준다. 나나를 입양한 프랑스의 부친 앙리가 ‘스크린의 바깥에서 작동하고 있을 또 다른 이야기’(p.56)에 마음을 빼앗겼듯이 그녀 역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서영과 소율, 은이 조금씩 각별해진다. 복희 식당의 주인은 복희가 아닌, 추연희라는 다른 이름의 견디고 지켜내려 했던 사람이다. 누구를? 복희를. 그렇다면 왜 복희일까 이름의 숨은 뜻은 안도와 아픔을 동시에 준다. 문주를 대변하는 공간인 철로에서 자신을 구해낸 정우식 기관사와 그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길도 그렇다.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또는 환대받지 못한 채 삶에 입성했던 자들, 삶에서 너무 일찍 떠난 자와 지금 떠나는 자가 있다. 문주는 자아찾기의 여정에서 관계와 태도, 자기연민의 덫을 차례로 직시하게 된다. 수용의 폭이 넓어지고 단단해진다.

『단순한 진심』에서 ‘이름 찾기’는 작품 전체의 큰 줄기로 책을 관통한다. 인물들은 물론 지명의 유례와 의미, 긴 시간 동안 맛과 어렴풋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알게 되는 음식인 수수부꾸미까지 반복, 재생된다. 또 마지막까지 이름 불리지 못한 노파에게 이르면 마음은 복잡해지고 독자는 이름의 무게와 소중함을 넘어 내뱉어진 말의 내밀한 의미나 여운을 차근히 생각하게 된다. 힘겨운 시대의 어두운 일면을 기억하는 아픈 이야기지만 잘 기획된 드라마 같은 기시감이 남아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후반에 가서 흩어졌던 퍼즐을 식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맞춰넣는 것, 아픔과 상실의 농도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은 일상으로의 회귀가 감정의 과잉 없이 담백하게 그려진 점이 좋았다. 문학평론가 김미정의 추천의 글 마지막 문장은 이 작품을 가장 잘 요약하는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나조차도 온전히 말할 수 없지만, 나를 증거해 줄 타자들로 인해 진실은 확인된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삶의 증인이 된다.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이면서 소설 밖 우리의 이야기이다.”(p.263) 작품 속 스크린과 스크린 밖, 나아가 책 밖의 독자에게까지 연결되는 증거의 릴레이다.

“나는 우주와 세계를 이어 주는 매개이자 그 존재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될 전령이며, 동시에 우주가 자라나는 과정을 증언해야 하는 증인이니까.(p.11)

그러나 자기 연민은 생이라는 표면에 군데군데 나 있는 깊고 어두운 굴 같은 것이어서 발을 헛디뎌 그곳에 빠질 수는 있어도 그 누구도, 영원히, 그 굴 안에서만 머물지 못한다.(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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