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
한홍구 지음 / 돌베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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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돌베개)』는 역사학자 한홍구가 “법을 지배한 자들의 역사”라는 부제로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였던 ‘법’이 정권의 조력자를 넘어 권력이 되기까지, 대한민국 사법부의 숨겨진 슬픈 역사 70년”(출판사인용)에 대한 기록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이 ‘국정원 과거사위의 보고서 ’사법편‘에 기초하고 있다.’(p.22)고 밝힌다. 저자는 2004년 10월부터 3년간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 활동을 했던 때 책의 집필을 마음먹고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6년『사법부』를 출간한다. 프롤로그는 책이 다루는 핵심 줄기를 요약하고 있다. 본문은 “재판일지와 판결문으로 읽는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말이 이해될 만큼 촘촘한 발췌와 인용으로, 충실한 자료 사진과 사진에 버금가는 정밀한 글로 채워진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독자를 심호흡하게 만든다. “국정원 과거사위 보고서, 특히 「간첩편」과 「사법편」은 통곡하는 심정으로 아프게 써낸 보고서다. 독자 여러분도 우리 주변의 피해자들을 기억하며 아프게 읽어주기를 바란다.」(p.24)

『사법부』는 그 역사를 5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미군정과 이승만 시절의 ‘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사법부’부터 ‘유신, 겨울공화국의 사법부’, ‘군사정권, -회환과 오욕-의 사법부’, ‘정보기관의 간첩조작과 고문, 조정당하는 사법부’, ‘민주화 이후의 사법부, 과거는 청산되었는가?’까지, 1945년부터 1997년의 노정을 담고 있다. 자료화면으로 스쳤던, 어딘가에서 읽었던,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건명들이 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다는게 반복되는 느낌이다. 촌철살인 소제목은 독자를 그때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참혹함의 가운데에서 아픈 마음과 답답함을 견디는 일이 사법부를 읽는 일이다. ‘유신정권은 이렇게 수십 명의 목을 치며 사법부를 장악해갔다. 유혈이 낭자해진 사법부에서 목이 잘리는 변을 당한 사람과 살아남아 욕을 보아야 했던 사람 중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였을까?“(p.89), ’확정판결 18시간 만의 사형집행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18시간 만에 사형집행을 하면 안 된다는 구절은 없으니 이 또한 철저하게 ‘합법’이었다.‘(p.113) 고문과 미행, 보복과 협박이 끊이지 않던 시간도 똑같이 흐른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은 ‘보고서의 성격이 강하며 기본적으로 중앙정보부-안기부가 행한 사법권 침해와 판결에 대한 개입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 사법부는 피해자로 기록되어 있다.’(p.11)고 밝혔듯이 중정-안기부의 역학, 또는 제3, 제4의 추가 개입된 손을 추적한다. “중앙정보부(중정)-안기부는 자신들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부당하게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조정’했을 뿐이란다.”(p.210) ‘조정관’ 또는 ‘관선기자’(p.210)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목적’과 이를 위한 그들의 ‘역할’, ‘일상화된’ 존재의 명백함은 진술과 보고서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암흑시대에도 빛나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도 마찬가지로 실명으로 거론하고 있다. 동시에 차기 ‘대법원장 재목’이었던 이들이 ‘소수의견’을 제출했기 때문에, 반갑지 않은 ‘무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탈락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소문’(p.257)으로 일단락된다.

저자는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판결했던 이들의 회상과 고통 받았던 이들의 눈물어린 육성을 들려준다. “사람은 참 가지가지다. 문귀동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문귀동을 써먹어 출세하려던 자가 있고, 문귀동의 죄악을 덮어버려야 정권이 산다고 생각한 자가 있고, 문귀동을 잡아넣는 것이 오히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자도 있다. 검찰과 사법부가 성고문 은폐의 공범이 될 때 거기에 기꺼이 협력한 자도 있고, 부끄러워한 자도 있고, 분해서 눈물을 흘린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권인숙의 고통에 아파하며 눈물을 흘린 자도 있다.”(p.356) 멈춰 있게 만드는 문장들이 여러 지점에서 돌출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최근의 상황’(p.411)을 인용하며 ‘사법부의 권위를, 사법부의 독립을 갉아먹는 가장 무서운 적은 사법부 안에 있다.“(p.412)고 관심을 환기한다. ’대한민국 사법사 70년‘ 연대표로 시작해서 미주와 참고문헌, 찾아보기까지 저자의 의지가 독자의 읽는 행위에 온전히 전달되리라 생각된다. ’뒤돌아 본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필수적이다. 결코 미래의 걸림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름을 부르고 글로 기록하는 것 만으로도 슬픈 ’과거‘에 예(禮)를 표하는 꼭 필요한 행동이다. 변화의 시동(始動)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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